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년째 멈춰 선 강남 개발의 그림자
서울 강남 삼성역과 봉은사역 사이, 동부간선도로에 맞닿은 자리에 위치한 옛 서울의료원 부지는 여전히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돼 있다. 면적만 약 3만 1,500㎡에 달하는 이 핵심 입지는, 2011년 의료원이 중랑구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도시 기능을 담아낼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시간이 무려 14년이나 흘렀음에도 부지는 여전히 비어 있으며, 시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구체적인 개발의 청사진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강남 한복판 땅’이라는 상징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행정적 갈등과 사업성 부족이라는 이중의 난관에 발목이 잡혀 버린 것이다.

수차례 바뀐 계획, 진전 없는 실행
서울시는 당초 이곳을 상업·업무 지구로 개발해 강남권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하지만 재원 확보의 한계와 강남구청, 시공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추진은 번번이 무산됐다. 2014년에는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지정하며 더 큰 그림 속에 포함시켰으나, 정작 의료원 부지는 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2020년에는 방향을 확 바꿔 공공주택 3,000호 공급 계획이 발표됐다. 그러나 지역 주민과 강남구청의 강한 반대로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공공주택 건립으로 사회적 필요를 채우려는 시도가 구체적 실행 단계에서 좌절된 것이다. 서울시는 이후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고, 지금은 사실상 아무런 개발 계획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땅값은 2조 원에 육박…활용 못하는 자산
이 부지를 둘러싼 또 다른 아이러니는 그 가치에 있다. 서울시는 2015년 이 부지를 매각해 약 1조 원의 재원을 확보하려 했으나 삼성,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입찰은 불발됐다. 이후 조건을 일부 완화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사업성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당 부지가 ‘준주거지역’으로 지정되어 용적률이 400%로 제한되고, 절반 이상을 관광·문화 시설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즉, 개발을 해도 땅값에 걸맞은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시지가만 해도 약 6,570억 원에 달하며, 시세를 반영할 경우 최대 2조 원에 이른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야말로 ‘보물 같은 노른자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레미콘 공장으로 전락한 명당 자리
현재 의료원 부지에서는 중장비가 가동되고 있지만, 이는 본격적인 건설 작업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시는 2027년까지 이곳을 영동대로 지하 복합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레미콘 생산기지로만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즉, 값비싼 강남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이 사실상 임시 공장 부지로 쓰이는 셈이다. 시민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 주택, 상업, 문화공간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방치되면서 결국 한시적 ‘임시 활용’이라는 궁색한 대안만 남았다. 이러한 현실은 서울시가 전략적 판단력을 잃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공공 자산이 방치되는 전형적인 실패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시민은 외면, 행정은 갈팡질팡
해당 부지를 둘러싼 정책 혼선은 결국 시민들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남권의 핵심 입지가 10년 넘게 방치된 사이, 서울의 주택난은 계속 심화했고, 공공 인프라 확충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서울시는 매번 ‘다양한 개발 구상’을 내놓기만 할 뿐, 실현 가능한 청사진을 내놓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강남구 역시 자치구 이해관계에 매몰돼 반대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활용 방안을 동시에 잡으려다 보니 정책 우선순위가 희미해졌고, 그 결과 아무 것도 실현하지 못하게 된 전형적 행정 실패”라고 지적한다. 특히 서울시가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현실적인 해법을 찾기보다는, 당위적 구호만 내세운 것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크다.

실효성 있는 개발 전략이 절실하다
옛 서울의료원 부지는 강남 개발의 새로운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고, 국제 업무지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 입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방향성 없는 논의를 이어가기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광·문화시설 의무 비율을 조정하거나, 용적률 제한을 완화해 사업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매각을 통한 대규모 재원 확보 후 이를 청년 주택이나 생활 SOC 확충 등 실제 수요 충족에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시민들에게 분명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강남 한복판 노른자 땅’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으려면 행정적 결단과 정치적 의지가 동시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