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부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인쿠시는 드래프트장에 서지 못했을까.” 점프력과 스윙 속도, 코트에서 보여 준 에너지만 보면 많은 팬이 “지금 당장 프로에서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도는 간단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원더독스의 핵심 공격 옵션으로 무대 경험을 쌓는 동안에도, 그녀의 진짜 목표는 변하지 않습니다. 한국 무대의 정식 등록, 그리고 프로 데뷔입니다. 그 사이에 놓인 문턱이 바로 국적과 규정입니다. 이 글은 그 문턱의 실제 높이와, 그 문턱을 넘은 몽골 출신 선수들의 길, 그리고 인쿠시가 마주한 선택을 차분히 살펴보며 답을 찾고자 합니다.

인쿠시가 드래프트에 못 나간 가장 큰 이유는 규정의 첫 줄에 적혀 있습니다. 한국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 참가 자격은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자입니다. 외국 국적 선수는 외국인 선수 제도나 아시아쿼터 같은 별도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인쿠시는 몽골 국적입니다. 한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거치며 실력을 키웠지만, 국적이 바뀌지 않은 상황이라 ‘신인’으로 분류되어 드래프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선택지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귀화로 국적을 바꿔 국내 선수 자격을 얻는 길, 다른 하나는 외국인 쿼터 또는 특례의 문이 열릴 때까지 실전을 통해 경쟁력을 증명하는 길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두 길을 동시에 준비해야 합니다.

귀화는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일정 기간의 합법 체류, 한국어와 기본 소양 평가, 준비 서류와 심사 과정 등 시간과 노력이 많은 절차입니다. 인쿠시는 2022년부터 한국에서 학교와 리그를 거치며 생활 기반을 닦았습니다. 일반적인 흐름대로라면 귀화 가능 시점이 가장 빨라야 중기적 시간표로 예상됩니다. 그 사이 원더독스에서 경기 감각과 체력을 유지하고, 한국 배구가 요구하는 세부 기술, 특히 서브 리시브와 수비 전환을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단순히 “좋은 공격수”로는 부족합니다. 국내 선수로 등록되든, 외국인 전력으로 평가받든, 한국 배구가 제일 먼저 확인하는 지점이 수비 안정입니다.

인쿠시의 강점은 분명합니다. 높은 점프, 빠른 손 스피드, 그리고 겁이 없는 스윙입니다. 이 강점은 한국 무대에서도 통할 에너지입니다. 반대로 약점도 분명합니다. 서브 리시브와 1·2단 연결에서의 흔들림입니다. 상대가 목적타 서브로 인쿠시를 겨냥하면, 첫 공이 흔들리고 곧바로 공격 루트가 막힙니다. 원더독스 경기에서 이미 이런 장면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좋은 소식은 이 약점이 훈련과 경험으로 개선 가능한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발의 첫 반응, 팔 각도의 고정, 접점에서의 시선 처리까지 루틴을 표준화하고, 경기 속 공포감을 줄이면 수치는 빠르게 올라갑니다. 공격은 이미 충분히 ‘프로급 느낌’이 납니다. 이제는 ‘프로급 반복’이 필요합니다.
몽골 출신 선수들의 경로를 보면, 인쿠시의 길이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선수가 유학 자격으로 한국 고교와 대학에서 뛰며 적응했고, 일부는 귀화를 선택해 국내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떤 선수는 대학에서 기량을 증명한 뒤 프로로 올라섰고, 또 어떤 선수는 부상과 등록 문제로 오래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공통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체류와 등록의 법적 조건을 정교하게 관리합니다. 둘째, 경기력 개발의 우선순위를 한국 리그의 기준에 맞춥니다. 셋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립니다. 배구에서 콜 하나의 속도는 득점 스피드에 직결됩니다. 국적의 문제를 떠나, 코트 공용어를 익히는 것은 ‘전술의 속도’를 바꾸는 기술입니다.

법과 제도는 냉정합니다. 외국인 선수는 쿼터로 제한되고, 신인 드래프트는 내국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를 바꾸려면 리그 차원의 정책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선수 개인이 오늘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전략이 답입니다. 원더독스라는 무대는 인쿠시에게 ‘화면’과 ‘데이터’를 동시에 줍니다.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리고, 실제 경기에서 득점·리시브·디그의 수치를 쌓을 수 있습니다. 특히 리시브 효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포지션 가치가 크게 뛰어오릅니다. 키와 타점에서 밀리는 구간을 스텝과 타이밍으로 메우면, “멀티”라는 단어가 진짜 의미를 갖습니다. 코칭 스태프가 인쿠시에게 요구할 설계도는 이미 명확합니다.
프로 구단 입장에서의 체크리스트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장기 체류와 등록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지입니다. 귀화 진행 상황, 비자 상태, 학력·선수 경력의 확인이 기본입니다. 둘째, 의료 정보와 부상 이력의 투명성입니다. 점프형 공격수는 무릎과 발목 관리가 생명입니다. 셋째, 팀 케미스트리입니다. 아웃사이드 히터가 코트에서 맡는 일이 많을수록, 말과 표정이 팀의 온도를 바꿉니다. 인쿠시는 경기 중 표정이 밝고, 공격 실수 뒤에도 빠르게 다음 공을 요구하는 타입입니다. 이런 태도는 장점입니다. 다만 어려운 구간에서 리시브 선택을 안전하게 가져가며, 불필요한 롤러코스터를 줄이는 ‘경기 운영의 절제’는 더 익혀야 합니다.

팬의 시선에서는 답답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실력이면 당장 계약하면 안 되나?” 하지만 리그는 팀 전체의 밸런스로 굴러갑니다. 외국인 전력은 아직 자리 수가 매우 제한적이고, 국내 선수 등록은 규정의 칸부터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원더독스의 시간이 의미 있습니다. 이 무대는 완성형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성장형에게 ‘경험의 분량’을 보태는 곳입니다. 인쿠시가 매 경기 두세 번씩 ‘이 선수는 꼭 필요하겠다’는 장면을 만든다면, 제도는 언젠가 그 장면에 반응합니다. 스포츠에서 반복되는 명제는 늘 같습니다. 장면이 많아지면, 논의가 따라옵니다. 논의가 많아지면, 길이 하나 더 열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인쿠시의 ‘서브 리시브 루틴’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봅니다. 발의 첫 스텝을 45도 오픈으로 고정하고, 팔 각도를 낮춘 상태에서 접점의 거리를 반 걸음 당기는 것만으로도 흔들림이 크게 줄 수 있습니다. 공격에서는 하이볼에서 직선 각을 한두 번 과감히 쓰는 편이 좋습니다. 상대 블록이 크로스를 먼저 지키는 한국 리그의 습관을 이용하면 득점 루트가 늘어납니다. 수비 전환에서는 공격 후 착지 직후의 시선 처리, 즉 ‘공-세터-상대 레프트’ 순으로 시야를 스캔하는 습관만 들어도 팀의 커버 품질이 올라갑니다. 이런 작은 기술의 합이 곧 ‘프로의 언어’입니다.
마지막으로, 몽골 출신 선수들의 한국 진출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은 교육-리그-미디어가 맞물린 희소한 배구 생태계를 갖고 있고, 몽골은 운동 능력과 근성에서 강점을 가진 인재가 많습니다. 두 시장이 만나면 성공 사례가 생기고, 성공 사례가 더 많은 도전을 부릅니다. 그 과정에서 법과 제도는 조금씩 조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 변화는 늘 시간이 걸립니다. 선수에게 중요한 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일입니다. 인쿠시는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원더독스에서의 한 경기, 한 세트, 한 랠리가 가벼운 시간이 아닙니다. 경력의 문턱을 한 칸씩 낮추는 과정입니다.
결론은 명료합니다. 인쿠시가 드래프트에 못 나간 건 실력이 아니라 규정 때문입니다. 이 규정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입니다. 오늘의 코트에서 내일의 증거를 더 많이 남기는 것입니다. 리시브가 견고해지고, 수비 전환이 빨라지고, 공격 선택이 똑똑해질수록, ‘왜 지금 이 선수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길어집니다. 그 설명이 충분해지면, 프로의 문은 언젠가 스스로 열립니다. 저는 그 장면을 기대합니다. 원더독스 유니폼을 입고 네트를 두드리던 인쿠시가, 프로의 로고 아래 같은 스윙을 휘두르는 순간을요.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필요한 일은 단순합니다. 오늘의 한 공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한 발을 조금 더 빠르게, 한 표정을 조금 더 밝게. 성장의 속도는 그렇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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