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전세사기 어떻게 잡았나…넉달간 "야근 또 야근"[新경찰청사람들]

송상현 기자 한병찬 기자 2023. 2.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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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서 지능팀 김대희 경감
피해자 일일이 설득…"전세금 못 돌려줘 죄송해요"
사진은 15일 오후 서울 시내의 빌라 밀집지역. 2023.2.15/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한병찬 기자 = "보이스피싱 아녜요?"

임차인이 413명에 달했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임차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임대인이 전세사기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전세 만기가 되면 이들 역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자가 될 게 뻔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전세사기 일당을 잡아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임차인들을 설득해 피해진술서를 받고 임대차 계약서류 등을 일일이 분석해 전세사기를 입증할 증거를 찾았다. 두 아이가 아빠 얼굴을 잊을 정도로 4개월간 야근을 이어갔다.

사진은 2일 서울 시내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밀집 지역. 2023.2.2/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동시진행 수법, 8명 조직적 가담"…42억 세금에 전세금 반환 어렵자 현금 빼돌려

'빌라왕' 이모씨를 검거해 특진자 이름을 올린 서대문경찰서 지능팀 김대희 경감(41)의 얘기다. 지난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서 근무한 김 경감은 413채의 빌라를 소유하면서 임차인 120명의 전세 보증금 316억원을 편취한 이씨(32)와 일당 8명을 팀원들과 함께 검거했다.

김 경감은 지난 8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피해자들을 팀원 6명과 함께 탐문하기 시작했다.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것이 형법상 사기에 해당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다보니 임차인들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조차도 망설였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김 경감은 한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던 27명의 세입자를 발견했다. 김 경감은 "해당 집주인이 임대사업자라는 것을 알고 구청을 통해 파악해보니 413채를 보유하고 있었다"며 황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특히 이 임대인 이씨는 중개보조원으로 부동산 관련 유명 TV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한 인물이었다.

이씨는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 임차인과 빌라 전세 계약을 맺고 임차인에게서 받은 보증금으로 해당 빌라를 매입하는 이른바 '동시 진행' 방식으로 빌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2018년 9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서울 내 강남구를 제외하곤 전 지역에서 매입이 진행됐다. 한달에 많게는 빌라 40채가 이들의 타깃이 됐다.

김 경감은 "중개보조원이었던 이씨가 직원들을 고용해 8명 규모의 OO하우징이라는 컨설팅업체를 차렸다"며 "본인은 팀장을 하고, 이사, 과장, 대리 직책 등을 주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들에게 현장을 뛰어 동시진행이 가능한 물건을 찾도록 하고 물건을 가져오면 수수료를 직원과 5대5로 나누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2021년 말 종합부동산세 42억원이 부과되자 더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현금을 빼돌리기 위해 금이나 게임머니로 바꿔놓거나, 추후 현금화가 쉽도록 명품 가방이나 그릇 등을 사기도 했다. 일부 재산은 공범에게 명의를 돌렸다.

◇"내가 무슨 죄냐" 빌라왕 시종일관 범행 부인…전세사기 판례 없어 '법리싸움' 치열 이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했다. 김 경감은 "이씨는 끝까지 '나는 정상적인 임대사업자다. 내가 무슨 죄냐'는 태도를 보였다"며 뻔뻔한 태도에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혐의 입증이었다. 이전까지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계약 불이행에 해당하기 때문에 민사소송으로 다뤄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형법상 사기죄를 적용하려면 사람을 기망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했다. 이씨가 고의성과 부정한 의도를 가지고 임차인들을 기망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전세사기와 관련한 딱 떨어지는 판례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씨를 구속하기 위해서 치열한 법리싸움이 시작됐다.

김 경감은 먼저 빌라를 사들이기 전후 이씨의 삶을 비교했다. 이씨는 임대사업을 하기 전에는 카드 빚에 시달렸고 렌터카 비용도 못 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하지만 무자본인 상황에서도 동시진행 수법을 이용해 빌라를 매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전세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있으면서도 대량의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씨가 빌라를 매입하면서 임차인과 다시 계약을 맺을 때 고지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이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소명했다. 이씨가 자신이 수백채의 빌라를 가진 임대사업자고 건축주 등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사실을 임차인에게 알리지 않은 게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 특별승진 임용식'에서 승진 대상자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3.2.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피의자 전세금 못 돌려줘 안타까워"…주변시세 보고 전세 계약해야 '당부'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김 경감은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인당 2억~3억대로 대출을 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피해자의 대다수인 젊은 사람들은 조사받으면서 우는 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경매로 가도 전세금의 60%까지 가격이 떨어지고, 매입할 사람조차도 없는 실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김 경감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금을 직접 회복해줄 수는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면서도 "피해자들은 이씨 신병을 확보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김 경감은 전세를 구하기에 앞서 주변 시세와 분양가를 잘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대다수 전세사기가 매매대금을 실제보다 부풀린 후 전세금을 높이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경감은 "분양가를 보고 전세가율이 100%인 경우에는 절대 계약하면 안 된다"며 "최소한 60~70% 선이 적당하다"고 힘줘 말했다.

1981년생인 김 경감은 일반 공채(순경)로 시작해 두 번의 특진으로 비교적 빨리 경감 자리에 올랐다. 2019년엔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1994년 도난당한 보물 '만국전도' 등을 회수하는데 공을 세워 특진했다.

치열하게 경찰 생활을 하는 김 경감이지만 경찰이 되기로 한 계기는 다소 의외였다. 김 경감은 "울릉도에서 군 생활을 하다가 휴가를 나왔는데 한 경찰이 오토바이에 낚싯대를 꽂고 지나가는 것을 봤다"며 "편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에 제대하자마자 노량진에 가서 경찰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고 웃었다.

하지만 김 경감은 초임 시절 강력팀에서 근무하면서 범인 검거에 대한 집착을 배웠고 이를 신념화했다. 김 경감은 "사건을 엄청나게 파고 끝까지 집요하게 수사하는 것이 나만의 승부수"라며 "끝까지 파헤치면 뭔가 나오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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