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소녀’ 둘, 아일랜드 홀에서 감격

이태동 기자 2025. 7. 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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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희·이소미, LPGA 첫 우승

“진희 언니는 제주도 출신이에요. 저는 완도니까, 우린 섬 소녀들(Island girls)이죠.”(이소미)

맞잡은 손, 함께 웃었다 - 30일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다우 챔피언십 4라운드. 이소미(오른쪽)가 5번홀 버디 퍼트를 넣자 임진희가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팀명 BTI(Born To be Island), 섬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임진희(27)와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이소미(26)가 이런 인연으로 팀을 이뤘다. 둘의 공통점은 더 있었다. 20대 중반에 Q스쿨을 거쳐 지난해 미국 무대에 함께 데뷔했고, 기대했던 우승이 나오지 않아 고전하는 처지였다.

임진희와 이소미가 LPGA 투어 유일의 2인 팀 대항전에서 동시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30일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 컨트리클럽(파70·6096야드)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다우 챔피언십(총상금 330만달러). 두 선수는 이날 최종 4라운드에서 8언더를 합작하며 최종 합계 20언더파로 메건 캉(28·미국)-렉시 톰프슨(30·미국) 팀과 동률을 이룬 뒤 연장 첫 홀서 버디를 잡아 우승했다.

그래픽=김성규

섬 소녀들이 연장전을 벌인 18번홀(파3)은 마침 워터 해저드로 둘러싸인 그린이 마치 섬처럼 보이는 아일랜드 홀이었다. 이번 대회는 포섬(1·3라운드)과 포볼(2·4라운드)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연장전은 팀워크가 특히 중요한 포섬 방식으로 치러졌다.

먼저 톰프슨이 티샷을 홀 약 1.5m에 붙였다. 이어 이소미가 티샷을 그린에 올렸지만 홀까지 거리는 약 2.4m. 상대 팀보다는 긴 퍼트가 남았다. 하지만 임진희가 먼저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고, 이에 압박감을 느낀 듯 캉의 짧은 버디 퍼트는 홀을 빗나갔다. 임진희는 “혼자선 우승을 이뤄낼 수 없었다”며 이소미를 안아줬고, 이소미는 “작년 신인 시즌 힘들었는데 함께 우승해서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우승 상금으로 각각 39만9510달러(약 5억4100만원)씩 받는다. LPGA 투어 정식 우승으로는 인정되지만 세계 랭킹 포인트는 주어지지 않는다.

국내 선수들의 해외 도전이 줄어들고 한국 여자 골프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섬사람’ 임진희와 이소미는 근성과 도전을 보여준다. 임진희는 한국 여자 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후 2부 투어로 떨어졌다가 복귀해 다승왕(2023년 4승)까지 오른 바 있다. 골프 시작은 늦은 편이었지만 항상 큰 목표를 품고 연습량과 노력으로 극복했다. 골프에 전념하려고 소셜미디어도 만들지 않고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소미는 최경주(55)의 완도 화흥초등학교 후배다. 최경주처럼 되고 싶어서 훈련에 매진했고, 입스(yips·샷 실패 불안 증세)와 KLPGA 투어 시드전 탈락도 이겨냈다. KLPGA 투어 통산 5승을 쌓은 이소미는 과감하게 미국행을 결심하고 2023년 말 Q스쿨을 2위로 통과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조금 느려도 반드시 이루는 게 내 장점이다. 세계 1위 하려고 골프 친다”고 했다. 통산 6승의 임진희 역시 같은 해 미국 무대에 도전하면서 “약간 모자랄 때가 가장 노력할 수 있을 때다. 세계에서 가장 잘 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LPGA 투어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데뷔 첫해였던 지난해 임진희는 신인상 랭킹 2위, 상금 랭킹 18위를 기록했다. 이소미는 신인상 5위, 상금 75위였다. 둘은 각각 중견 건설사 후원을 받고 있었는데 올 시즌을 앞두고 스폰서가 사라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임진희는 지난 4월 신한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맺었지만, 이소미는 여전히 후원사 로고 없는 하얀 모자를 쓰고 경기한다. 그래도 이번 대회 전까지 올 시즌 나란히 톱 10을 3회씩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임진희와 이소미는 서로를 믿었다고 했다. 임진희는 “연장전에서 톰프슨이 티샷을 홀에 가까이 붙였는데도 이소미는 신경 쓰지 않고 샷을 하더라”며 “그걸 보고 나도 똑같이 ‘그냥’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소미는 “사실 조금 긴장했는데 임진희가 긴장하지 않고 즐기는 듯 보여 믿고 할 수 있었다”고 했다.

LPGA 투어 통산 15승의 톰프슨은 연장 전패(6전 6패) 불명예 기록을 이어갔다. 최종 라운드를 공동 4위로 출발해 부진 탈출 기대를 모았던 박성현(32)-윤이나(22) 팀은 공동 18위(13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포섬·포볼

포섬(foursome) 경기 : 한 팀의 선수 두 명이 공 한 개를 번갈아가며 치는 방식. 한 선수의 실수가 팀 동료 선수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서로 호흡이 잘 맞는 것이 중요하다.

포볼(four-ball) 경기 : 두 선수가 각각 자기 공으로 플레이해 더 좋은 스코어를 반영하는 방식. 좋은 성적만 기록으로 인정되므로 한 명은 버디를 노려 공격적으로 경기하는 전략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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