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듭니까. 힘이 듭니까. 이렇게 좋은 걸 왜 안하나요"
칭찬 문화를 비즈니스모델로 만든 '아기고래’ 유시원 대표
이솝 우화 ‘해님과 바람’에선 강한 바람보다 따뜻한 햇살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 전략은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연구진이 7개 기업 임직원 239명을 대상으로 감정과 일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마음 상태로 몰입할 때 더 좋은 성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허밍버즈 유시원 대표도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전략이다. 칭찬하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협업 툴 ‘아기고래’를 개발했다. 구성원들이 이모티콘과 함께 ‘칭찬’과 ‘인정’을 주고받고, 생일·입사기념일 등을 다 같이 축하하면서 성장 동력을 얻도록 했다. 유 대표를 만나 춤추는 고래의 잠재력에 대해 들었다.
◇효율 따지던 개발자의 일탈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 3년 내내 ‘CEO’라 썼다. “꽤 일찍부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직장에 가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대학 생활을 할 때 특기를 살려 학생들을 위한 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 공지 사항에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장학금 공지를 놓치지 않도록, 자동으로 추적해 메시지를 보내주는 앱이었죠.
서강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쇼핑몰 솔루션 스타트업 ‘아임웹’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나름 전략적인 결정이었어요. 스타트업 생태계를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데이터 엔지니어로서 내부 구성원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가공해 전달하는 역할을 했어요. 고객 행동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하는 일마다 ‘효율’을 따졌다. 심지어 사내 복지 제도에도 의문을 품었다. “월 5만원씩 도서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었어요.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안 쓰면 손해란 생각에 매달 책을 사는 직원들이 많더군요. 그 중엔 저도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원하는 복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같은 돈을 쓰더라도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2023년 개인화 복지 솔루션 스타트업 ‘베네핏 컴퍼니’를 설립했다.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일종의 쇼핑몰 포인트를 지급하면, 직원들은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수개월 공들여 웹사이트를 개발한 뒤 고객사를 찾아 나섰는데요. 상대를 설득하려 애써봐도 저 자신조차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화 복지 솔루션은 ‘커머스(상거래)’ 성격이 짙었어요. 웹사이트는 껍데기일 뿐, 상품 소싱과 영업·유통을 잘해야 굴러가는 사업이었죠.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돈을 쓰면서 ‘칭찬’을 한다니
피봇(Pivot)을 결심했다. 피봇은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사업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오픈채팅방 등 SNS를 기웃거리거나 지인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수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이 인터넷쇼핑몰 결제할 때 겪는 어려움, 공무원 업무 관리 프로그램의 잦은 오류 등 아이템 70여 개를 모았어요. 시각화할 수 있도록 보드에 쓴 다음 하나씩 빠르게 검증했습니다. 사업화한다면 어떻게 풀어나갈지 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식이었죠.
여러 아이템 중 하나가 ‘사내 칭찬 문화’였다. “해외 스타트업 ‘헤이타코’에서 사내 구성원끼리 칭찬을 주고받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는데, 기업들이 이 서비스를 돈 내고 쓴다는 사실이 의아했어요.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업무용 커뮤니케이션 협업툴 ‘슬랙(slack)’에 얹어서 쓸 수 있는 슬랙봇을 개발했어요. 칭찬받을 사람과 칭찬할 내용을 쓰는 정도의 단순한 기능을 추가한 플러그인(추가 기능)으로 출발했습니다.”
이틀 만에 개발한 칭찬 슬랙봇을 디스콰이엇(IT 서비스 메이커들의 소셜 네트워크)에 업로드했다. 다운받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업’도 나타났다. “이후 조직문화 담당자 200여 명을 만나 칭찬봇의 수요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물었어요. 다들 입을 모아 ‘구성원 간 거리감을 줄이고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말합니다.
‘허밍버즈’로 사명을 바꾸고 ‘아기고래’란 서비스명도 지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속담에서 착안했다. 헤이타코와 명확한 차별점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칭찬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학창 시절 선생님의 지도 아래 ‘칭찬 릴레이’를 하곤 했죠. 이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물론 익명으로도 칭찬을 전할 수 있어요. 칭찬과 함께 보낼 이모티콘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죠. 고래, 별은 물론 기업 로고를 넣을 수도 있죠.”
아기고래로 구성원 간 거리를 좁혔다면, 다시 ‘효율’에 집중할 차례다. “고객사가 가장 원하는 건 ‘업무 효율화’입니다. 아기고래에 이어 1대1 면담을 돕는 ‘체크인’, 칭찬받은 만큼 급여에 보너스가 더해지는 ‘피어 보너스(Peer Bonus)’, 공지 업무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벌크샌드(Bulk Send)’를 추가로 개발했습니다. 모두 슬랙 기반으로 쓸 수 있는 사스(SaaS·서비스 소프트웨어)입니다. 이처럼 협업을 돕는 서비스들을 한데 모아 ‘플러그인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질적 효율과 양적 효율
2024년 봄부터 아기고래를 유료로 전환했다. 현재 아기고래를 쓰는 기업은 LGU+, 강남언니, 해외송금 스타트업 센트비(SENTBE) 등 150여 곳이다. 허밍버즈는 제13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정창경) 도전 트랙 대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꿈만 같아요. 그간 ‘그걸론 안 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거든요. 정창경을 통해 공식적인 ‘칭찬’을 듣고 나니 더 동기 부여가 되더군요.”
다시 달려갈 차례다. 2025년 1분기 내 글로벌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핵심 기능을 담은 플러그인을 8~10개까지 개발해 패키지로 출시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단축키’ 많이 쓰는 나라가 없다고 해요. 효율 극대화에 단축키만 한 게 없죠. 머지않아 허밍버즈의 플러그인 패키지가 그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협업툴이 곧 허밍버즈의 정체성이 될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