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서울 진보교육감 계승... 尹 교육정책 심판론 먹혔다
후보 단일화 통해 진보 지지 세력 결집
혁신학교 유지·역사교육 강화 등 예상
16일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정근식 후보가 당선됐다. 같은 진보 진영인 조희연 전 교육감의 중도사퇴로 치러진 선거였지만 윤석열 정부 교육정책 심판론에 힘이 실린 가운데 막판 단일화에 성공한 정 후보가 당선되면서 서울 진보교육감 명맥이 이어지게 됐다.
정근식 “혁신교육 10년 성과 잇겠다”
17일 새벽에 종료된 개표 결과 정 당선인은 득표율 50.24%를 기록, 보수 진영 조전혁 후보(45.93%)를 4%포인트 이상 앞섰다. 윤호상 후보의 득표율은 3.81%이다.
이로써 서울 교육은 지난 10년간 재임했던 조 전 교육감에 이어 재차 진보교육감이 책임지게 됐다. 조 전 교육감은 2018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 부당채용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을 받고 지난 8월 29일 직을 상실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인 정 당선인은 지난달 13일 “지난 10년 혁신교육의 성과를 잇고, 그 한계를 넘어 새로운 혁신의 길을 찾는 교육감이 되겠다”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곽노현 전 교육감,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 안승문 전 서울시교육위원,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 등 4명과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해 진보 단일후보로 추대됐다. 지난 12일에는 또 다른 진보 성향 후보였던 최보선 전 서울시교육위원과 막판 단일화를 완성해 진보 지지 세력을 결집했다.
반면 보수 진영 조 후보는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과 홍후조 고려대 명예교수 등과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윤호상 후보와는 단일화에 실패했다. 보수 2명, 진보 1명의 3파전으로 선거가 치러지면서 보수 표가 분산돼 정 후보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유권자들의 참여가 낮은 교육감 선거에서 결국은 얼마나 지지세력을 결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라며 “과거 교육감 선거처럼 단일화가 결과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단일후보로 출마한 조 전 교육감이 보수 진영 고승덕 후보와 문용린 후보와의 3파전에서 승리했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심판론도 반영됐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CBS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이번 선거가 윤 정부 교육정책 평가라고 응답한 이가 42.8%로 가장 많았다. 정 당선인은 정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과 역사교과서 논란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디지털 교과서 도입, 의대 증원, 고교 무상교육 등 논란이 되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걸로 보인다”며 “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정 후보에 시민들이 표를 줬다”고 평가했다.
학자적 면모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 의원 출신인 조 후보의 경우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되는 교육감 선거에서는 오히려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는 분석이다. 홍 소장은 “정 후보의 경우 인지도는 낮지만 서울대 교수 등 교육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해 시민들의 호감을 샀다”고 했다.
조희연표 정책 계승... 역사교육도 강화
정 당선인은 취임 이후 혁신학교, 생태전환교육, 특수교육 등 조 전 교육감의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 공약대로라면 학생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혁신학교로 기초학력이 저하됐다는 지적에 학생 개인별 맞춤형 학습을 관리하는 모델(자기주도형 학습나침반)을 도입할 계획이다. 학습 부진이나 경계선 지능 문제를 겪는 학생의 학습을 돕는 ‘서울학습진단치유센터’도 설치한다. 지역·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서울교육 양극화 지수’를 개발해 맞춤형 정책도 마련한다.
학교 현장에서의 역사교육도 강화된다. 윤 정부의 뉴라이트 인사 임명, 친일 역사교과서 논란 등을 강하게 비판한 정 당선인은 교육청 산하에 역사교육위원회, 역사교육자료센터 등을 설치해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역사 교육자료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체험형 역사 교육 프로그램 등 역사 현장 교육도 늘린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관련 대책도 마련한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지난 6월 서울시의회가 폐지를 의결했지만, 조 전 교육감이 법원에 폐지 무효 소송을 제기해 아직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정 당선인은 학생인권조례를 수정·보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행정 간소화에 따른 교권 업무 경감, 교육 3주체(학생 학부모 교사) 참여 교육지원청 산하 위원회 등도 구성해 교권을 보호하고 교육자치를 확대한다.
전북 익산 출신인 정 당선인은 전주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전남대 사회학과에서 교직을 시작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하버드대, 교토대, 베를린자유대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2005~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정 당선인은 17일 서울시교육감으로 취임해 2026년 6월 30일까지 재임하게 된다. 서울 유·초·중·고 학생은 83만6,500여 명, 교원은 7만여 명이다. 서울시교육감은 교원 인사권, 학교 설립·폐지권 등의 권한이 있고, 한 해 약 11조 원의 예산을 집행한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5%포인트, 응답률은 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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