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 국민참여재판의 ‘구멍’ [임재성의 함께하는 법]

한겨레 2026. 5. 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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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고백하자면, 필자는 무죄를 다투는강제추행 사건 피고인을 변호하면서는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했다. 피해자를 대리하면서는 기를 쓰고 국민참여재판을 막았다. 변호사들이 실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요령’ 중 하나는 국민참여재판 성범죄 무죄율이 높다는 것이다. “성범죄 무죄 주장을 하는 경우, 위임계약서를 쓸 때 국민참여재판 옵션을 별도로 넣어서 계약해야 합니다. 무죄가 꽤 잘 나오거든요.” 실무 강의에서 흔하게 듣는 이야기다.

억울하게 기소되었다면 무죄가 정의다. 성범죄가 실제 있었다면 유죄가 맞다. 그런데 절차에 따라 무죄율 차이가 크다면 그 절차에 구멍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대법원이 2016년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이후 무죄율이 급증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국민참여재판 성범죄 사건 무죄율 평균은 약 40%, 같은 기간 국민참여재판 다른 범죄의 무죄율 23%의 거의 두배에 이른다. 2022년에는 53%로 최고점을 찍었고, 가장 최근 통계인 2024년은 52%였다. 일반 재판 절차에서 성범죄 무죄율 3~4%와의 차이는 까마득하다.(다만,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무죄를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반 절차에서는 유죄 자백이 많기에 직접적 비교에는 신중해야 한다.)

이 현상이 1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여러 층위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필자만 해도 4년 전 ‘국민참여재판으로 몰려드는 성범죄’라는 칼럼을 썼다. 2023년 대검찰청은 ‘국민참여재판 전담 검사 워크숍’에서 성범죄 무죄율이 높은 원인을 분석했고, 법원 역시 같은 해 내부 연구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살폈다. 지난 국회에서는 배심원에게 성범죄 특수성 교육을 강화하거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국민참여재판으로 갈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법안은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고, 이번 국회에서는 관련 발의조차 없다. 법원과 검찰 역시 일부 구성원들의 고민이 제도적 변화로까진 이어지지 못했다. 이 칼럼을 쓰는 이유다.

관련 연구들이 ‘높은 무죄율’의 이유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배심원의 ‘강간 통념’(성 고정관념)이다. 법원 공식 기구인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는 “피해자가 피고인과 클럽 또는 노래방 등에서 만나 상당한 시간을 같이 보냈다거나 새벽까지 같이 술을 마신 경우 또는 피해자가 노래방 도우미 등인 경우, 기존에 연인관계로 여러차례 성관계를 맺은 바 있는 경우” 배심원에게 ‘그런 사이에서 강간은 있을 수 없다’는 편견이 쉽게 작동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 사회적 편견이 그대로 법정에 들어와, 피해자의 진술 이외에 다른 증거가 뚜렷하지 않은 성범죄 특성과 결합하면서 높은 무죄율이라는 부당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배심원의 고정관념을 희석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 재판장이 배심원에게 ‘늦게 항의나 고소를 하였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거짓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각한 성폭행의 트라우마에 있어 사람들은 하나의 전형적인 반응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등의 설명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이라면 당장 ‘피고인에게 불리한 부당한 개입’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일이지만, 절차와 제도를 갖추면 된다. 법원이 결단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다.

두번째로 피해자 진술에 대한 정당한 검증을 넘어 부당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서울고등법원은 2021년 국민참여재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성범죄 사건을 파기하고 유죄로 판단하면서 판결문에 이례적으로 1심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적절한 증인 또는 피고인 신문의 제한 등과 같은 적극적인 소송지휘권 행사를 통해 … 배심원들이 기존의 낡은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 더 신중하고 합리적인 증거 판단과 최종 결론에 이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1심에서 피해자의 과거 대인관계, 사건 당시 옷차림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항소심은 이는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이었고, ‘진정한 피해자’라는 고정관념을 악용한 것이었기에 제지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런 판결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민주화의 상징적 제도이고, 확대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그 빛나는 제도에 구멍이 있다. 이제는 구멍을 메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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