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배임 300억도 1000억도 도긴개긴? 최신원 전 회장 판결이 남긴 '숙제' [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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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인스타그램

5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지만, 이를 계기로 법조계에서는 양형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횡령·배임 양형 기준의 최대치가 300억원으로 묶인 탓에 최 전 회장의 경우처럼 관련 범행 금액이 500억원을 넘겨도, 혹은 수천억원대의 혐의가 입증돼도 300억원과 같은 잣대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횡령·배임에 대한 처벌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관련 양형 기준을 범죄 규모에 따라 더욱 촘촘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 등의 혐의를 받는 최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15일 확정했다.

최 전 회장은 △개인 골프장 사업 추진 △가족·친인척 허위급여 지급 △개인 유상증자 대금 납부 △부실 계열사 자금 지원 등의 명목으로 SK네트웍스와 SK텔레시스 등 계열사 6곳에서 약 2235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이 중 약 580억원을 횡령·배임액으로 판단했고, 2심에서는 이보다 20억원 줄어든 560억원을 유죄로 인정했다.

문제는 이 같은 판단을 내릴 때 참작하는 양형 기준상 횡령·배임액의 상한선이 300억원이라는 점이다. 양형 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최 전 회장 사건처럼 횡령·배임액이 500억원을 넘기도 하고 수천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모두 300억원 이상에 해당하는 양형 기준이 적용된다. 횡령·배임죄의 최대 양형 기준은 300억원 이상이 기본 5~8년(가중 7~11년)이다. 그다음으로 50억원 이상~300억원 미만이 기본 4~7년(가중 5~8년), 5억원 이상~50억원 미만은 기본 2~5년(가중 3~6년) 등이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윤준기 변호사는 "횡령·배임액이 30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액수나 죄질과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처벌된다"며 "양형 기준을 현행보다 세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법률사무소 승검의 이선영 변호사도 "대법원의 양형 기준상 최대 구간을 300억원 이상으로 둘 것이 아니라 더 세분화해 400억원 이상, 500억원 이상 등의 구간을 설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양형 기준이 법정형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 전 회장 사건에 적용된 특정경제범죄법에서는 횡령액이나 배임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한다. 하지만 양형 기준상 300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인 경우 기본 형량 범위는 5~8년에 그친다.

이 변호사는 "특정경제범죄법에서 거액의 재산 범죄에 대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한 입법 취지는 그만큼 횡령·배임 행위로 인한 직간접적인 손해가 크기 때문인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형 기준 때문에 낮은 선고형이 선고될 빌미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며 "대법원 양형 기준은 실제 법 감정에 비춰볼 때 낮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형 기준 때문에 법률인 특정경제범죄법 조문이 사문화돼 양형 공백(11년 초과~무기징역)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업무상 배임 또는 횡령은 주로 기업의 임직원이 범하며, 대기업 사건의 경우 배임액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최대 형량을 상향함으로써 일반국민들의 법 감정에 부합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박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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