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게임체인저가 된 드론[테크트렌드]
드론은 영국 해군의 사격 연습용 표적으로 등장했지만 지금은 산업용, 스포츠용, 취미용 등으로 용도가 다양해졌다. 민간 부문의 잠재적 수요에 힘입어 드론은 미래 유망 아이템으로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그런데 최근 드론 시장의 성장동력은 예상과 달리 방산 분야에서 구현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무기화된 드론의 가치가 확고하게 입증되면서 각국 정부의 드론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드론은 전쟁의 게임체인저이자 전장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수한 전과를 인정받고 있는 드론
드론은 조종사 없이 자율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UAV)를 의미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조종사가 직접 탑승하지 않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항공기나 선박, 잠수함 등 다양한 이동체를 지칭한다. 2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무기체계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차, 대포, 전함, 전투기, 미사일 등 전통적인 무기들 못지않게 드론이 우수한 전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최대 수력발전소인 드니프로 발전소를 파괴할 때 사용한 주요 무기는 미사일과 이란제 드론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지원받은 세계 톱클라스의 전차인 미국 M1 에이브람스, 독일 레오파드2, 영국 챌린저2 등을 파괴할 때 러시아가 사용한 무기는 자국산 드론인 랜싯(Lancet)이었다. 러시아는 랜싯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해군 경비정을 대파하기도 했다.
미사일, 전차 등 전통적인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드론 사용에 있어서 러시아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초기부터 드론을 정찰용 외에도 대전차 무기나 대포처럼 공격용 무기로 사용해 왔다. 우크라이나군은 취미용, 스포츠용으로 사용되는 소형 쿼드콥터형 드론을 개조해 러시아군의 전차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공격용 드론과 장갑차, 트럭 내부 또는 러시아 군인이 숨어 있는 건물 내로 진입시켜 자폭하는 자폭형 드론 등으로 사용한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소형 선박 형태의 해상 드론으로 러시아군의 대형 상륙함을 격침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드론은 소총보다 더 위력적이고, 대포보다 훨씬 정확하며, 일선 병사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어 지금처럼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진 전황에서 더 위력적인 무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취미용 드론이 자폭용 드론으로
그동안 드론 시장은 주로 민수용으로 발전해 왔다. 건설, 광업, 농업 분야에서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험지의 지형·지질을 관측·측량하거나 석유 시추 시설, 송유 파이프라인 등 초대형 구조물의 상태를 점검하는 유지·보수 작업에 많이 사용되고 있고 아마존 등 유통업체의 근거리 배송도 드론의 차기 주력 분야가 될 것이란 견해도 많았다.
국방 분야에서 드론은 주로 정찰, 탐색 등 지원 활동용으로 많이 목격되어 왔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공격용 드론은 고정익 드론 중에서도 여객기만큼 큰 주익을 가진 대형 드론인 제너럴 아토믹스의 MQ-9 리퍼처럼 일부 기종에 한정됐다.
그런데 이번 전쟁을 거치며 드론의 사용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일선에서 많이 사용되는 드론은 근거리 공격에 적합하면서도 조종하기에 편리한 소형 쿼드콥터형 드론과 소형 고정익 드론이다. 중국 DJI 등이 만드는 20~30cm 크기의 소형 쿼드콥터형 드론은 폭탄을 투하하는 공격용 드론과 목표물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직접 폭발하는 자폭용 드론으로 사용된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1인칭 시점 드론인 FPV(First Person View) 드론도 자폭용으로 애용되고 있다.
FPV 드론은 고글이나 헬멧에 달린 디스플레이를 통해 직접 탑승한 조종사의 관점에서 기체를 조종할 수 있는 드론이다. 주로 드론 경주 등의 스포츠, 취미용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보다 정확하게 조종할 수 있어서 차량 내부로 진입해 폭발하는 자폭용 드론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소형 고정익 드론도 종종 사용된다. 러시아의 고정익 드론 랜싯은 통상 자폭용 드론으로 불리기도 하는 배회 탄약(Loitering Munition)이다. 기본 중량 12kg에 3~5kg의 탄두를 싣고 전동 모터를 이용해 시속 80~100km의 속도로 최대 40분간 상공을 배회하다가 전차, 장갑차 등 목표물이 포착되면 그대로 돌진해서 폭발한다.
드론 시장은 당분간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주로 개인의 취미, 스포츠용으로 사용되던 쿼드콥터형 소형 드론이 최전방에서 미사일이나 포탄의 역할을 도맡아서 일상적인 소모성 무기로 자리 잡았다. 전쟁 초기와 달리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전선에서 매일 드론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최근 우크라이나의 드론 조종병 1명이 매일 소비하는 드론 대수는 최대 15대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다. 이에 더해서 2년 넘게 지속되어 온 전쟁이 점차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급증하는 군용 드론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는 드론 생산량 확대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 2024년 초 우크라이나 정부는 드론 생산량을 연간 100만 대 수준으로 늘릴 계획을 밝힌 가운데, 드론 생산 기반도 군수 기업과 일반 기업을 넘어 자원봉사자 모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정부도 2024년 드론 생산량을 전년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140만 대로 늘릴 계획을 공개했다. 시장에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공격용 드론 수요를 배경으로 전 세계 군용 드론 시장이 향후 수년간 연 10~15%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3년 약 100억 달러 수준에서 2029~2030년 무렵에는 연간 최대 3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성비, 조종성, 정확도
일선에서 공격용 드론의 사용이 대폭 늘어난 것은 높은 가성비와 편리한 사용성, 향상된 정확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최전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공격용, 자폭용 드론의 단가는 대전차 미사일, 포탄 등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무기류보다 저렴하다. 공격 목표인 전차나 대공미사일 시스템의 가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은 편이다.
예를 들어 각종 언론, 조사 자료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이 많이 사용하는 FPV(First Person View) 드론의 단가는 약 400달러(약 54만원)다. 반면 사용량이 많은 155mm 포탄의 제조 비용은 1발당 800∼9000달러(약 110만∼1350만원), 위성항법 기능이 있는 유도포탄은 10만 달러(약 1억3500만원)에 달한다. 미국이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 제블린의 가격은 약 10만 달러여서 FPV 드론보다 약 250배나 비싸다. 그래서 드론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러시아군 전차 가격이 대당 100억원 이상이므로 우크라이나군 FPV와의 교환비는 최소 5만 배 이상이나 된다. 우크라이나군은 FPV 드론보다 약 34만 배 비싼 1.36억 달러 상당의 S-350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파괴한 적도 있다고 한다. 둘째, 군용으로 전용되는 소형 쿼드콥터 드론은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조종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그래서 전장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드론 조종병을 양성하기에도 용이하다.
중국은 독주, 미국은 견제
세계 민간용 드론 시장은 DJI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중국산 드론은 미국 취미용 드론 시장의 90% 이상, 산업용 드론 시장의 70%, 응급 구조용 드론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취미용 드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민간용 드론은 언제든지 자폭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고 각종 산업, 지리 정보의 유출 창구로 사용될 우려가 커서 미국은 DJI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될 만한 자국 기업이 거의 없는 상황이므로 당분간 군사용 소형 드론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독주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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