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출장인데… 보고서는 짜깁고 오타까지 ‘복붙’ [S스토리]
6년 전 내용 재탕… 기사·위키백과 베껴
초등학생 수준 허접한 내용으로 가득
전북도는 잼버리 관련 연수만 99차례
사전 심의 자료제출 사실상 관행 그쳐
부천시의회, 올 해외연수비 전액 삭감
구례군은 보고서 대신 사후 평가·심사
“전문가 동행 등 해외연수 내실화해야”
“날씨가 좋지 않고 일정이 짧아 아쉽다.”
9기 대전시의회 의원들이 출범 4개월 만인 2022년 12월 떠난 첫 해외연수는 ‘크리스마스 여행’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대전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6박8일 동안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3개국을, 산업건설위원회는 비슷한 시기 8일간 프랑스·스페인을 방문했다. 이들 연수 소요경비는 1인당 400만∼500만원씩, 8000여만원이다.
다른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 해외연수도 대전시의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전북 공무원들이 나간 해외연수 역시 외유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전북도청 공무원과 도내 시·군 공무원 등 15명은 지난해 9월 3박5일간 에너지 시책 및 신재생에너지 기술의 우수 사례 연수 목적으로 싱가포르를 다녀왔는데 15쪽 분량의 결과보고서는 출장 개요와 방문지 소개가 대부분인 ‘맹탕 보고서’였다.
강원도청이 2022년 1년에 걸쳐 진행한 해외연수의 결과보고서에는 정부 부처의 것과 똑같은 문장이 나온다. 심지어 오타까지 긁어다 붙여 빈축을 샀다. 같은 해 12월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직원들이 태국으로 ‘선진 도로환경 벤치마킹’ 해외연수를 다녀온 후 제출한 보고서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발간 보고서를 그대로 베껴 써낸 엉터리 보고서였다.
◆잼버리 출장만 99차례… 사전 심의 유명무실
거액을 들여 추진한 해외연수는 민생을 뒤로한, 지방의회 의원들의 ‘바람 쐬기용’이 됐다. 부실 연수를 예방하고 내실 있는 해외연수를 위해 시행된 보고서 제출이 되레 외유의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의 우수한 정책을 살펴보고 지역과 기관 정책으로 연결한다는 취지는 색이 바랜 지 오래다. ‘정책 벤치마킹’이라는 연수 목적은 매번 해외연수 명분용으로만 전락했다. 대전시의회의 경우 2014년 대전도시철도 2호선으로 트램이 결정된 후 지난해까지 트램 시찰이 목적이거나 목적에 포함된 해외연수는 10차례에 달했다.
지방의회의 경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본회의에서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지켜진 경우는 거의 없다. 김 활동가는 “결과보고서 역시 대충 작성해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감시자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 의식이 만연하다”고 전했다.
◆해외연수 폐지하고 결과보고서 시민 평가받고
맹탕 해외연수에다 맹탕 결과보고서가 끊이지 않는 것은 연수 일정을 대부분 여행사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차원에서 정책과 연관된 대상지를 물색하는 게 아니다 보니 관광 명소 위주로 동선을 잡게 된다. 또 연간 계획이 미리 짜여 있지 않다 보니 해외연수가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것도 한 요인이다. 지방의회의 경우 예산만 세운 채 세부 일정은 편의에 따라 정해진다.
외유성 논란이 반복되자 아예 해외연수를 없앤 지방의회도 있다. 경기 부천시의회는 올해 시의원 해외연수비 8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국외 출장 관련 예산 1억1000만원에서 해외 장기출장비 8600만원을 덜어냈다. 시의회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시의회에 해외 교류 행사 초청이 올 경우가 있는데 불가피하게 나가야 하는 예비비 성격으로 2500만원 정도 남겼다”며 “부천시의 올해 재정이 좋지 않아 기존 사업 추진을 위해 지방채 발행과 각 부서 예산 삭감 등 자구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연수의 외유 논란을 차단하고 민생에 집중하기 위한 의회의 결의 차원”이라고 말했다.
전남 구례군은 공무원 국외 출장 후 기존 보고서 제출 방식에서 벗어나 사후 평가·심사 과정을 통해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개선했다. 구례군은 지난해 10월 해외연수를 다녀온 직원들과 심사위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2023년 국외 배낭 연수 결과 보고대회’를 열었다. 배낭 연수를 마친 13개 팀 77명이 사전 추첨한 순서대로 발표를 진행하고 군의원과 대학교수, 광주발전연구원 박사 등 5명의 심사위원이 발표 내용을 평가했다. 구례의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활용해 화엄사, 지리산 호수공원, 섬진강 대숲길 등에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해외연수 내실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관련 전문가가 동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전시가 2015년 7월 트램 시찰을 위해 민·정·학·관 공동시찰단을 구성해 다녀와 제출한 결과보고서는 현재까지 모범사례로 꼽힌다. 수준 미달의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제출한 지방의원과 공무원 등 공직자는 경비를 환수하고 향후 연수 기회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의원 홈페이지에 올리기 전 주민들을 상대로 결과보고서 발표회를 갖고 피드백을 받는 등 관성화한 보고서 제출은 이젠 그만해야 한다”면서 “시민 눈높이에 맞고 내실 있는 해외연수를 운영하기 위해선 지방의회나 공공기관 스스로 신뢰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전국종합 groo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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