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짜빈동…韓해병 294명이 베트콩 연대 박살낸 그날

11시간 백병전이 만든 '귀신 잡는 해병대' 신화의 정체

1967년 2월 14일 깊은 밤, 베트남 꽝응아이성 짜빈동 한국 해병 청룡부대 11중대 진지에 적이 들이닥쳤다. 베트콩 정예 2연대와 북베트남 정규군이 합세한 약 2,500명의 병력이, 단 290여 명이 지키던 진지를 향해 인해전술로 밀려들었다.

10대1 병력 차, 적이 먼저 노린 진지

짜빈동 진지는 한국군의 중부 베트남 작전 거점이었다. 적은 이 거점을 무너뜨리면 인근 작전 라인 전체를 흔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1개 중대 규모로는 막을 수 없는 병력으로 짜인 야간 기습은 처음부터 '한국군 박멸'을 목표로 한 작전이었다.

철조망을 뚫고 들어온 인해전술

베트콩은 박격포·로켓·기관총 사격으로 외곽 철조망을 무너뜨리고 진지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일부 적병은 한국군 참호 안에서 백병전을 벌일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어둠 속에서 피아 식별이 어려운 가운데 한국 해병은 진지를 끝까지 사수했다.

11시간, 백병전과 수류탄전의 밤

전투는 자정 무렵 시작돼 다음 날 아침까지 약 11시간 이어졌다. 화기가 떨어지자 해병들은 수류탄과 대검으로 적을 막았다. 진지 가장자리에서 후퇴 명령은 끝내 없었고, '진지 사수' 명령만 반복됐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옆 참호의 동료가 그 자리를 메웠다.

243 vs 15, 짜빈동의 결과

동이 트며 적은 시신과 부상자를 남기고 물러났다. 한국 해병 측 공식 발표 기준 적 사살은 243명, 한국군 전사자는 15명이었다. 1개 중대가 1개 연대 규모 적을 막아내며 보병 전투사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교환비를 만들어냈다.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의 출발

짜빈동 전투 이후 베트콩 사이에서는 '한국 해병을 만나면 피하라'는 지령이 돌았다고 전해진다. 한국 해병대는 이 전투를 계기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굳혔다. 단순한 표어가 아니라 적이 직접 붙인 평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 다시 본 한국군의 실력

짜빈동 결과는 미국 측에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미군은 한국군의 야간 방어와 백병전 능력을 재평가했고, 이후 베트남 전선의 핵심 거점 다수를 한국군에게 맡겼다. 동맹 파트너로서 한국군의 위상이 짜빈동 한 번의 야간 전투로 단숨에 격상됐다.

잊혀가는 이름,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