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살의 끔찍한 기억
그가 5살 때였다.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이다.
“아침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친구들과 놀 생각뿐이었다.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막 대문을 여는 순간이다. 하늘에서 뭔가 엄청난 빛이 번쩍 하더라.”
끔찍한 기억이다.
“가장 잊지 못할 것은 살이 타는 냄새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그야말로 동네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 수십 명이 냇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대부분은 그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살 수 있었던 건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른 지 모르겠다. 어느 틈에 모친이 나를 품 속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날아오는 유리 파편을 온몸으로 다 받아 내셨다. 흰 옷을 입고 계셨는데, 눈을 떠보니까 그게 전부 빨갛게 물들어 있더라.”
12살 큰 누나는 화를 피하지 못했다. 학교에 있다가 수십 명과 함께 쓰러졌다.
“어머니가 부랴부랴 달려가셨다. 다친 아이들은 틈에서 더듬더듬 명찰을 확인해 누이를 간신히 찾아냈다. 집으로 안고 왔지만, 상처가 너무 심했다.”
하얀 얼굴에 예쁘기로 소문난 누나였다. 하지만 심하게 짓물러, 알아보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가난한 형편에 병원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약 한번 써보지도 못했다.
“다음 날 새벽 무렵이었다.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들리더라.”

건강검진 잘못되면 ‘야구는 끝’
그나마 판자촌이어서 그 정도였다. 후미진 마을이라 산이 버티며 막아줬다. 훤하게 트인 옆 마을 사람들은 거의 다 희생됐다.
그렇다고 생존자들의 일상도 쉽지는 않았다.
“피폭자는 아무도 근처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학교에 화상 환자가 여럿 있었다. 팔ㆍ다리를 잃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따돌림을 받았다. 부모들이 ‘저 아이들과 같이 놀면 안 된다’라고 신신당부한 탓이다.”
이유가 있다.
“그때는 피폭도 전염병처럼 옮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대대손손 유전으로 전해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니 쉬쉬하며 살아야 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피폭자들에게 건강수첩을 발행했다. A~D 등급으로 분류한 증명서다. 그의 경우는 ‘A급’이었다. 원폭 투하 지점에서 반경 1㎞ 이내에 있었다는 뜻이다.
“자라면서 가끔 기침도 하고, 배도 아프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증상이 예삿일이 아니다. 혹시 원폭증이 아닐까. 그런 마음에 며칠씩 벌벌 떨어야 했다.”
어찌어찌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수위타자를 7번이나 차지하고, 통산 3000안타의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가 대단했던 것은 야구 실력뿐만이 아니다. 거칠고, 괄괄한 스타일로 유명했다. 상대 팀에서는 감히 눈도 못 마주칠 정도다. 혹시라도 시비가 붙으면 곤란하다. “니들 다 야구 못하게 만들어준다.” 오싹한 으름장을 들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 상남자도 겁나는 날이 있다.
“구단에서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그럼 일주일 전부터 걱정에 잠을 뒤척인다. ‘혹시라도 뭐가 나오면, 야구는 그날로 끝이다’ 하는 생각 때문이다.

“원폭 모르는 일본 젊은이를 보고”
그렇게 불안에 떨며 선수 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야구 해설가와 방송 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때까지도 피폭자라는 사실은 철저히 함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TV를 보던 중이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젊은 친구들의 대답을 듣고 기가 막혔다. ‘네? 전쟁이 나서 핵폭탄이 일본에 떨어진 적이 있다고? 언제, 어디였죠?’라고 반문하더라.”
그 장면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사람이 일본에 있다고?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절대 안 된다.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걸 위해서 아픈 기억이라도 끄집어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자료관을 찾아갔다. 그날의 상처를 잊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다.
“예전에는 자료관이 저만치 보이는 100m 앞에서부터 손이 떨리고, 울렁거리더라. 몇 번 시도하다가 안 되겠다고 실패했다.”
그러던 중에 초등학교 6년생의 편지를 받았다. ‘자신처럼 원폭의 진짜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받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잊어버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 아픈 과거를 알려야 한다.”

“8월 5일 다음을 7일로 해줬으면”
히로시마 출신으로 일본 야구의 전설이다. 올해 85세인 그가 요즘 가장 열정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다.
특히 202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니혼 히단코(일본 원폭피해자단체 협의회)’의 활동을 돕고 있다.
‘세계 유일의 피폭 야구인’이라는 신분으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이 글도 일본 TBS-TV가 9일 방송한 보도특집 ‘장훈 씨가 말하지 못했던 피폭 체험’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80이 넘은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예쁜 12살 누나가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새 ‘아프다’, ‘뜨겁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더라. 의사도, 약도 해줄 게 없었다. 어머니는 자기 옷을 찬물에 적셔 딸을 식혀 주는 것이 전부였다. 난 곁에서 누나 입에 포도 한 알을 물려줬지만, 끝내 먹지 못하더라.”
인터뷰 마지막 말이다.
“8월 6일이 정말 싫다. 8월 5일 다음 날을 (6일을 없애고) 7일로 해줬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