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온다 [김동진의 다른 시선]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10월10일,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문학상이 지금까지 배출한 121명의 수상자 중 18번째 여성 수상자이며,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 수상이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프랑스·미국·영국 순으로 가장 많았으며, 사용 언어도 영어·프랑스어·독일어 순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강 작가의 수상은 그가 비영어권 '아시아인'이자 '여성'이란 점에서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가 1907년 수상자인 러디어드 키플링(42)과 1957년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44)에 이어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세 번째로 젊은 연령(53)이란 것도 회자되고 있다. 이렇듯 여러 개의 기록을 경신한 수상 소식에 사회 전체가 '한강 신드롬'으로 들썩이고 있다.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독립서점 '책방 오늘'은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아침부터 밀려드는 사람들이 줄을 섰으나, 당분간 운영하지 않는다는 공지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 인쇄소 직원이 '출판업 종사한 지 40년 만에 이렇게 바쁜 적은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한강 작가의 작품을 출간한 출판사와 인쇄소들은 24시간 주말도 없이 책을 만드는 중이다.
해외 서점가에서는 번역본뿐 아니라 한국어 원서도 절판되는 상황이다. SNS에서는 전 세계 누리꾼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필사하는 챌린지도 생겨나고 있는 조짐이다. 국내에도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는 모임, 해설과 함께 하는 강좌 등이 생겨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관 건립과 박람회 추진 등 관련 지자체의 마케팅도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상처와 트라우마 후벼 파는 이야기
알고 보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여러 작품으로 해외에서 수상한 전력이 있다.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부커상을 2016년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다시 《채식주의자》로 2019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2023년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탈리아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1999년 《검은 사슴》으로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6차례나 수상 경력이 있다. 온라인에서는 작가, 평론가, 심지어 일반 누리꾼들도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을 것 같다고 오래전에 자신이 말했던 내용을 자신의 예언이라며 재게시하면서 이 기쁨을 함께 즐기고 있다.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사실 필자는 이렇게 기뻐하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읽었는지 혹은 읽을지가 궁금해졌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을 수상한 상황에서도 '세계 곳곳(팔레스타인·우크라이나)에서 치열한 전쟁으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 상황에 무슨 잔치를 하느냐'며 기자회견도 하지 않고 고향 마을의 잔치도 취소하게 한 사람이다.
필자가 읽은 그의 작품은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삶과 죽음과 폭력과 고통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만들기에, 읽는 도중에도 읽은 후에도 마음이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종종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최근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소설인데, 그것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치유되는 느낌의 소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소설은 그와는 결이 다르다. 대다수 인간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드러내다 못해 후벼 파는 이야기다. 독자로서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힐링된다기보다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트라우마가 지금부터 생겨나는 느낌이다.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한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자꾸 꿈을 꾼다는 이유로 채식을 하는 여성 영혜의 가족들은 영혜를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하지만, 그 폭력은 결국 영혜를 위한 것이니까라는 말로 정당화되고 공감을 산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30대 여성인 필자의 지인은 최근 한 모임에서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에,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불참하고 귀가하겠다는 이야기를 같은 모임의 60대 남성에게 20번을 말해야 했다고 했다. 아마도 그 남성은 같이 밥을 먹는 것이 그 여성에게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20번 권했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그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너에게도 좋으리라는 가정하에 행하는 그런 종류의 행동이 폭력임을 《채식주의자》는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깨닫게 해준다.
또 다른 그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날 거기에 있었던 소년들, 소녀들, 청년들, 그들의 부모들의 연결된 고통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실제로 필자에게 이 소설을 대하는 과정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상처를 열어본 느낌이었다. 작가가 그려낸 아픔의 풍경 속에 머물러 있을 수도, 그렇다고 빠져나올 수도 없으면서, 그 풍경 속 인물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눈물로 깨닫는 과정이었다. 실제로 한강 작가도 《소년이 온다》를 집필할 때 세 문장을 쓰고 한 시간을 울었다고 하기도 했으니, 그의 붓 끝에 묻어난 고통과 연민의 감각이 시공간을 넘어 한 명의 독자인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셈이다.
시대의 양심을 일깨우는 깊은 울림
그러나 한강 작가는 독자가 단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고통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집단적 상흔을 조명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던지는 질문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마땅히 묻고 답해야 할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역사책, 교과서, 뉴스에서 건조하게 접하던 사실들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섬세하다 못해 바닥까지 드러내 보이는 한강 작가의 묘사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직면하고 있는 역사적 상처와 정치적 갈등을 수면 위로 떠올린다. 이렇듯 역사적 트라우마를 개인적·집단적으로 조명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저항의 한 형태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으로 선정 이유를 밝혔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한강 작가를 비롯한 한국 여성작가들의 글쓰기는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라고 평했다. 한강 작가는 '혐오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 있으며, 그 혐오를 직면하고 그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면 위험하다'고 말한 바 있다.
여성 문제든 환경 문제든 5·18이든 4·3이든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든 무엇이든 간에 그의 작품은 숨 쉬는 공기 속에 스며들어 있는 혐오를 날카롭게 잡아내어 스스로와 대중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거울이자 메아리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문학을 넘어 우리 시대의 양심을 일깨우는 깊은 울림이 되어 세계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한강 신드롬'을 맞이한 이때라도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이야기하자. 내가 느낀 불편함에 대해, 내가 공감한 혹은 공감하지 못했던 고통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일이 곧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저항하는 일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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