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식 당일, 신랑은 감옥에 있었다
1969년, 배우 선우용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식 당일, 신랑은 예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누군가가 그녀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도장을 찍어야 결혼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도장을 찍었고, 결혼식은 겨우 성사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남편은 지인의 빚 보증을 서줬다가 그 일로 체포되었고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던 1750만 원을 고스란히 선우용여가 짊어져야 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200억 원에 달하는 금액.
가장이 된 여배우

갑작스럽게 가장이 된 선우용여는, 배우라는 직업이 아니라 생계형 노동자로 무대에 올랐다.
공장과 땅까지 잃고, 재판을 18년간 끌어가며 살아남기 위해 연기를 해야 했다.

돈이 없어 당장 지낼 집도 없었지만, 200만 원을 들고 분양 사무실로 달려가 “50만 원은 1년 안에 갚겠다”며 당당히 이야기한 끝에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그 집은 7개월 만에 800만 원으로 뛰었다. 그제야 삶의 반전이 시작됐다.
‘용기’는 그녀가 스스로 일궈낸 유일한 재산이었다.
“내가 밥이야!”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유행어가 된 대사‘아 몰라 몰라 몰라’는 사실 NG였다.
하지만 그 실수가 큰 웃음을 주었고, 그녀는 웃음을 통해 상처를 이겨내기 시작했다.

당시 선우용여는 갱년기와 가장 역할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밥!” 한 마디로 식사를 요구했고, 그녀는 주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음이 터졌다. “내가 밥이야? 당신이 차려 먹어!”그날 이후, 무대뿐 아니라 삶에서도 주인공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사랑
남편은 말년에 치매와 파킨슨병을 동시에 진단받았다. 처음엔 단순한 화로만 보였지만, 병이 깊어지면서 4년 반 동안 드러누워 지냈고, 그 옆을 선우용여가 묵묵히 지켰다.

남편은 생의 마지막 순간, 이렇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
그녀는 대답했다. “미안하긴요. 당신이 나한테 아들과 딸을 선물했잖아요.”
그 말에 눈물이 났고, 그 기억은 아직도 그녀를 울컥하게 만든다.

혼자 사는 지금, 선우용여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치매를 걱정하고, 건강을 챙기고, 때론 유쾌하게, 때론 뭉클하게 세상과 소통한다.
그녀는 말한다. “살아 있을 때, 서로 잘해야 해요. 남편이든, 아내든, 꼭 그때그때 고맙다고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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