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강국도 어려운 기술, "소해 헬기 자체 개발 성공"

바다에 숨겨진 죽음의 함정, 기뢰를 찾아내고 제거하는 것은 전 세계 해군이 가장 어려워하는 임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이 까다로운 기술을 자체 개발로 완성해내며 세계 군사 강국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22년 하반기 개발에 착수한 마린온 기반 소해 헬기가 불과 2년 반 만에 첫 번째 시제기 제작을 완료하며 빠른 개발 속도를 보여주고 있죠.

수리온에서 마린온으로, 그리고 특수 임무용 소해 헬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헬기인 수리온을 기반으로 개발된 마린온은 해상 작전에 특화된 헬기입니다.

마린온 개발 과정에서 날개와 꼬리를 접을 수 있도록 설계하여 함상에서 운영하기 편리하게 만들었고, 염분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기 위해 주요 부품에 방염 처리를 했습니다.

여기에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한 부유식 안전 장치와 고정밀도 내비게이션까지 추가했죠.

이렇게 완성된 마린온을 기반으로 소해 헬기를 개발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미 해상 환경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활용하면서도 소해 임무를 위한 특수 장비들을 추가로 통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소해와 잠수함 탐지, 화물 수송 등 다양한 해상 임무에 투입될 수 있는 설계 자유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9,700억 원 투자가 불가피했던 이유


MCH 사업으로 불리는 소해 헬기 개발 사업은 총 8대를 해군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발 비용만 3,450억 원, 양산까지 포함한 전체 비용은 9,7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죠.

겨우 8대를 위해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서방에서 도입할 수 있는 소해 헬기는 미국의 MH-53과 유럽의 MCH-101 같은 대형 기종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MH-53

하지만 이들 기종은 대당 수천억 원이 넘는 가격에 8대를 도입하려면 최소 2조 원 이상이 필요했죠.

게다가 고성능으로 개발된 만큼 운영 비용도 높고, 대형 기종이라 우리 해군의 전함에서 운영하기에는 제한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문제는 기뢰를 탐지할 수 있는 핵심 시스템이 전략 물자로 지정되어 기술 이전이 어렵고, 최신형에 대한 판매도 제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자체 개발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결론에 따라 2020년 10월 자체 개발이 결정되었습니다.

국산 기술의 힘, 핵심 장비 대부분을 자체 개발


KAI가 마린온을 기반한 소해 헬기 개발을 지휘하고 있으며, 국내 방산 업체들이 참여해 소해 헬기에 필요한 핵심 시스템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소나 및 탐지 시스템, 레이더 기뢰 탐지 장비, 수중 구조 임무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까지 대부분의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특히 KAI가 개발에 착수한 지 2년 반 만에 소해 헬기 시제품을 완성했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성과입니다.

핵심 장비 대부분을 국내에서 완성해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빠른 개발 속도를 가능하게 했죠.

이제 1년 이상 해군에서 시험 평가를 마친 뒤 전투 배치 판정을 받게 되면 곧바로 양산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소해 장비들


새로 개발된 소해 헬기에는 바닷물을 투과할 수 있는 특수 레이더를 발사하는 탐지 장비가 탑재됩니다.

이 장비는 수심이 낮은 곳에 위치한 부유 기뢰를 빠르게 탐지할 수 있죠. 탐지된 기뢰의 위치는 정밀 해도에 표시되어 소해함이 접근해서 해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합니다.

KAI에서 개발한 자율 기뢰 탐지 체계도 흥미롭습니다.

공중에서 기뢰 매설이 의심스러운 지역에 여러 개를 동시에 투하해 바닷속 넓은 지역을 탐지할 수 있으며, 동시 운영도 가능하도록 개발되었습니다.

AUV라고 불리는 수중 자율 무인 탐색기는 일종의 무인 로봇으로 광활한 바다를 탐색할 수 있으며, 소해 헬기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숨은 기뢰까지도 찾아낼 수 있는 성능을 갖췄습니다.

소해 헬기에는 무인 기뢰 처리 장치도 탑재됩니다. 좌우 파일런에 장착된 크레인으로 연결되어 수중으로 투입할 수 있게 되었죠.

이 장치는 기뢰를 탐색하고 식별한 뒤, 소화 장치와 광학 장치를 활용해 지향성 폭탄을 발사해 기뢰를 무력화시키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또한 좌우현에 기관총을 장착해 수상에 떠 있는 부유 기뢰를 직접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거친 바다 환경을 위한 특별한 설계


거친 바다 환경에서 기뢰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출력이 향상된 개량형 엔진이 들어가고 탈부착이 가능한 연료 탱크를 추가할 수 있어 운영 시간을 기존보다 크게 늘렸습니다.

항재밍 시스템이 결합된 데이터 링크 시스템도 탑재되어 마린온 헬기보다 더 고성능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죠.

그러면서도 대당 600억 원대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경쟁 기종보다 체급이 한 단계 작지만, 기존 소해 헬기의 단점을 파고들어 수출까지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해군처럼 광활한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나라 같은 국가에서는 굳이 비싼 대형 소해 헬기가 아니더라도 해군 기지를 보호하기 위한 중형급 소해 헬기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한국의 소해 기술


대한민국은 6.25 전쟁에서 북한이 3만 개 이상의 기뢰를 매설해 연합군의 상륙 작전을 방해했던 경험 때문에, 이후 기뢰 제거 전력 확보에 집중해왔던 국가입니다.

냉전 시기부터 소해 전력에 투자해 소해함을 여러 척 개발하고 운용하고 있어 동남아시아나 중동에서도 이런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죠.

기뢰를 생산하고 매설하는 것은 쉽지만, 반대로 제거하는 소해 작전은 고도의 군사 기술과 첨단 장비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지금까지는 미국과 일본(유럽 MCH-101 도입), 영국 정도만이 강력한 소해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린온을 기반한 소해 헬기를 자체 개발해 시제기가 출고되면서 그동안 일본에 비해 격차가 심했던 공중 소해 능력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운용중인 MCH-101 소해 헬기

특히 최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차단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중동 국가들이 기름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이란이 매설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뢰를 제거하기 위한 특수 헬기 도입이 증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중국 해군의 기뢰 매설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이러한 특수 헬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죠.

일반적인 전투함에 비해 무장이 없고 덩치가 작은 소해함(기뢰 제거함)은 자성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철판이 아닌 FRP나 목재로 건조되며,

내부 장비에도 탈자 처리 시스템(남아 있는 자력을 제거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해서 도입 가격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고가의 함정입니다.

그에 비해 하늘에서 기뢰에 피격당할 위험 없이 운영이 가능한 소해 헬기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자체 기술로 소해 헬기를 완성하고 전투 배치까지 눈앞에 두고 있어 수출 시장에서도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