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汎) 금호그룹 두 리더(박삼구·박찬구)의 엇갈린 운명을 조명해봅니다.

박삼구 전 회장의 공격적인 확장전략은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무리한 차입을 동반한 대형 인수합병(M&A)과 지배구조 분쟁까지 겹치면서 한때 항공·물류·건설을 아우르던 그룹은 현재 금호고속과 금호건설 등 일부 계열사만 남긴 채 축소됐다.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위기 국면에서 독립을 선택해 별도 그룹으로 재편됐으며, 이후 견조한 실적과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법적 계열분리를 마무리한 뒤에도 그룹은 실적개선과 기업집단 순위 상승 등이 지속되며 사실상 과거 금호의 명맥을 잇는 실질적 후계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풋옵션 부메랑, 대우건설 인수가 불러온 '재무폭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0년대 중반 박삼구 당시 회장의 주도로 공격적인 M&A에 나서며 재계 순위를 끌어올렸다. 2006년 대우건설에 이어 2008년에는 물류기업인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며 그룹의 위상은 한때 재계 7위까지 올라갔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금호그룹을 항공 중심의 중견그룹에서 사회간접자본(SOC) 기반의 '토털인프라 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열망이 매우 강했다.
재계 주류에 속하기 위한 외형성장 욕구가 과도한 차입과 무리한 M&A로 이어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룹의 자산·부채 구조를 허물어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린 건설·물류 경기 침체로 인수기업들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과도한 인수대금과 차입 부담이 그룹 전체를 휘청이게 한 것이다.
2009년 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주력 계열사가 채권단 관리 아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갔고 대우건설은 인수 3년 만에 되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재계 안팎에서는 금호그룹의 추락에 대해 '승자의 저주'라는 경영 현상을 거론하기도 했다.
금호그룹 몰락의 결정적 원인은 풋옵션(특정 가격에 팔 권리) 계약이었다. 박 전 회장은 2006년 6월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대우건설 지분 72%를 약 6조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이 중 절반이 넘는 3조5000억원가량을 외부 재무적투자자(FI)들로부터 조달했다. 당시 금호는 FI들에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일정 기준(주당 3만2626원)보다 낮으면 그 가격에 지분을 되사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당시 건설업 호황과 시장 낙관론에 기댄 구조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그룹 전반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핵심 리스크가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우건설 주가는 급락해 1만2000원대에 머물렀다. 약정 기한이 도래하자 결국 FI들은 계약에 따라 금호 측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문제는 계약상 기준가(주당 3만2626원)가 시장가격의 3배 수준에 달해 금호가 되사야 할 FI 보유 지분(39.6%) 규모만 4조2000억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금호산업은 이 막대한 자금을 결제 기한인 2009년 6월까지 마련하지 못할 경우 자본잠식에 이어 법정관리에 몰릴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2009년 말 금호산업은 풋옵션 관련 손실을 반영하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 시장 매각이 여의치 않자 결국 산업은행 주도의 사모펀드에 대우건설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그룹은 인수 3년 만에 핵심 계열사 매각 결정을 내리며 가까스로 파산을 면하게 됐다.
당시 산은이 제시한 대우건설 지분 인수단가는 주당 1만8000원으로 금호가 2006년 인수 당시 지불한 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결과적으로 금호그룹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한 뒤에야 풋옵션에 따른 재무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었다.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도 유사한 레버리지 기반의 구조가 반복됐다. 금호그룹은 2007년 초 약 4조1000억원에 대한통운을 사들이면서 이 중 2조5000억원은 차입금으로 조달하고 7000억원 상당의 지분은 FI에 맡긴 뒤 일정 조건하에 되사는 풋옵션을 부여했다.
이 계약에 따라 FI는 2011∼2012년 대한통운 주가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주당 20만원에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됐다. 그러나 2010년 초 대한통운 주가가 6만원대 이하로 하락하면서 금호는 수천억원대의 추가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이 시점에 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대한통운 역시 채권단 관리 하에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2011년 말 CJ그룹이 약 2조원에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것으로 거래가 마무리됐다.
결국 금호는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까지 핵심 계열사를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하며 그룹 구조조정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한 외형확장을 위한 차입 중심의 인수전략과 풋옵션이 반복되며 그룹 전반의 재무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셈이다. 박 전 회장이 노렸던 외형성장의 꿈은 과도한 차입과 풋옵션 때문에 좌초되고 말았다.
금호석유화학, 그룹 위기서 독립된 '안전지대'
금호그룹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금호석유화학은 예외적으로 다른 길을 걸은 계열사였다. 2009년 말 그룹 워크아웃 대상에 금호석유화학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금호그룹이 특이하게도 형제 공동경영 체제였기 때문이다 .
박 전 회장과 그의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금호아시아나 초대회장의 아들로 오랜 기간 그룹을 분점하듯 운영해왔다. 그룹 지배구조상 겉으로는 '총수일가→금호석유화학→금호산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형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핵심 지주사격인 금호산업을 주도하고 동생은 금호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화학부문을 거느리는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였다.
금호그룹이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로 흔들리자 박 회장은 형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그는 2009년 6∼7월 자신이 보유한 금호산업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9.18%까지 늘리며 사실상 단독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동시에 아들 박준경 역시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매입해 부자(父子) 합산 지분은 18.2%에 달하게 됐다. 이에 따라 금호석유화학은 더 이상 박 전 회장과 공동 지배회사로 묶이지 않고 '박찬구 일가'가 확고하게 지배하는 회사가 됐다.
박 회장은 같은 해 8월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금호석유화학의 내실 위주 경영방침은 박삼구 회장의 외형 추구와 근본적으로 상치돼왔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추진 당시 회사 대표로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며 금호그룹의 위기는 전적으로 형의 책임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금호석유화학은 그룹의 무리한 M&A에 연루되지 않은 덕에 위기 국면에서도 재무안전성을 비교적 잘 유지할 수 있었다. 금호석유화학이 워크아웃에서 제외된 배경에는 이러한 형제 간 경영 갈등 외에 '금호석화의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지분출연을 검토하겠다'는 채권단과의 합의도 있었다. 결국 박 전 회장 측은 그룹 정상화 계획 발표 당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채권단에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동생 측의 경영권은 보장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금호석유화학은 사실상 그룹의 부실 위험을 떨쳐내고 독자경영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수년간 이어진 법적 다툼 끝에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완전히 계열분리되는 성과를 거뒀다. 2015년 12월 대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금호아시아나 측이 요청한 '금호석유화학 등 8개 계열사를 별도 기업집단으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이 최종 승소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들이 2010년 이후 별도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금호' 상호를 쓰지만 '금호아시아나'라는 명칭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으며 사옥도 분리되고 공시도 따로 해온 점 등을 들어 사실상 경영이 분리된 별개 그룹이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박 전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법적으로 완전히 갈라섰고, 공정위 대기업집단 공시에서도 두 그룹은 각각 분리 표기됐다.
계열분리 이후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존재감을 키웠다. 회사는 주력인 합성고무·합성수지 등 화학사업 집중 전략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실적을 개선했다. 실제로 2022년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약 9조6920억원의 매출과 1조102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계열분리 직후인 2016년에 비해 그룹의 전체 매출이 크게 성장한 것이다.
공정위가 집계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에서도 금호석유화학그룹은 2016년 64위에서 2022년 49∼50위까지 도약하며 사실상 옛 금호그룹을 대신하는 모양새다. 한때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대기업집단이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등의 M&A 실패로 크게 위축된 반면 박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몸집을 불린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호석유화학 측도 비핵심사업을 과감히 매각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집중한 박 회장의 혁신경영이 주효했다고 자평한다. 무엇보다 금호석유화학이 금호그룹과 재무적으로 철저히 차단된 독립법인으로 자리매김한 덕에 금호아시아나의 위기가 전이되지 않았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게도 신뢰를 얻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끝내 법정 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몰락은 그룹 해체와 계열분리로 일단락됐지만 박 전 회장은 이후에도 구설에 올랐다. 워크아웃 이후 박 전 회장은 한때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되찾고 그룹을 재건하기 위해 나섰으나 그 과정에서 계열사 부당지원 및 자금유용 의혹이 불거져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 자금 3000억원대를 동원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고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도운 혐의 등을 적용해 그를 기소했다.
이에 대해 2022년 8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사익을 위해 그룹 계열사들을 희생시켰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현재 박 전 회장은 항소심을 진행 중이지만 1심 판결로 법정구속되면서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못한 상태다.
박 전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금호그룹의 위기와 어려움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제게 있고 이에 대해 어떤 비난도 회피할 생각이 없다"며 "여든을 넘은 시점에 법정에서 금호그룹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 다른 피고인들과 나란히 재판을 받게 돼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롭고 참담하다"고 밝혔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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