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이하 <세풋보>)이 어느덧 100화를 넘었습니다. 연재 중일 때 작가님의 일주일은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벌써 100화가 훌쩍 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보통 한 주 내내 거의 풀타임으로 작업하는 일상을 유지해요. 물론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지만, 분량이 많고 수정도 많이 하는 편이라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하는 데 씁니다.
<세풋보>에 달리는 댓글은 단순한 감상뿐 아니라 이어질 내용에 대한 추측이나 해석도 많아서 찾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댓글이나 팬 반응을 확인하는 편인가요?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보통 업로드하는 날 댓글을 봐요. 재치 있는 댓글이 많아 친구들도 가끔 웹툰 댓글이 재밌다고 연락하기도 해요.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추측이 다양해서 재밌어요. 저도 생각지 못한 부분도 많아 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철이가 미애에게 같이 숙제하자고 했을 때 ‘나도 같이 숙제해도 될까?’라던 한 팬의 장난스러운 댓글이에요.

블로그에서 전작 <치즈인더트랩>을 완결할 무렵부터 <세풋보>를 구상했다고 언급하신 글을 봤습니다. 당시 웹툰에서는 드물던 레트로 감성의 학원물인데, 배경을 1999년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저 역시 1999년에 중학생이었어요. 현재 학원물을 그리기에는 세대 차이가 많이 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차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직접 느낀 1990년대 감성의 학원물을 선택하는 건 저에게 당연한 흐름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1990년대를 하나로 묶기에는 초반과 후반의 느낌이 상당히 다르거든요. 1999년은 1990년대 초반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2000년대를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에,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그 중간의 느낌이었고, 그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1999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작품명을 보면 독특한 단어의 조합이 가장 먼저 눈에 띄어요. 이런 제목을 짓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작품을 구상하며 떠오른 중요한 이미지들을 직관적으로 조합한 거예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죠.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아요.
주인공 미애는 벽을 치는 철이에게 끊임없이 다가가 벽을 허물 만큼 그늘 없는 성격을 지녔습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철이를 대하는 미애를 보면 대단하다 싶을 때도 많지만, 이러한 내면을 알기 전까지 미애는 착하고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중생에 가까워요. 미애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부터 말괄량이 캐릭터를 좋아해요. 제가 느낀 바로는 어릴 때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여자아이들이 매우 많은데, 커가면서 조금씩 차분해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 시기가 좀 늦는 아이도 있거든요. 성향 차이가 아닐까 싶은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게 차분해지는 아이는 그 당시에 핀잔을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부여하는 어떠한 요소로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구려중 일짱 곽태욱을 반 죽여놨다.’는 소문의 주인공 김철이 중3을 앞두고 미애가 있는 백제중으로 전학 와 둘이 6년 만에 재회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처럼 전학생, 소꿉친구, 옆자리 짝꿍, 이웃사촌 등 <세풋보>에는 순정 만화의 클리셰가 여럿 등장해요.
이번 작품은 클리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 당시 특유의 많은 클리셰를 찾아보고 복습했어요. 우연이란 우연을 다 모아놔도 상관없다고, 그게 일종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죠. 그 당시 내가 보며 자란 만화, 영화, 드라마 등등 모든 느낌을 완벽하게 습득하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전부 훑어보려 했습니다.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지만요.
6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미애는 철이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철이는 미애를 단박에 알아보는 것을 보면 어릴 때 둘 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철이가 시골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럴 수도 있지만, 작중 언급되는 내용에 따르면 미애가 철이가 있던 시골에 놀러 가 보낸 기간은 3박 4일로 아주 짧아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둘의 과거 서사가 많은 건가요?
(물론 사람마다, 흥미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린아이에게 낯선 곳에서 보내는 3박 4일은 결코 짧지 않아요. 매분 매초마다 새로운 곳에서 재밌는 것을 찾으려고 하거든요. 심지어 관심 있는 새 친구와 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놓치는 시간도, 아무 감정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도 없을 거예요.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역시 다양할 테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기억도 오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문득문득 어릴 때 한 번씩 놀러 간 시골에서 무엇을 하고 누굴 만났는지 기억나거든요. 그리고 그중에 유난히 생각나는 아이가 있어요.(첫사랑의 상대는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그렇기에 많지는 않지만 세세한 이야기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작품에 특히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친구’와 ‘소원’입니다. 미애가 시골의 돌탑에 소원을 비는 회상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현재의 미애도 비행기 1000개를 세면 소원이 이뤄진다며 틈만 나면 하늘을 살피죠. ‘소원’이 아주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습니다.
소원이 중요한 키워드 맞아요. 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의 끝으로 갈수록 그 키워드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잘 마무리하려고 해요. 미애가 돌탑에 빈 소원이 이뤄질지, 어떻게 될지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애와 있으면 영락없는 중학생이지만, 또래에 비해 큰 키와 덩치, 눈 밑의 흉터 등 겉모습만으로 시선과 소문의 중심이 되는 철이는 상처가 많은 인물입니다. 자신의 친구라는 이유로 친구가 다친 적이 있기 때문에 철이에게 ‘친구’의 의미는 남다를 것 같은데요. 철이와 미애에게 친구란 어떤 의미일까요?
철이와 미애는 서로 어렵게 친구가 되었지만 둘의 입장은 달라요. 철이는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잦은 이사, 외모 등) 친구 자체가 매우 소중한 존재일 테고, 미애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친구를 사귀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 바운더리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잘 대해주죠.
하지만 미애는 분명 철이만큼은 ‘특별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자신도 철이에게 ‘특별한’ 친구가 되고 싶어 해요. 철이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미애를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서로 이런 특별함을 느끼는 이유와 친구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고찰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포크댄스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늘 미애가 무언가를 제안하면 철이가 마지못해 따라주는 편이었는데, 포크댄스 연습 때는 철이가 먼저 미애에게 제안하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고요. 소재를 포크댄스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그 시절 학급 내 남녀 관계 분위기는 지금이랑 자못 달랐어요. 물론 서로 사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수가 적었고, 가까이 있거나 서로 조금만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도 놀림을 받던 시절이었죠. 이런 분위기에서 ‘합법적으로’ 서로 손을 잡고 눈을 맞출 수 있고 그래도 놀림받지 않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포크댄스였어요. 짧지만 평소에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요즘에도 포크댄스를 학교에서 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통해 추억을 일깨우는 그 시절의 한 단면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철이와 미애의 연애 이야기 외에도 제일 친한 친구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홍규의 질투, 남자애들 간의 서열 싸움, 서로 섞이지 못할 것 같던 S반 친구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에피소드 등, 사춘기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세풋보>를 보는 팬들이 작품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시나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미흡하지만 작품에서 그런 감정들이 느껴진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 기쁩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잊어버리기 전에 그 당시 그 나이의 학생들만이 느낄 수 있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널뛰면서도 담백한 감정들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생각으로 새로운 도전이라 여기며 시작한 작품입니다. 이런 것들을 함께 느껴주신다면 그 또한 감사하겠습니다.
전문은 빅이슈 305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제공. 순끼. 네이버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