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el터뷰!) 영화 <밀수>의 박정민을 만나다

지난 7월 2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정민 배우와 인터뷰를 가졌다. <밀수>에서 박정민은 어리숙해 보였지만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야망을 품은 장도리를 연기했다. 박정민 하면 이제 ‘짜증 연기의 대가’, ‘짜증 연기의 일인자’란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별명에 대해 “그건 순전히 프레임이다”라며 반박했다. ‘장도리’를 통해 또 한 번 원 없이 짜증 내던 모습이 눈앞에서 선하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확연히 다른 얼굴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그는 현장에서 얻은 경험이 많다고 전했다.

‘밀수’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덥석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감독님의 영화라면 뭐라도 할 거다. ‘밀수하는 영화인데 네가 하면 좋을 캐릭터가 있다’는 말에 곧바로 승낙했다. 예전 단편 <유령>에 출연한 인연으로 호출이 자주 왔었다. <모가디슈> 특별출연도 연락 왔는데 스케줄이 허락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했는데 못 했었다. 워낙 제가 감독님의 팬이다.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기에 나왔던 영화 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특히 좋아한다. 독립영화였지만 특색 있는 전개와 멋진 액션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극장에서 두 번 세 번 보면서 꿈을 키웠다”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하겠다고 한 작품이 또 있을까? 역할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님의 <일장춘몽> 때도 하겠다고 바로 대답했다. ‘아이폰으로 영화 찍을 건데 할 생각 있냐’고 하셨다. 믿고 따르는 감독님이면 무조건 하는 것 같다. 주인공은 시켜주면 좋지만 사실 부담스럽다. (웃음) 뭘 가리지 않으니까 더 다양한 역할이 밀려들어 온다. 일단 해 볼 만하다 싶으면 선택한다. 캐릭터, 감독, 제작진, 함께하는 배우가 누구인지를 따진다. 그래도..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시나리오’다”

그러고 보니 유독 대가들이 박정민을 자주 찾는 느낌이다. 철저하게 준비해 와서 예쁘다는 칭찬도 자자하다. 본인은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키는 대로 잘해서? (웃음) 수동적이라고 느껴지겠지만 단편을 연출해 보고 깨달았다. 배우가 연기하면서 놀라운 지점을 보여주는 것도 감독으로서는 좋지만, 원하는 것을 제대로 해줄 때 쾌감도 크다는 것을. 디렉션을 정확하게 받아먹을 줄 안다는 칭찬이 저에게는 감사하다”
거장 감독에게 부름을 받는 배우, 쟁쟁한 선배 배우의 사랑을 받는 배우, 그들과 협업 한 소감도 들어봤다.
“사실 부끄럽다. 워낙 아우라와 존재감이 큰 선배님들이 계신 자리라서 현장에서는 조용하게 있다가 부르면 대답하는 정도였다. 못해서 반감 시키지만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혜수 선배님은 극 중 장도리와 내가 너무 좋았나 보다. 너무 좋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에 춤추는 스타일이 아니라 민망해하고 도망가는 타입이라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과연 ‘장도리’는 박정민의 인생 캐릭터로 등극하게 될 것인가. 박정민은 자신이 맡았던 역할 중에 가장 애정 하는 캐릭터가 있을까.
“제 생각보다 관객들이 그렇게 봐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최애까지는 아니어도 10년 정도되다 보니, 이제는 나와 동떨어져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역할이 있긴 하다. <파수꾼>의 ‘백희준’이다. 출연작을 편히 못 보는 체질인데 백희준 정도면 이제 편하게 바라볼 수 있겠다”
장도리 캐릭터를 직접 만나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박정민의 악역 아닐까 싶다.
“놀랐다.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이 역할을 맡기겠다고 결정한 건지 의아했다. 재미있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다. 감독님의 영화적인 철학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원래 팬이었지만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많은 준비를 해오는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유독 밀수에서만큼은 감독의 디렉션을 잘 따랐다고 했다.
“장도리는 감독님의 말맛을 살릴 수 있는 캐릭터다. 순수하게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감독님이 고향에 어떤 아저씨가 있었다면서 기억 속의 아저씨를 이야기해 주었다. 집에서 들은 대로 열심히 준비해 가도 현장에서 툭 하고 던져주시는 것보다 좋지 않아서 계속 현장에서 고쳐나갔다. 내가 준비한 것, 감독님이 주문한 것을 서로 소통하면서 바로 맞추다 보니 일하기 편한 배우라고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
“처음에는 뱃사람 같은 단단한 몸을 제안하셔서 운동을 시작했다. 일단 벌크업하고 다이어트해서 몸은 만들 생각이었다. 어쩌다 보니 살크업을 하게 되었고 그 상태로 피팅을 갔는데, 그 모습을 특히 좋아해 주셨다. 런닝 차림도 너무 좋다고 해서 단박에 낙찰된 거다. 그다음 날부터 편하게 운동도 하지 않고 장도리의 외모를 빌드업 했다. (웃음)10kg 이상 살만 찌워서 80kg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전, 란’ 때문에 감량했고 유지 중이다. 작품마다 원하는 제 얼굴과 몸을 만드는 것도 배우의 몫이니까 빼고 찌는 건 어렵지 않다”

“초반 순수했던 장도리의 머리는 가발이고, 후반부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는 내 머리다. 패션이나 소품에 관해서는 혜수 선배님의 도움이 컸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본인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레퍼런스로 쓰면 어떻겠냐고 해서 꾸준히 제안 주셨다. 사실 선배님의 공이 녹아 있는 캐릭터다. 촬영이 2년 전이고 코로나 때여서 원단 수입도 어려웠다. 터키에서 원단을 구해서 만들었던 특별함도 있다”
그런 노력이 통했던 것 같다. 관객들은 장도리의 첫 이미지만 봤을 때 매우 충격받았던 비주얼이다.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관객 및 본인의 부담은 없었을까.
“영화를 아이맥스관에서 처음 봤는데 사실 그 비주얼을 보고 신났다.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날 정도였다. 가면 쓰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말이다. 평소 얼굴이 아니니까 뭘 해도 납득이 가는 캐릭터였고 내 한계와 허용 범위를 넓혀 준 캐릭터였다. 관객분들의 반응이 매우 궁금하다. 영화가 잘되면 오랫동안 장도리를 기억해 주지 않으실까?”
순수하게 본인은 장도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도 궁금하다.
“장도리는 근본 없는 캐릭터다. 설정 자체는 떠돌아다녔던 사람이다. 여기 군천에서 밥 먹이고 일 시키고 했던 거다.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군천에 유입된 사람이다. 감사나 의리가 첫 번째가 아닌, 언제든지 유혹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정했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 본능이 그때마다 달라지며 발휘되는 사람이다”
* 박정민 배우의 인터뷰는 2편에서..
글: 장혜령
사진: 샘컴퍼니
- 감독
- 류승완
- 출연
-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 평점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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