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A 5.06인데 45억? KIA가 양현종에게 ‘미친 베팅’한 진짜 이유

작년 양현종의 숫자만 놓고 보면 솔직히 놀랄 만하다. 2025시즌 7승 9패, 평균자책점 5.06.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 가운데 최하위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그런데 KIA는 지난 12월, 그에게 2+1년 총액 45억을 안겼다. “이 정도면 예우가 아니라 과감한 베팅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계약을 단순히 “레전드에게 주는 선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KIA가 양현종에게 산 건 성적표 한 장이 아니라, 시즌을 굴리는 ‘시간’이다. 선발 로테이션이 무너지면 팀은 1년 내내 불길하게 흔들린다. 그럴 때 가장 무서운 건 1선발이 아니라, 4·5선발이 매주 한 번씩 ‘버티는’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다.

양현종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이닝’을 던져왔다. 2007년부터 18시즌 동안 2656이닝을 먹었고, 2014년 이후 11시즌 연속 150이닝을 넘겼다. 이 기록은 멋있어서가 아니라, 팀 입장에선 계산이 가능해서 더 가치가 크다. “이번 주도 5~6이닝은 어찌 됐든 던져준다”는 선발이 있으면, 불펜도, 벤치도, 다음 시리즈 계획도 살아난다.

KIA가 지금 양현종에게 기대하는 건 ‘전성기 양현종’의 화려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록 욕심을 내려놓은 양현종이 시즌 운영의 중심이 돼주는 그림이다. 양현종 본인도 “150이닝, 170이닝을 던지면 후배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대목이 그냥 겸손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다.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 많이 던지는 것 자체가 실력이 아니라 리스크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KIA는 지금 ‘구단의 중심’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워야 한다. 최형우, 박찬호가 떠났고(이 부분은 팬들이 가장 크게 체감할 변화다), 김도현·윤영철처럼 젊은 선발 자원도 몸 상태가 불안하다. 이런 시즌에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실력이 아니라 분위기다. 누구는 흔들리고, 누구는 책임을 떠넘기고, 덕아웃이 말라간다. KIA가 양현종에게 거는 기대는 결국 맏형으로서의 무게감이다.

그렇다고 “리더십만으로 45억이 설명되냐”는 반문은 남는다. 맞다. 그래서 이 계약의 본질은 ‘감성’보다 ‘현실’에 더 가깝다. KBO에서 선발 한 자리를 안정적으로 채워주는 선수는 시장에 흔치 않다. 특히 KIA처럼 재정비가 필요한 팀은, 외부에서 즉시전력 선발을 구해 오기 더 어렵다. 그러면 결국 내부에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양현종의 45억은, 그 시간을 사는 비용이다.

다만 이 계약이 “무조건 성공”이 되려면 조건이 있다. 양현종이 예전처럼 그냥 몸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면 위험하다. 평균자책점 5점대는 운이 나빠서만 나오지 않는다. 구속이 떨어지면 직구가 ‘좋은 공’이 아니라 ‘맞기 쉬운 공’이 되고, 실투 한 번이 홈런으로 바뀐다. 결국 2026년 양현종은 투구 내용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전처럼 힘으로 눌러 찍는 투구가 아니라, 구종 조합과 코스 싸움으로 타자를 흔드는 투구가 돼야 한다.

여기서 이범호 감독의 역할도 크다. 양현종이 스스로 “코치진이 정해준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말만으로는 안 된다. 특정 시기엔 5이닝만 던지고 내려오는 결단, 불펜과의 연결, 상대 타선에 따라 등판 간격을 조절하는 운영이 필요하다. 양현종이 170이닝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 대신 120~140이닝을 ‘괜찮은 내용’으로 채우면, KIA는 그걸로도 시즌을 충분히 설계할 수 있다.

또 하나, 팬들이 꼭 봐야 할 지점은 “기록 경쟁”이다. 양현종은 최다승(송진우 210승)까지 24승, 최다이닝(3003이닝)까지 346이닝이 남아 있다. 탈삼진은 이미 1위다. 사람 마음이란 게 묘해서, 기록이 눈앞에 보이면 다시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양현종이 진짜 멋있어지려면, 올해는 기록보다 팀 재건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후배 선발이 흔들릴 때 옆에서 조용히 잡아주고, 로테이션이 깨질 때 가장 먼저 공을 들고 나가는 역할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ERA 5.06에 45억은 ‘성적표’만 보면 과하다. 하지만 KIA가 지금 필요한 게 단순한 성적이 아니라 로테이션의 버팀목, 그리고 팀의 중심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현종이 전성기처럼 던질 필요는 없다. 대신 무너지지 않는 투수, 그리고 후배들이 기댈 수 있는 투수가 되면 된다.

KIA가 45억을 걸어놓은 건 “양현종이 다시 에이스가 돼라”가 아니다. “양현종이 버텨줘야 KIA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주문에 가깝다. 올 시즌, 양현종이 정말 숫자를 지웠다면—아이러니하게도 그때야말로 양현종의 존재가 가장 크게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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