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테를지국립공원] 마음이 복잡할수록 거친 들판으로 가야 한다

최미나 2024. 7. 1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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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대판 유목민이다. 1년 중 3분의 1 이상을 해외를 떠돌며 지내고 있다. 어쩌면 삶의 형태가 유목민과 닮아서일까? 나는 항상 진정한 유목민의 나라인 몽골을 동경했고, 그곳이 궁금했다. 하지만 자유여행이 쉽지 않은 터라, 딱히 가 볼 기회가 없었다.

마침, 내가 속한 산악회를 통해 몽골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4박 5일 동안 매일 산행할 수 있는 최적의 일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꿈꿔 왔던 몽골로 훌쩍 떠났다.

열트산에서 본 풍경.

몽골 대표 휴양지, 테를지국립공원

울란바토르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로 유명하다. 시베리아와 가깝고, 평균 고도는 1,350m로 꽤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위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는지, 울란바토르의 봄바람은 온화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와 곧장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창밖으로 광활하다 못해 황량한 초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몽골인 가이드 오카는 유창한 한국어로 몽골의 초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몽골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예요. 사람보다 양과 말이 더 많습니다. 인구는 약 350만 명인데, 가축은 6,000만 마리나 되죠. 대부분 초원에 방목되어 자라죠. 풀을 뜯고 있는 말을 자세히 보면 왼쪽 엉덩이에 주인 고유의 표식이 있어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한가한 창밖 풍경이 단번에 이해됐다.

테를지 국립공원 내 여행자용 게르는 화장실이 별도로 딸려 있다. 여행 전 유목민의 생활을 체험해보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무색할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1시간 30분을 달려 테를지국립공원Terelj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이곳은 몽골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점이었다. 테를지국립공원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열트산, 야마트산뿐만 아니라 몽골 올레 3코스를 품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에 짐을 풀었다. 이곳은 리조트로 개발되어 게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있었다. 나는 유목민의 삶을 조금이나마 체험해 보고 싶어 게르에서 묵기로 했다.

게르는 일종의 텐트였다. 버드나무 장대를 방사형으로 세우고 양털로 만든 펠트와 흰 광목을 덮은 모양새였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구조 덕에 1시간 만에 해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무게도 250kg에 불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에게는 최적의 주거 형태라고 했다.

전통적인 유목민 게르는 내부에 석탄, 나무, 가축의 똥을 말린 연료로 난방을 하지만, 우리가 묵는 여행자용 게르는 조금 달랐다. 바닥이 온돌처럼 따뜻했고, 따로 욕실도 있어 온수 샤워도 할 수 있었다. 도시의 편리함과 전통의 낯섦을 모두 간직한 곳이었다.

열트산 정상부의 늑대 동상.

우리는 곧바로 숙소 뒤의 열트산으로 향했다. 열트산은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하이킹 코스였다. 그래서 구글 지도에도 위치가 나오지 않았다. 총길이는 5km 정도, 초반 1.5km의 가파른 오르막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비교적 부드러운 능선의 산이었다.

생경한 초원의 풍경이 펼쳐졌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 매, 울퉁불퉁한 바위산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지평선은 끝없이 이어졌다. 안경 쓴 친구 한 명은 "여기서 몇 달만 살면, 몽골 사람들처럼 시력이 참 좋아질 것 같다"고 감탄했다.

아름다운 야생화 군락과 거북이를 닮은 거북바위를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칭기즈칸을 상징하는 늑대 동상과 나무를 세워 만든 서낭당의 일종인 어워Ovoo가 있었다. 가이드 오카가 말했다.

"어워는 돌과 나무를 쌓아 만든 성역이에요. 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연결하는 예배와 제물의 장소죠. 몽골은 불교와 샤머니즘이 혼재합니다. 열트산 정상은 기가 세다고 알려져, 이곳에서 제를 지내는 한국 무속인도 있어요."

그들의 소원은 어떤 것이기에 이 먼 타국까지 오는지, 또 그 소원은 이루어졌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야마트산의 이름 없는 바위.

끝없는 초원과 기암괴석의 향연

야마트산을 오르기로 한 다음날 아침,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모닥불 소리가 아닌, 게르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였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사실 비 맞으며 산행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게르에서 빗소리 들으며 책이나 읽고 싶었다. 하지만, 일행은 "우중 산행의 맛이 있지!"라며 우비를 입고 산에 간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중 산행의 맛이라고? 그건 일할 맛처럼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맛일 거야!'

하지만 게으름 피울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국 일행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곧 비가 그쳤고, 햇살이 우리를 포근히 떠밀었다.

야마트산 하이킹은 해발고도 1,700m에서 정상 전망대까지 550m의 고도를 올려야 했다. 초반 1시간 정도는 오르막을 쭉쭉 올랐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멋진 풍경과 아름다운 꽃밭에 우리는 숨을 죽이고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수천 년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을 이름 없는 바위가 초원에 '툭'하고 누워 있었다.

야마트산에서의 필자.

초원 능선의 꽃밭을 지나니 잣나무, 전나무 군락지가 반겼다. 곧이어 야마트산 전망대까지 암릉이 이어졌다. 험한 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초원과 숲길만 걷다 바위를 타고 오르려니 숨이 차올랐다.

잠시 후 탁 트인 야마트산 전망대의 파노라마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테를지 동쪽 산맥 저 멀리까지 아름다운 산그리메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야마트산은 밧줄이나 사다리, 나무 데크 같은 인위적 시설 없이 자연 그대로 야성적이었다. 한편으로 아무런 안전시설이 없는 낭떠러지가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전망대에서 비교적 평탄한 길을 따라 오르니 정상이 나왔다. 열트산과 마찬가지로 서낭당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하늘과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단상에는 작은 제물들이 촘촘히 놓여 있었다. 무심하고 자유로운 몽골의 자연이 내 발아래 있었다.

야마트산 정상의 어워. 몽골에서는 우리나라의 서낭당 같은 어워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 올레를 닮은 몽골 올레

몽골에는 제주 올레의 자매길인 '몽골 올레길'이 있다. 2017년 6월, 울란바토르시와 제주관광공사가 협력해 조성된 이 길은 총 3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 중 가장 다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몽골 올레길 3코스를 걸었다.

몽골 올레길 3코스는 총 길이 16.8km로 다른 두 코스에 비해 가장 길다. 툴강Tuul River을 따라 자그만 마을과, 초원, 낙엽송길, 자작나무숲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7km는 말을 타고, 나머지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말을 타고 툴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

부드러운 초원을 지나 강을 건넜다. 겨울 동안 살이 찐 조그만 조랑말은 어제 내린 비로 한껏 부푼 강물 앞에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흔들었다. 노련한 마부는 개의치 않고 부지런히 말을 이끌었다. 나는 보물을 찾아 방랑하는 동화 속 모험가가 되어 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윤슬 비친 강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더 넓은 초원과 바다처럼 깊은 하늘이었다. 조랑말의 임무는 언덕의 쉼터에서 끝났다. 이어진 길은 후들거리는 두 발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었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 녹음 짙은 초원을 따라가니 어느새 산행이 끝났다. 따뜻한 저녁노을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테를지의 밤하늘은 검은 벨벳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처럼 별들로 가득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사방에서 우리의 소원이 쌓였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을 걷다

몽골 여행의 마지막 산행지는 복드칸산Bogd Khan Mountain (2,261m)이었다. 이곳은 1778년에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공원이었다. 우리는 복드칸산의 주봉인 체체궁봉 하이킹 코스를 오르기로 했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체체궁봉 산행 코스는 총 16.5km 정도였다. 들머리인 만취르 사원에서 정상까지 6km 정도 올라 날머리인 호르흐계곡까지 7시간 동안 제법 길게 걸어야 했다. 다행히 530m의 높이를 3시간 동안 천천히 올리는 산행이라 크게 힘들진 않았다. 또한 나무에 페인트로 적힌 숫자가 이정표 역할을 해줘, 길을 잃을 염려도 적었다.

몽골 올레는 제주 올레의 자매길로, 2017년 6월부터 조성이 시작돼 현재 3개 코스가 있다.

체체궁봉으로 오르는 길은 우리의 험난한 인생을 닮았었다. 진흙과 물웅덩이는 인내심을 시험했고, 지칠 때쯤 흙과 풀, 이끼의 푹신함이 발걸음을 달래주었다. 잣나무를 수확할 때 이용한다는 신비로운 오두막도 있었다. 은은한 향이 풍기는 전나무숲과 소나무숲은 덤이었다.

대체로 부드러운 길이었지만, 깔딱고개가 제법 매웠다. 정상부에는 날개 펼친 독수리가 연상되는 거대한 바위와 제단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안녕과 평화, 개인의 소원이 모인 돌무더기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참고로, 복드칸산은 칭기즈칸이 묻혀 있을지 모른다고 자주 거론되는 보르항산burkhan khaldun, 오트곤텡거Otgontenger와 함께 몽골의 3대 성산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몽골 초원에서 만난 보라색 할미꽃

챙겨온 도시락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이후 표지판을 따라 호르흐계곡 방향으로 하산했다. 가이드는 하산길을 찾지 못해 고립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꼭 일행과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잣나무 숲을 지나 만난 호르흐계곡에는 녹지 않은 얼음 사이로 부드러운 햇볕이 봄의 입김을 불어 넣고 있었다.

이번 몽골 여행을 계기로 나는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과 고민을 자연에 흘려보낼 수 있었다. 도시로 돌아가 새로운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만 같았다. 아마 그 여름은 몽골의 산, 초원, 별빛 아래서 배운 평화와 강인함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체체궁봉 하이킹의 날머리, 호르흐계곡.

몽골 여행 INFO

오카 (가이드, 무한도전 여행사)

한국어가 유창한 몽골인 현지 가이드

가이드 오카는 단국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한 후 몽골로 돌아와 한국인을 대상으로 5년째 산행 전문 가이드를 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와 식습관을 잘 알기에 그는 우리 일행을 세심하게 챙겼고, 생소한 질문에도 재치 있게 답해 주었다. 그에게 몽골 산행 팁을 물었다.

오카가 전하는 몽골 산행 팁!

1.몽골의 산이나 초원에는 명확한 길이 없어요. 길을 잃기 쉬우니 가이드와 동행하세요.

2.몽골은 날씨가 건조해요. 콧속에 바셀린을 발라서 코피를 예방하세요.

3.여름에는 초원에 쇠파리나 모기가 많아요. 여름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벌레기피제도 뿌려 주세요.

4. 말은 소음에 민감합니다. 승마 시, 머플러나 옷이 휘날리는 소리에 말이 놀라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또한, 말 뒤쪽으로 가까이 가면 뒷발로 차일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푸르공

푸르공Purgon은 몽골 초원의 아이콘이다.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차체와 클래식한 외관 때문에 빵덩어리라는 의미의 부한카буханка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소련의 군용차로 처음 설계된 푸르공은 반세기 넘도록 승합차로 생산되고 있다. 승차감은 별로 안 좋다. 마치 날뛰는 야생마에 올라탄 것 같은 느낌이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푸르공을 타고 있으면 놀람과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값이 싸고 험지 운용 능력이 좋은 편이라, 몽골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몽골의 음식

몽골 요리는 척박한 땅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의 문화,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내륙 국가의 특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몽골의 음식은 요리법이 비교적 단순하고, 야채가 풍부하지 않다. 또한, 향신료나 소금간도 세지 않다.

허르헉Horhog

솥에 양고기나 염소 고기를 잘라 넣어 만든 몽골의 전통 요리다. 뜨겁게 달군 차돌 10~20개 정도를 넣고, 그 열기로 4~5시간 정도 음식을 찐다. 육즙이 풍부한 부드러운 양고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호쇼르Khuushuur

양고기와 양파를 갈아 소를 채우고 튀긴 만두. 양고기향이 진하고 육즙도 풍부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찐만두는 보쯔이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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