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풍의 이익이 다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고려아연 배당이죠. 배당이 줄어들 수 있는 신사업 투자를 반기지 않겠죠"
고려아연과 영풍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주총에서 영풍이 고려아연 경영진을 향해 불만을 드러냈는데 사실 앙금은 이보다 좀 더 오래전에 시작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은 작년 8월 고순도 니켈 사업 투자, 제3자 배정 증자를 결정하기 위해 고려아연이 연 이사회에 불참했다. 그런데도 올 3월 주총 이전까지 양사는 갈등을 표출하는 것을 자제했다. 실제 2월 열린 IR에서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내부에서 계열분리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사실상 영풍과 갈등 표출은 하지 말아야 할 불문율로 통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투자 유치에서 시작된 양가의 균열이 주총을 기점으로 크게 벌어졌고 고려아연은 덧붙여 영풍과 원료 공동 구매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거래처에 엄포를 놨다. 이렇게 양측의 오랜 파트너십은 2024년 4월들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려아연의 사옥 이전도 같은 맥락에서 양측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주목받는 이슈다.
사실 기업이 사정에 따라 업무 공간을 변경하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사옥 이전은 한두 달 새 뚝딱 결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고려아연 역시 2년 전부터 사옥 이전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의 직원 수(기간제 근로자 제외)는 2020년 대비 300여 명이 늘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이 업무 공간의 열악함을 토로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풍의 만류로 이사를 보류했다. 당시 영풍은 계열사를 다른 건물로 옮기면서까지 고려아연을 배려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도 업무 공간이 부족해 일부 직원들이 별관을 사용하는 상황이 되자 고려아연은 새 거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렇듯 고려아연의 종로행은 두 집안의 갈등과 무관하지만, 요즘 상황에서는 총체적 갈등의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고려아연의 경력 채용 공고도 마찬가지다. 이달 13일까지 상반기 경력직을 뽑기 위한 서류를 받았다. 채용 규모는 두자릿 수다. 투자전략,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태양광패널 관련 소재·배터리 소재 및 리사이클링 등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신사업 분야 경험자를 대거 유입하는 것이 이번 채용의 목표다.
이번 대규모 채용은 창립 50주년이라는 대형 이벤트와 맞물렸다. 그러나 재계에선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영풍산업을 일군 장병희, 최기호 두 창업주는 황해도 실향민 출신이다. 이북 출신 창업주의 공통점은 안정적인 현금흐름 바탕의 우량한 재무구조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부채비율이 30%를 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을 맡게 된 이후로 양가의 경영 방침이 갈리기 시작했다. 이번 신사업 분야 인재 확보도 연장선이다.
명분이 어떻든 두 가문이 틀어진 것은 맞다. 재계 관계자는 "영풍이 현대차 대상 유상증자 무효 소송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고려아연 내부에선 '같이 갈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 걸로 안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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