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결승이 30분도 안 걸렸다…안세영, 세계 8위 꺾고 인도오픈 결승 진출

안세영의 준결승은 솔직히 말해 ‘경기’라기보다 하나의 선언에 가까웠다. 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열린 2026 BWF 인도 오픈 여자 단식 4강전, 상대는 세계랭킹 8위의 라차녹 인타논이었다. 이름값만 보면 결코 만만한 선수가 아니다. 태국 배드민턴의 상징 같은 존재이고, 한때는 세계 최정상에 섰던 선수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 벌어진 현실은 냉정했다. 안세영은 단 한 순간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고, 경기는 너무 빠르게 끝나버렸다.

1게임은 시작부터 이상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안세영이 첫 랠리부터 속도를 끌어올리자 인타논은 반 박자씩 늦었다. 6-0까지 순식간에 벌어진 점수는 ‘오늘은 쉽지 않다’는 메시지처럼 보였다. 안세영의 플레이는 단순히 공격적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코트 구석을 찌르는 드롭, 상대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는 수비 후 역공, 그리고 무엇보다 실수가 거의 없었다. 16분 만에 끝난 21-11이라는 스코어는 숫자보다 더 큰 차이를 말해줬다.

사실 이 장면이 낯설지는 않다. 안세영과 인타논의 상대 전적은 이미 일방적으로 기울어 있었다. 2019년 첫 패배 이후 안세영은 인타논을 상대로 연승을 이어왔고, 이번 경기까지 포함하면 ‘공포’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중요한 건 이 승리가 단순한 상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세영은 인타논의 장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걸 하나씩 지워버렸다. 긴 랠리를 버텨야 하는 선수에게는 짧고 정확하게, 변칙적인 공격을 좋아하는 선수에게는 안정적인 수비로 대응했다. 상대가 무엇을 하든 안세영의 리듬 안에서만 경기가 흘러갔다.

2게임은 더 노골적이었다. 초반 잠깐 접전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수준이었다. 안세영은 점수를 벌려야 할 때와 숨을 고를 때를 정확히 구분했고, 인타논은 점점 표정에서 여유를 잃어갔다. 21-7. 이 점수는 ‘준결승’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가혹하다. 관중석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역시 묘했다. 누가 이길지에 대한 긴장감보다는, ‘얼마나 빨리 끝날까’를 보는 시선이 더 많았다.

이 승리로 안세영은 인도 오픈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중국의 왕즈이다. 이미 많은 팬들이 익숙해진 이름이다. 세계랭킹 2위, 그리고 안세영을 가장 집요하게 쫓아오는 선수.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최근 흐름에서 두 선수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안세영은 왕즈이를 상대로 최근 9연승을 기록 중이다. 지난 말레이시아 오픈 결승에서도 왕즈이를 꺾고 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이번 결승은 단순한 ‘또 한 번의 반복’으로 보기 어렵다. 왕즈이는 이번 대회에서 천위페이를 넘으며 심리적인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 반면 안세영은 준결승에서 체력 소모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차이는 결승에서 꽤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안세영은 이번 대회 내내 경기 시간이 짧았다. 32강부터 준결승까지, 상대가 누구든 비슷한 패턴으로 경기를 끝냈다. 이건 컨디션이 좋다는 신호이자, 지금 자신의 배드민턴이 완성형에 가깝다는 뜻이다.

안세영의 현재를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이 ‘지배’라는 단어를 쓴다. 과장이 아니다. 2025년 시즌, 단일 시즌 11회 우승과 94%가 넘는 승률은 이미 전설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2026년에도 끊기지 않고 있다. 시즌 첫 대회였던 말레이시아 오픈 우승, 그리고 인도 오픈 결승 진출. 중요한 건 안세영이 이기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기는 방식이다. 상대가 무너지는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안세영은 점점 더 여유로워지고 있다.

이번 준결승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세계 8위 선수를 상대로 30분 남짓한 시간 안에 경기를 끝냈다는 건, ‘지금 이 무대에서 나를 위협할 선수는 많지 않다’는 무언의 선언과 같다. 더 이상 접전 끝의 승리가 아니다. 준비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 경기였다.

이제 남은 건 결승이다. 그리고 그 결승은 단순한 우승 트로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도 오픈 통산 3번째 우승, 월드투어 6개 대회 연속 정상, 그리고 ‘안세영 시대’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하는 무대다. 왕즈이가 또 한 번 도전장을 내밀겠지만, 준결승을 본 사람이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지금의 안세영은 상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냥,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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