예술가의 패션 브랜드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안녕, 예술가가 되고 싶은 객원 필자 김고운이다. 예술가라 했을 때 사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를 거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자신만의 방식이란 건 자기가 잘하는 것보다는 뻔하지 않은 독창적인 방식이다. 자신의 생각 세계가 확실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가끔은 난해할지라도 말이다.
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예술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제품으로 그 답을 찾아가는 예술가의 브랜드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다.
신발 :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물건
패션 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가 시작한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이하 MMY)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 패션 브랜드로 국내에선 GD가 이 브랜드의 신발을 신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GD의 MMY 사랑은 각별해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가보면 MMY 신발을 신고 찍은 사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패셔니스타 GD가 사랑하는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출처 : GD 인스타그램]
미하라 야스히로의 습작들 [출처 :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공식 홈페이지]
타마 예술 대학교에 입학한 미하라는 일상 속에 어우러지는 예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 의해 가치가 정해지고 전시되어 감상만 하는 작품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런 그에게 신발은 예술적인 소재였다. 그래서 그는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94년부터 신발의 패턴을 공부하고 제작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와중에 장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위 사진처럼 장인조차 본 적 없는 어딘가 독특한 신발을 만들었다. 미하라는 뻔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역시 예술가다.
마침내 1997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미하라 야스히로’라는 신발 브랜드를 론칭하고 1998년엔 SOSU라는 매장을 오픈하면서 남성복까지 브랜드를 확장시킨다. 여기서 이 SOSU는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웠던 ‘소수’이다. 17, 19 같이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독특한 숫자로 이것 역시 독창적인 미하라의 디자인 철학을 드러낸다.
위 : MY-57, 아래 : MY-08 [출처 : 이베이]
미하라는 2000년도에 시작된 푸마와의 콜라보를 통해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알렸다. MMY의 디자인을 인상 깊게 본 푸마 재팬이 협업을 제안한 것. 당시는 지금처럼 브랜드 콜라보가 자주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 간의 콜라보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주 획기적인 만남이다. 푸마 콜라보 제품의 특징은 신발에 두 가지 디자인을 넣었다는 것이다. 신발 앞과 뒤의 소재를 다르게 하거나 아예 앞뒤의 디자인을 바꿔서 하나의 신발을 만들기도 했다. 푸마는 마감일 정도만 제시할뿐 그 외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고 미하라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겼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덕분일까, 미하라의 취향이 온전히 들어간 푸마x미하라 제품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만큼 흥행했고 무려 14년 동안 관계가 지속되었다.
23 F/W 제품 [출처 :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공식 홈페이지]
MMY는 S/S 05 밀라노에서 첫 쇼를 선보인 이래 매 시즌 쇼를 개최해 왔다.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2023 A/W의 주제는 ‘Imitation Complex’이다. 짝퉁의 역설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오리지널과 짝퉁의 경계가 흐려지고 오리지널의 고유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짝퉁을 통해서 오리지널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즌 제품들은 트러커 청자켓, 블루종, 피코트같이 패션의 아이콘과 같은 아이템들을 변형한 것들이 많았다. 위 사진 외의 신상 제품을 더 보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해 보자.
청담동에서 마침 MMY 팝업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지체 없이 달려갔다.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해외 명품 편집숍인 MUE 4층에 가면 MMY 팝업 스토어를 만날 수 있다. 매장 한쪽에 놓인 드럼과 쿵쿵거리는 음악 덕에 쇼장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 왠지 박자를 맞추어 워킹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매장 가운데는 신발과 가방이 놓여있고 가장자리에는 신상 제품들이 전시된 구조 또한 패션쇼장을 연상시킨다.
기사를 준비하며 이번 시즌 제품 사진을 여러 번 봤던 터라 실물로 볼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미하라의 제품 기획에 감탄했다. 옷을 보고 평가하기 전에 디자이너의 의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만든다는 점이 특히 놀라웠다. Imitation Complex라는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하지만 예쁘다는 인상까지 연결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최종 평가 기준에는 취향이 작용할 테니까. 하지만 제품 너머에 있는 디자이너의 생각을 전달하는 물건으로써는 아름답다.
MMY의 근본은 역시 신발이다. 하지만 신발들을 보면 어딘가 익숙하다. Wayne은 나이키 에어포스가 떠오르고 Blakey와 Peterson는 각각 아디다스 슈퍼스타와 컨버스를 연상시킨다. 각 브랜드의 시그니처 모델에 MMY 오리지널 솔을 추가하여 카피와 오마주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이것 역시 미하라가 의도한 Imitation Complex일 거다. 참고로 GD가 자주 신는 신발은 컨버스를 오마주한 Peterson Low 모델이다. 팝업스토어는 10월 31일부로 종료했으니 여기(https://bit.ly/47hVjHX)에서 구매할 수 있다.
MUE × Maison MIHARA YASUHIRO
- 주소 :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80길 40, 4층
- 기간 : 9/5 – 10/31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가 출판하는 아트북, <Doirobuta> (출처 :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공식 홈페이지)
미하라 야스히로는 매 시즌 쇼에 맞추어 일종의 아트북을 제작한다. 책의 이름은 Doirobuta(土色豚) 직역하면 ‘흙빛 돼지’라는 뜻인데 여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소형 신문’이라는 뜻의 Tabloid를 거꾸로 읽는 것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이다. 쇼 기간에는 종이책으로 출간되고 홈페이지에서는 e북의 형태로 여기에 업로드된다. 한 권마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 그린 다섯 작가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들의 약력을 보니 대부분 젊은 신예 작가들이다. 예술대학 출신이어서 역시 예술학도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미하라 야스히로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는 유행에서 벗어난다. 유행을 따르는 기획에는 기획자의 생각이 반영되기 어렵지만,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질문과 생각이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제품에 그 질문들을 담아낸다. 이런 이유로 MMY의 제품은 호불호가 갈린다. 때론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더라. 평가하기 나름이라는 거다. 그래서 더욱 예술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미하라 야스히로도 이러한 평가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오히려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다양한 평가들을 살펴보며 흐뭇해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