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비극 외면한 나쁜돈벌이 반복…점점 짙어지는 ‘주식투자’ 색안경

美 트럼프 ‘전쟁강행’ 발언에 ‘전쟁 테마주’ 투심 가열…“투자 이전에 인륜적 가치부터”
[사진=연합뉴스]

각 국가 간의 분쟁, 혹은 전쟁의 여파를 돈벌이 기회로 삼는 이른바 ‘전쟁 테마주’ 투자 행위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에도 한 나라의 비극적인 일이 생겨날 때 마다 주로 방산 기업으로 구성된 ‘전쟁 테마주’에 투심이 몰리면서 주가가 급등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한창인 최근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투자 행태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떠나 시장 전체에도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재료 삼아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행태가 자본시장의 질서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많은 생명의 비극마저 외면한 나쁜 돈벌이 기승…수십 년간 반복된 ‘잔인한 상한가’

2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한국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는 발언 직후 국내 증시에서 ‘전쟁 테마주’로 분류돼온 종목들이 일제히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란 새 정권의 휴전 요청 소식을 전하며 조기 종전 기대감을 키웠으나 오전 10시 대국민 연설에선 정반대의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이날 빅텍 주가(종가)는 전일 대비 27.18% 오른 6130원을 기록했다. 전자전(EW) 시스템 및 군사 방향 탐지 장치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빅텍은 과거 국가 간 분쟁이나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기가레인(+29.92%) ▲삼현(+5.00%) ▲한일단조(+4.07%) ▲스페코(+2.16%) ▲휴니드(+1.99%) 등 또 다른 ‘전쟁 테마주’ 종목들 역시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여파로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각각 4.47%, 5.36%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 2월 국내 전쟁 테마주 주가 현황.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기가레인은 전투기용 무선주파수(RF) 통신 부품을, 삼현은 전술 유도무기용 모터 및 제어 시스템을 각각 생산하고 있다. 한일단조는 미사일 등 정밀 유도무기의 탄체를 제작하는 단조 전문 기업이며 휴니드는 군 전술통신 체계와 지휘통제 시스템 설계 기업이다. 스페코는 함정용 안정기 등 해상 방산 설비 공급이 주력 사업이다. 이들 기업은 시가총액이 상대적으로 작은 ‘스몰캡(중소형주)’ 종목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이유는 ‘전쟁 테마주’ 투자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국제사회 분쟁이나 전쟁 발발 시 기업의 내재가치와 무관하게 ‘전쟁 테마주’ 종목이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일례로 과거 빅텍의 경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나 다른 나라 간에 분쟁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줄곧 두 자릿수 이상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2017년 8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도발을 향해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고 경고하자 다음날 빅텍 종가는 전일 대비 19.51% 상승했다. 2020년 1월 당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살되며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이란의 미군기지 보복 공격 소식까지 전해지자 다음날 빅텍 주가는 상한가(29.92%)를 기록했다. 같은해 6월에도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으로 남북 간에 긴장 분위기가 조성되자 빅텍 주가는 연일 고점을 경신하며 장중 1만4850원까지 치솟았다.

▲ 1일(현지시간) 중동전쟁 관련 대국민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번 미국·이란 전쟁 직전에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기에도 국내 ‘전쟁 테마주’ 종목들은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전 세계의 증시가 일제히 주춤했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당시 빅텍은 전일 대비 23.84% 올랐으며 한일단조(+22.68%), 스페코(+17.05%), 휴니드(+8.60%) 등도 일제히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타인이나 타국의 비극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전쟁 테마주’ 투자 행위는 주식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뿐 아니라 시장 전체의 혼란까지 부추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쟁 테마주는 태생적으로 타인의 불행과 안보 위기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며 “수익률이라는 수치 뒤에 가려진 전쟁의 참혹함과 인륜적 가치를 한 번쯤 되새기는 책임 있는 투자 습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의 본질적 가치 보다 심리적 쏠림 현상의 영향을 받는 투자인 만큼 폭락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김성원 르데스크 기자

☞ 기사 속 Q&A
Q1. 2일(한국시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이후 ‘전쟁 테마주’가 급등한 이유는?
A.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는 강경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감이 다시 고조됐기 때문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전쟁 테마 대장주로 꼽히는 빅텍이 20% 오르는 등 넘게 관련 종목들이 일제히 상승했다.

Q2. 전쟁 테마주로 분류된 기업들이 주로 영위하는 사업은?
A. 전쟁 테마주 대부분은 정밀 유도무기나 군사 통신 장비를 생산하는 방산 기업들이다. 기가레인은 전투기용 미사일 부품을, 한일단조는 미사일 탄체를 제작하며 빅텍은 전자전 시스템 개발을 주력으로 한다.

Q3.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전쟁 테마주의 흐름은?
A. 당시 전 세계 증시는 전쟁의 공포와 경제적 충격으로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지만 전쟁 테마주는 전쟁 수혜 기대감에 힘입어 시장 전체 흐름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빅텍은 23.84% 상승했으며 한일단조(22.68%), 스페코(17.05%) 등 주요 종목들도 동반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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