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액막이 북어, MZ세대가 선택한 오래된 답

요즘 MZ세대의 사랑을 받는 굿즈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액막이 북어'이다. 물론 실제 북어가 아니라 뜨개, 인형, 나무, 도자기 등 다양한 소재로 귀엽게 제작된 모형이지만, 전통방식대로 도톰한 실타래에 매달린 모습은 그대로이다. MZ세대는 이 오래되면서도 새로운 전통을 즐겁게 친구들과 나누며, '힙 트래디션(Hip Tradition)' 콘텐츠로서 전통을 향유한다.
액막이의 전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삶과 함께해 왔다. '액(厄)'은 사고와 질병, 전염병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을 뜻하는 말로, 선조들은 이를 귀신과는 다른 의미로 사람을 해치는 하늘의 기운으로 여겼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액을 없애기보다 막고 피하고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액막이는 그런 태도의 집약이다. 액막이 풍습은 정월, 단오, 동지와 같은 한 해의 경계가 되는 시점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액막이 풍습은 비단 민간에서만 유행했던 것이 아니다. 왕실 차원에서도 액막이를 위한 다양한 풍습이 있었다. 나라의 지존인 왕이 머무는 궁궐은 엄격한 금기와 질서가 요구되는 공간이다. 이에 정초가 되면 왕실에서는 궁궐 대문에 문배나 복숭아나무 부적을 붙이고, 해자낭(亥子囊)을 나누며 액을 쫓았다. 문배(門排)는 한 해 동안의 질병과 재난 등을 막기 위해 나례(儺禮)를 행한 후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를 뜻하는데, 보통 장군상이나 호랑이, 닭과 같은 동물들을 그려 넣었다. 또한 도화서에서 그린 문배를 신하들에게 하사함으로써, 백성의 고통을 함께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군주의 역할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풍습은 점차 민간까지 확산되어, 여염집에서도 정월이면 대문에 그림을 붙이는 풍습으로 정착되었다. 이처럼 액을 막는 일은 사적인 믿음을 넘어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식적인 장치였다.
액막이 북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어의 재료가 되는 명태는 다른 수산물에 비해 상당히 흔해 백성들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말려두면 보관이 용이하여 전국적으로 애용된 대중적 식재료였다. 이런 이유로 북어는 제사상이나 고사상에 빠지지 않는 제물이었다. 또한 북어는 건조된 후에도 원래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데, 그 모습에 다양한 상징성이 부여되기도 하였다. 우선 북어의 감지 않는 눈은 밤낮없이 액운을 지켜보는 '감시와 수호'를 상징했고, 북어의 쫙 벌어진 큰 입은 나쁜 기운(액)을 삼켜버리거나 막아준다고 믿어졌다. 또한 한 번에 많은 알을 낳는 명태의 특성은 자손 번창과 부귀에 대한 기복적 소망을 담았다. 이런 믿음 때문에 신장개업한 가게에서 고사가 끝나면 제물로 올린 북어를 실타래에 매달아 문 위에 올려두었고, 한옥을 지을 때 중요한 통과의례인 상량식에서는 제사에 올렸던 북어를 실타래와 함께 묶어 올렸으며, 새로운 집터가 기가 세다고 하면 마당에 북어를 묻어 기운을 달래기도 하였다. 이런 민간의 믿음이 전통으로 계속 이어져 오다가, 최근 힙 트래디션(Hip Tradition)의 바람을 타고, MZ세대의 문화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금 액막이 북어 굿즈를 향유하는 MZ세대는 전통적인 민간신앙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이 내용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익숙하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생소한 전통이 MZ세대의 불안을 다루는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MZ세대가 액막이 북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미신을 믿기 때문도, 전통을 복원하려는 의식 때문도 아니다.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불안을, 너무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잠시 바깥에 내려놓고 싶기 때문이다. 액막이 북어는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괜찮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허락하는 가장 가벼운 형식이다. 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최소한의 공동체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안전한 상징이기도 하다.
결국 액막이 북어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위기를 혼자 책임지지 않으려 했던 우리 민족의 오래된 태도가, 오늘의 언어로 다시 나타난 모습이다. MZ세대가 북어를 거는 것은 액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함께 무사하기를 바라는 감각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막이 북어가 다시 걸린다는 사실은, 우리가 아직 '우리'라는 말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조용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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