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농구의 팀 덩컨, 축구의 이재성

이영빈 기자 2024. 4. 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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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선 대체로 득점을 많이 한 선수가 경기 MVP로 뽑힌다. 승리의 가장 큰 공헌자는 최다 득점자인 경우가 많다. 득점은 기록지에도 남는다. 쌓인 기록들은 몸값을 올려준다. 실력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증거다. 수비에서 체력을 비축했다가 공격에서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선수도 적지 않다. 이런 선수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다.

반면 미련해 보이는 선수들도 있다. 멀리 있는 상대가 3점 슛을 쏠 때 굳이 힘들게 뛰어나가 손을 위로 뻗는다. 슛을 견제하는 수비지만 한참이나 모자란다. 공들은 깨끗하게 림에 들어간다. 이미 라인 아웃된 공을 살리려고 관중석에 뛰어들어 다치는 선수들도 있다. 이런 행동들은 기록지에 남지 않는다. 당연히 본인 연봉에도 큰 반등이 없다.

대신 포기를 모르다가 마침내 열매를 따 먹는 순간이 한 번은 온다. 성공과 동시에 코트 분위기가 고양된다. 동료들에게 열정이 옮는다. 끈끈함은 십중팔구 승리로 이어진다. 이런 결실은 기록지에 ‘1 가로채기’ 정도로만 남는다. 그렇지만 그날 밤 관중은 전부 그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경기장을 떠난다.

8년 전 은퇴한 미국 프로농구(NBA) 팀 덩컨은 늘 ‘인바운드 패스’를 했다. 골을 허용한 뒤 코트가 끝나는 선 밖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귀찮은 일이다. 팀 내 최고 연봉을 받는 스타인데도 은퇴할 때까지 늘 이 패스를 건넸다. 감독에게 온갖 험한 말을 들어도 ‘알겠습니다’라고만 하는 선수였다. 문제아로 소문났던 스테픈 잭슨은 덩컨과 같은 팀이 되고는 못된 버릇들을 싹 고쳤다. 후에 그는 “덩컨도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나라고 별수 있어? 그냥 따라야지”라면서 푸념했다. 기록지에 남지 않았던 덩컨만의 리더십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에는 이재성이 있다. 이재성은 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발 빠르게 뛰어다닌다. 이재성이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만든 공간에 손흥민이 들어가 골을 넣는다. 이재성은 본인이 골을 넣은 것처럼 기뻐한다. 이재성은 A매치 84경기를 뛰는 동안 10골밖에 넣지 못했다. 그럼에도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한국에서 A매치 19경기에 모두 출전한 유일한 선수다. 눈에 띄진 않아도 그의 기여도를 아는 사람은 안다.

스포츠뿐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이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 빠르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이들의 성과는 표가 나지 않지만, 이들이 없으면 해당 조직은 대참사를 맞는다”고 했다.

평소 스타들에게 초점을 맞춘 기사를 더 많이 쓰곤 한다. 어쩔 수 없다. 독자들이 더 많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명에서 한 발짝 빗겨 난 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적게 관심을 두게 된다. 대신 한 번씩 이들에 대한 기사를 쓸 기회가 생길 때면 조금은 더 섬세해진다. 우리는 당신을 알고 있다고, 늘 응원하고 있다고. 이 말들이 전달됐으면 싶은 마음에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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