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찢남’ 오타니 “치고 던지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야구”
“치고 던지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야구다. 한 가지만 하고 다른 하나를 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부자연스럽다.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투타 겸업)을 하는 것이 재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이전에 했던 말이다. 그는 진짜 ‘야구’를 한다. 타석에 서고,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진다. 현대 야구에서는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팔꿈치 수술 탓에 마운드에 설 수 없는 올해는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뛴다.
보통 홈런 타자는 부상 위험 탓에 도루 시도를 잘 하지 않는데 오타니의 야구에서 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는 강한 어깨와 빠른 발로 전무후무한 ‘50홈런-50도루’ 고지를 밟았다. 그의 말처럼 “한 가지만 하고 다른 하나를 하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오타니가 국내에서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미국에서는 ‘원 오브 카인드’(One Of Kind:유일무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오타니는 8살 때부터 리틀야구에서 뛰었고 야구를 하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다. 지역(이와테현 오슈시) 특성상 요미우리 자이언츠 중계만 볼 수 있던 탓에 요미우리 외야수 마쓰이 히데키를 동경했다. 어린 시절만 해도 오타니는 “야구는 그저 취미일 뿐”이라고만 생각했고 “나보다 잘하는 야구선수가 더 많다”라고 느꼈다.
그러나 하나마키히가시고로 진학한 이후 그의 야구 인생은 바뀌었다. 체격(키 193㎝)이 커지면서 공 끝에 힘이 실렸다. 하루에 밥 12공기를 챙겨 먹던 시기였다. 16살에 시속 153㎞의 공을 던졌고 이듬해에는 시속 159㎞가 스피드건에 찍혔다.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투구 폼이 흐트러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의 구속은 미국 구단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다저스를 비롯해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이 그의 영입에 눈독을 들였다. 오타니 또한 “미국에서 뛰고 싶다”면서 일본 구단들한테 자신을 신인드래프트 때 지명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신인드래프트 대상 고졸 선수가 그를 지명한 일본 구단과 계약하지 않고 미국 야구로 진출할 경우 향후 일본 야구로 돌아올 때 3년간 출장이 제한(대졸은 2년)된다.
그러나 니혼햄이 신인지명 1라운드 때 12개 팀 중 유일하게 오타니를 선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일본은 12개 구단이 동시에 1순위 선수를 적어내며 복수의 구단이 한 선수를 지명했을 때는 추첨을 한다.) 야마다 마사오 당시 니혼햄 단장은 “드래프트는 계약할 수 있는 선수를 뽑는 게 아니라 최고의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스카우트 방식”이라고 오타니 지명 이유를 밝혔다.
미국행 의지가 컸던 오타니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 야구계 안팎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니혼햄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국 진출 일본 선수들의 유형을 분석한 자료와 함께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로드맵까지 보여줬다.
니혼햄이 준비한 자료 중에는 버스를 이용한 긴 원정길, 관중 없는 텅 빈 구장, 형편없는 숙소 등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디오도 포함돼 있었다. 가장 매력적인 제안은 ‘투타 겸업’이었다. 아주 높은 성공 확률로 메이저리그 직행을 원한 오타니의 마음은 움직였다.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때 오타니는 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식사, 체력 훈련 등을 구단 시설에서 소화했다. 술·담배도 일절 하지 않았다. 취미 생활은 스포츠 관련 영화를 보거나 훈련 방법이나 식이요법에 관련한 책을 읽는 것. 반신욕과 낮잠도 좋아하지만 클럽 출입은 전혀 하지 않는 ‘모범 생활 사나이’이었다. 쓰레기는 남이 버린 운이라며 더그아웃 안팎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어졌다.
고교 1학년 때 세운 만다라트 계획표(일본의 한 디자이너가 개발한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대로 오타니는 시속 160㎞의 공을 던졌고, 포크볼 또한 완성했다. 제구와 구위를 가다듬고 몸만들기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2017년 12월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오타니는 만다라트 계획표 외에 따로 세운 야구 계획표가 있는데 계획표대로 그는 세계야구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나가 우승을 차지(2023년)하고 최우수선수(MVP)에도 뽑혔다. 메이저리그 MVP는 그의 계획처럼 27살(2021년)에 차지했다. 오타니는 2021년에 이어 MLB 역사상 처음으로 ‘10승-40홈런’을 기록한 2023년에도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됐다. 그는 MLB 역사상 만장일치로 두 번이나 MVP를 받은 최초의 선수다. 올해도 내셔널리그 MVP는 떼놓은 당상이다.
그의 계획표에는 월드시리즈 우승도 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6년 동안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소속팀 LA 에인절스 전력이 너무 약했다. 월드시리즈 무대를 꿈꾸며 오타니는 지난해 말 LA 다저스와 10년 7억달러(9240억원)에 계약했다. 7억달러는 미국 스포츠 사상 최고액 계약이다. 다저스는 작년까지 11시즌 동안 10차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던 터. 오타니의 오랜 꿈,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줄 수 있는 구단이 다저스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저스는 오타니가 6타수 6안타(3홈런) 2도루 10타점을 기록한 20일(한국시각) 마이애미 말린스와 경기에서 승리(20-4)하면서 12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이로써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에 서게 됐다. 착실하게 팔꿈치 재활을 해왔기 때문에 실전 마운드 복귀 무대가 포스트시즌이 될 수도 있다. 오타니는 지난 15일 불펜 피칭으로 25개 공을 던졌는데 최고 구속이 시속 150㎞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2023 WBC 미국과 결승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던 상황을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가 자신만의 리그에서, 자신만의 야구를 이어가는 ‘오타니 쇼헤이’이기 때문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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