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부 변화 없인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시기상조"(종합)
"정부가 잘못된 정책 인정하지 않으면, 이 사태 해결 안 돼" 강조
의협 전·현직 간부 수사관련 전공의 소환 비판…"수사 즉각 중단해야"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중심으로 정치권이 추진 중인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이는 시기상조"라며 참여 여부를 일축했다.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도 의제가 될 수 있는지를 두고 당정 간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로써 추석 연휴 전 개문발차(開門發車)라도 가능할지 관심을 모았던 협의체 출범은 불발로 돌아갔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대란 관련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에 대한 의료계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의협은 이날 오후 1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대한의학회, 대한개원의협의회,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단협의회, 의협 대의원회 등과 함께 관련 긴급연석회의를 진행했다.
최 대변인은 "우리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현 시점에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추석을 앞두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응급실, 이어서 닥쳐올 중환자실 위기를 비롯해 각 진료과 문제 등 우리가 의료현장에서 매일 겪고 있는 의료시스템의 붕괴는 실로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여당을 이끄는 한 대표가 '의사는 정부의 적이 아니고, 오랜 역사 동안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한 발언이나, 더불어민주당이 '2025년도 의대 증원 문제도 논의 의제로 포함하자'고 한 제언에 대해선 감사를 표했다.
실제로 해당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한 대표는 이날도 "전제 조건과 의제 제한 없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만 생각하고 빨리 모이자는 호소를 드린다"고 의료계의 결단을 촉구했다. 내년도 의대 증원은 현실적으로 논의가 불가하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도 "제가 제안하는 거니까 제 말을 들으시면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의료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정부가 급격한 의대 증원 추진으로 혼란을 자초한 데 대한 잘못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대변인은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정부 질문에서 '의료대란의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질문한 야당 의원 질의에 "전공의에게 첫 번째 책임이 있다"고 답한 부분을 콕 집어 "국무총리가 지금도 전공의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현실을 완전히 왜곡하는 태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국민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지적에 "가짜 뉴스"라고 받아친 대목도 겨냥했다.
이어 "지금 의사들은 아무도 파업하고 있지 않다. 정부의 폭압적인 의대 증원에 좌절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수련과 학업을 포기하면서 잘못된 정책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추석 연휴 직전까지 의협 전·현직 간부 수사의 일환으로, 전공의들이 잇따라 경찰에 소환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이날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김태근 가톨릭중앙의료원 전공의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최 대변인은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 중에도 '협상'이 거론되면 총구를 거두는데, 정부는 협의를 하자면서 동시에 아무 죄 없는 전공의들을 경찰서로 불러 전 국민 앞에 망신을 주고 겁박하면서 협의체로 들어오라고 한다"며 "이는 대화 제의가 아니고, 의료계에 대한 우롱"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의료계와 대화하길 바란다면 정부는 즉각 전공의 사직 관련 수사를 중단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이 대화 테이블에 오르지 않는 이상 협의체 참여를 고려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최 대변인은 "정부의 무리한 의대 증원 논란으로 수험생들이 겪어야 할 혼란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며 "그러나 2025년도 증원을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하면, 의대생들은 학교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럼 내년에 3천여 명 가르치던 환경에서 아무 준비 없이 7500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의협 등은 지금의 '의료 대란'을 감수하며 증원을 무리하게 강행하기보다, 실제 양질의 교육이 가능한 증원 규모, 의료비 증가 등 의사 증원 영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최 대변인은 "이번 추석도 진료실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이 이미 한계상황을 넘기고 있기 때문에 매우 걱정된다"며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저희가 책임지고 있는 환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무사하게,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저희가 버티는 데 한계가 있고, 정부가 전향적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이 사태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지금 여야가 이렇게 '해결책을 찾아보자' 나섰을 때, 정부가 사태를 좀 더 제대로 인식하시고 바로잡을 대책을 내놓아주시길 다시 한 번 촉구드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저희는 언제라도 정부가 잘못된 정책에 대해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면 그동안의 (의료시스템의) 장점을 더 이상 망치지 않으면서도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전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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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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