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군의 시각에서 바라본 정유재란 국립진주박물관 ‘명나라의 정유전쟁’ 발간
국립진주박물관은 정유재란 당시 명군의 최고 지휘관인 형개(1540~1612)가 전쟁을 기록한 ‘경략어왜주의(經略禦倭奏議)’를 역주한 ‘명나라의 정유전쟁’ 1∼4권을 발간했다. 번역서인 1∼3권에는 각각 ‘출병 준비’, ‘반격과 종전’, ‘전후 처리’라는 부제를 달아 각 도서의 주요 내용을 담았으며, 4권에는 교감·표점한 한문 원문을 수록했다.
이 책의 발간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은 오희문(1539∼1613)의 피난일기 ‘쇄미록’(2018), 명나라 경략 송응창(1536∼1606)의 임진전쟁 수행 기록 ‘경략복국요편’(2020·2021)에 이어 세 번째로 임진왜란 관련 국역서를 출간했다.
‘경략에 임명된 형개가 일본군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명 황제에게 보고한 글’이라는 뜻을 가진 ‘경략어왜주’에는 1597년부터 1601년까지 일본군의 재침공에 대응하는 명군의 상황 인식과 대처가 생생하게 기록됐다. ‘경략’ 전쟁 같은 유사시에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명군 총지휘관을 뜻한다.
강화협상 결렬 이후 일본군의 재침공이 현실화하자, 1597년 명나라는 병력과 물자를 대규모 동원하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 잇따라 일본군에 패배하자 도망친 명군 장수를 처형했으며, 직산 전투에서 일본군의 기세를 꺾은 뒤에는 조선군과 함께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울산왜성을 포위 공격했다. 1598년에는 남해안 일대에 왜성을 쌓고 장기전을 펼치는 일본군을 4개의 방면으로 군대를 나누어 공격했다. 이런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명나라 측 내부의 내밀한 속사정을 책에서 살펴볼 수 있다.
1597년 3월 일본군을 막아내는 임무를 띤 경략(경략어왜)에 임명된 형개는 명나라의 변경 방어를 강화하는 한편, 조선에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동원했다. 전쟁 초기에 조선 수군과 명군이 잇따라 패배하자, 형개는 병력과 물자의 동원을 재촉하고, 패전한 장수를 처벌했으며, 명군의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그 결과 명군이 직산 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후 형개는 두 차례나 조선에 들어와 전투를 적극 독려했다.
1598년에는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농성 중인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4로 병진책을 추진했다. 이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일본군이 철수함에 따라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형개는 조선을 방어하기 위해 명군을 언제까지, 얼마나 주둔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결국 이 문제는 조선과 명의 중요한 현안이 됐다.
책은 정유재란 당시 전황을 명나라의 시각에서 충실하게 기록해, 조선이나 일본 측의 기록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시각의 정보를 담고 있다.
박물관 측은 ‘경략어왜주의’가 앞서 번역 출판한 ‘경략복국요편’과 함께 명나라의 시각에서 본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소개했다. 그동안 임진전쟁 연구는 한국·일본 사료에 크게 의존하다 보니, 전쟁의 중요한 한 축을 맡았던 명나라 측의 역할과 그 영향은 충분히 살펴볼 수 없었는데, 이번 간행을 통해 국제전쟁으로서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됐다.
번역은 조선시대와 중국 근세사 전공자이자 조선·명·청 조선의 외교문서 전문가들이 모인 한중 관계 사료연구팀이 맡았다. 역주서에는 꼼꼼한 주석과 상세한 인명록이 수록돼 전문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 책에 수록된 어려운 문서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역주서(1~3권)와 함께 교감·표점본(4권)을 발간하여, 독자들이 원문과 번역문을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지난해부터 임진왜란 참전 일본군의 종군 일기에 대한 번역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경남 #정유재란 #국립진주박물관 #경략어왜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