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의 시와 이수지의 그림으로 만난 ‘세월호 아이들’

임지영 기자 2026. 4. 1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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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의 생일이야〉는 12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진은영 시인의 시 ‘그날 이후’에 이수지 작가의 그림이 더해졌다. 유독 화사한 그림이 눈길을 끈다.
 2월24일 서울 중구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난 진은영 시인(왼쪽)과 이수지 작가.  ⓒ시사IN 박미소

이수지 그림책 작가가 ‘더미북’을 꺼내놓았다. 출간 전 가제본 형태의 책이다. “이것보다 훨씬 더 화사하게 나올 거예요.” 인쇄되는 순간 그림은 달라진다. 생생한 수채화도 스캔이 되어 파일 형태가 되는 찰나에 색이 변하고, 종이로 나오면 재질에 따라 또 달라진다. 이 작가는 이제 아예 인쇄했을 때 표현이 될 것 같지 않은 색은 쓰지 않는다. 출간을 앞둔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는 그의 설명대로 ‘화사한’ 그림책이다. 작가의 딸이 색이 화려해 ‘엄마 그림 같지 않다’고 했을 정도다.

진은영 시인의 시와 이수지 그림책 작가의 그림이 만났다. 12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은영 시인은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유예은 학생의 생일을 앞두고 ‘생일 시’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일주일가량의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인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작업을 해야 했다. “실존하는 아이라 상상의 나래를 펼 수가 없었다. 문학적으로 뭘 추구한다기보다 아이가 엄마나 아빠, 형제에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으로 썼다.” 그 시는 3년 전 출간된 진 시인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 ‘그날 이후’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번에 그림책에 맞게 시를 다듬었다.

책은 작은 빛으로 시작한다. 그 빛은 곧 촛불이 되고 집을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으로 이어진다.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아이가 현관문을 나선다. 그림 옆에 실린 문장은 이렇다. ‘엄마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쉬이 넘길 수 없는 장면이다. 언제나처럼 현관문을 열고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 아이가 등장한다. 교실에서, 편의점 앞에서, 빗속에서, 옥상에서, 벚꽃나무 사이에서, 집과 노래방에서, 수련회에서, 운동회에서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다. 그러다 점점 어려진다. 아기만큼 작아진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에 수록된 한 장면. ⓒ우리학교 출판사 제공

이수지 작가와 진은영 시인의 인연은 2019년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시작됐다. 당시 진은영 시인은 한강 작가와 함께 ‘사회역사적 트라우마’ 세미나에서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2022)을 수상하기 전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이수지 작가도 도서전에 참석했다가 강연을 듣게 됐다. 진 시인이 한국말로 강연을 했는데 통역을 하는 동안 약간의 시간차가 생겼다. 그날의 풍경이 묘했다고 이 작가는 말한다. “진은영 시인이 입을 뗀 순간부터 이미 한국 사람들은 울기 시작했다. 통역이 제공되기 직전 잠깐 사이, 웅성웅성하는 느낌이 있었다. ‘우리한테 세월호는 정말 트라우마구나, 트리거만 있으면 바로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고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슬픔을 겪은 모든 분들과 함께 쓴 시”

3년 전쯤 초록귤(우리학교) 출판사의 그림책 출간 제안을 받은 진은영 시인은 단번에 이수지 작가를 떠올렸다. 도서전에서 발표할 당시 이야기에 굉장히 공감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이수지 작가는 이 제안을 받기 3년 전 ‘세월호 아이들’을 주제로 그림책 작업을 하다 중단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 또 할 수 있겠지 하고 보관만 해뒀는데 출판사 연락을 받고 다시 꺼냈다. 그때 하던 작업의 이미지가 글에 잘 얹혀졌다. 다 때가 있구나 싶었다.”

시집 출간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진은영 시인은 생일 시 ‘그날 이후’를 각별히 아낀다고 했다. 이 시의 ‘개인적인 의미’에 대해 묻자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발견한 발레리아 루이셀리 멕시코 작가의 말을 빌려 설명했다. “자신은 혼자 시를 써본 적이 없다면서 항상 착한 유령들과 함께 썼다고 했는데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유령은 단순히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영혼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작품을 쓸 때 많은 사람과 함께 쓴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영향 받은 작가일 수도, 현재 영향을 주고 있는 관계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 때문에 슬픔을 겪은 거의 모든 분들과 함께 썼다는 느낌이 들어 굉장히 소중하다.”

처음 시를 읽은 이수지 작가는 첫 대목부터 가슴이 무너져 읽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강렬했다. “혼자 세월호 그림책 작업을 할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림이라는 게 구체적이면서도 실은 뭉뚝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작업물이 ‘뾰족’하게 표현되지 않고 ‘뭉툭’하게 나왔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작업을 접었다.” 이 시를 받고서야 비로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시로 읽었을 때와 그림책의 텍스트라고 생각하고 읽었을 때가 완전히 달랐다. “부족하고 아쉬웠던 무언가가 강렬한 단어로 또렷하게 다가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비로소 풀리는 느낌이었다. 뭉뚝하다고 여겼던 부분이 점점 뾰족해졌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을 보고 진은영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밑그림만으로도 감동을 받아 청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처음 시를 쓰며 유예은 학생 가족의 SNS 등을 참고할 당시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그림책에 ‘엄마의 마음’이 잘 담겨 좋았다. “이수지 선생 본인이 엄마라 그런지, 얘기를 많이 안 했는데도 엄마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부드럽고 위로가 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주어서 감사했다.”

ⓒ우리학교 출판사 제공

일상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참혹한 사건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피해자들을 고립시키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틀을 씌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 감각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호소력 있는 작업이었다.” 그런 소감을 전하지는 못했다. 시를 쓰고 나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다. 무거운 짐을 나눠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수지 작가에게 차마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이수지 작가 혼자 ‘세월호 아이들’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자녀들이 어렸다. 지금은 딱 ‘그 나이’를 통과하는 중이다. 이번에 아이들이 모델을 많이 해주었다. 딸아이의 수학여행 사진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요즘 애들이 봤을 때도 ‘우리 같다’고 할 만큼 생생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10대 아이들의 그림이 늘어난 이유다. “아이들이 몸을 기울인 각도라든지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생생하길 바랐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데 대한 슬픔까지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쁜’ 아이들

이수지 작가는 보통 그림책을 작업할 때 독자를 상정하지 않는다.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 때는 ‘어린이가 봐야 하니까 이래야 한다’라기보다 오히려 ‘거침없이 나아갈 때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린이가 좋아하겠지’ 생각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대상도 명확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다. 동료 작가들이 그의 작업물을 보고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걱정하는 지점을 피해 가고 싶었고, 굳이 잘못 해석될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게 가장 힘들었다.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이미지라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좋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는 특성도 있다.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점 때문에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진은영 시인도 다르지 않다. 실존했던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그 사람의 목소리로 글을 쓰는 방식이 주는 윤리적인 문제들이 있다. “예술가로서는 굉장한 용기를 내서 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 작업이 정당화되려면 최소한 시를 헌사한 사람이 흡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아이의 목소리라는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가족의 마음에 가 닿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 그림책을 본 가족들이 위로받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두 작가가 책 속의 그네 타는 그림을 함께 응시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진은영 시인은 아이가 그네 타는 그림에 유독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애도의 마음을 잘 드러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네는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며 율동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놀이다. 애도 역시 비슷한 일인지도 모른다. 부재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며,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일상에 바빠 어떤 존재를 묻어두었다가도 다시 자기 곁으로 끌어당기고, 또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불러왔으면 좋겠다.” 진은영 시인은 세월호 이후 생일 시 프로젝트와 인터뷰집 출간, 낭독회 등을 통해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왔다.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 유가족과 구체적으로 관계 맺는 일을 앞으로도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2년이 지났다. 이수지 작가는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 ‘그때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이 예뻤으면 하고 바랐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란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보여주고 싶었다. 책장에서 오래 살아남아 문득 우연히 손에 걸릴 때 한번 펴보고 다시 꽂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림책 독자는 0세부터 100세라고 얘기하는데 이 책이 정말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학교 출판사 제공

진은영 시인도 비슷한 생각이다. 참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기회가 될 것 같다. 이수지 작가는 얼마 전 팟캐스트에서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청년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그들이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고 해서 가만히 있지 않는 세대가 되기로 했다’고 말하는데 그게 너무 아프게 다가와서 눈물이 났다. 그 말을 절절하게 느꼈던 누군가와 함께 왜 그 말이 중요한지 되짚어볼 수 있는 책이길 바란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의 판매 수익금은 전액 세월호 참사 관련 공익 활동에 기부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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