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 사이트에선 트럼프 우세? 여론조사보다 정확할까

박상현 오터레터(OTTER LETTER) 발행인 2024. 10. 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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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미국 대선과 미디어]

[미디어오늘 박상현 오터레터(OTTER LETTER) 발행인]

▲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전 대통령(왼쪽 사진)과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부통령. 사진=flickr

어떤 여론 전문가도 승패를 예측하지 못할 만큼 두 후보가 팽팽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미국 대선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 후보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폴리마켓(Polymarket)이다. 폴리곤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예측시장인 폴리마켓에서는 스포츠 경기부터 연예인의 사생활, 심지어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까지 다양한 일의 결과에 베팅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아이템이 미국 대선의 결과인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요 선거의 결과에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 이곳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을 60%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측이 빗나갈 때가 종종 있어도 현재로서는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투표권이 있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폴리마켓과 같은 베팅 사이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누구나 돈이 걸린 문제에서는 현실적이 된다”라는 오래된 가정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길 거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결과에 자기 돈을 걸고 예측하라면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을 60%로 보는 폴리마켓의 예측은 지지율 50%인 여론조사보다 정확할까?

▲ 폴리마켓(polymarket)에서 예측하고 있는 2024 미국 대통령 선거. 사진=폴리마켓 홈페이지 갈무리

폴리마켓은 주식 시장처럼 지분(share)를 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재 승리 가능성이 60%인 트럼프에 1주를 베팅하려면 60센트를 내고, 40%인 해리스에 베팅하려면 40센트를 내야 한다. 자기가 베팅한 후보가 승리하면 1주당 1달러를 받고, 패하면 돈을 모두 잃는다. 이런 도박 시장이 여론 조사보다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사람들이 돈을 잃지 않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고 가정했을 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팬데믹 중에 밈(meme) 주식의 등장을 목격했다. 게임스톱 같은 한물간 기업의 주식이 거기에 강한 향수를 느끼는 개미 투자자들의 '작전'으로 가격이 폭등하면서 주식시장의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소셜 투자'라는 말도 나왔지만, 사실은 자기가 좋아하는 기업의 주식을 공매도하는 헤지펀드를 응징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그렇게 오른 주식을 팔아 돈을 번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행동이 아니다. 지금은 그 열기가 한풀 꺾였지만, 투자라는 형식을 사용해 자기의 견해를 표현하는 태도는 사라지지 않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렇게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

폴리마켓이 돈을 따려는 냉정한 도박사의 정신으로 베팅하는 곳으로 보기 힘든 이유는 곳곳에 있다. 원래 미국에서는 선거를 두고 베팅을 하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이번 달에 들어서 합법화되었다. 애초에 선거 결과 베팅이 불법이었던 이유는 그게 민주주의 절차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 때문이었는데, 합법이 되었다고 그런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니다. 특히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갑부 피터 틸이 폴리마켓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최근 트럼프의 당선을 위한 선거 운동에 발벗고 뛰어든 일론 머스크가 “폴리마켓이 여론 조사보다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그런 의심은 더 커진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폴리마켓의 성격상 이곳에 베팅하는 사람들 중에는 트럼프 지지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젊은 남성들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게임스톱 같은 주식을 사들이며 밈 주식 현상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집단이다. 크립토(암호화폐)에 부정적이었던 트럼프가 최근 들어 이들의 표를 가져 오기 위해 “크립토는 우리의 미래”이며 미국을 암호 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이들이 트럼프에 베팅하는 행동이 일반 유권자들의 투표 방향과 일치한다고 보기 힘들다.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의심을 낳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수상한 “고래”의 존재다. 고래(whale)는 투자시장에서 큰 금액으로 매수나 매도를 해서 주가에 영향을 주는 대형 투자자를 말하는데, 폴리마켓에서 승률의 변동을 관찰한 사람들은 특정 투자자가 거액을 동원한 집중 매입으로 트럼프의 승률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프레디(Fredi)9999'라는 이 투자자의 기록을 보면 지난주 화요일까지 트럼프가 승리한다는 쪽에 87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0억 원을 베팅했다.

▲ 일론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사진=flickr

그만한 돈을 베팅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프레디9999가 갑부이며, 어쩌면 일론 머스크나 그의 대리인일 수 있다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개인이 아닌 여러 투자자의 연합이라면 갑부라고 추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프레디9999의 베팅을 추적한 한 도박꾼의 분석에 따르면 그가 복수의 계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같은 시점에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비슷한 액수를 꺼내어 트럼프에 베팅을 하는 계정이 최소 4개가 있다는 것. 이 계정들의 베팅액은 3000만 달러(약 410억 원)에 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고래가 트럼프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큰 손실이 예상되는 기업이나 업종에 있는 사람이 손실 위험을 분산(hedge)하기 위해서 거액의 베팅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 분산의 의도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행동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트럼프가 베팅 사이트에서 유리하다는 뉴스가 나오면 모두가 그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러면 트럼프에게 모멘텀이 생겼다고 믿게 되고, 그 결과 폴리마켓에서 트럼프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 폴리마켓(polymarket)에서 예측하고 있는 2024 미국 대통령 선거. 사진=폴리마켓 홈페이지 갈무리

실제로 지난 7일 주요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트럼프가 약간 더 유리하다는 조사 결과를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공유한 지 2분만에 폴리마켓에서 해리스에 2% 앞서던 트럼프가 격차를 10% 벌렸고, 머스크가 폴리마켓의 변화를 다시 소셜에서 공유하면서 그 격차는 더 벌어졌다. 현재 폴리마켓에서 60대 40으로 나오는 두 후보의 승률 차이는 그 이후에 생긴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실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밈 주식 열풍에 참여한 대부분의 개미 투자자들이 돈을 잃었지만, 자기는 좋은 취지에 동참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폴리마켓에서 지지 후보에 베팅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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