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김건희 특별감찰관 추진" vs 추경호 "원내 사안, 의총에서 결정"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동 직후 불거진 '빈손 면담' 논란이 '면담 갈등'을 넘어 계파 간 '만찬 갈등'으로, 다시 대통령실 특별감찰관 임명을 둘러싼 한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사이 주도권 갈등으로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대표는 23일 오전 국회에서 당 확대당직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이슈들이 모든 국민들 불만의 1순위라면 민주당을 떠나는 민심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재판 선고일까지) 김 여사 관련 국민들의 요구를 해소한 상태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를 위해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를 실질적으로 진행하겠다" 밝히며 "특별감찰관 추천에 (민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이 전제 조건이라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한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앞서 지난 21일 윤·한 면담 당시 한 대표의 특별감찰관 임명 요청을 두고 '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이 전제돼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한 윤 대통령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다. 면담 후 이틀이 지난 시점에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2차전'이 이어진 셈이다.
앞서 면담 직후부터 이날까지 한 대표 측과 윤 대통령 측은 만찬·회동 등을 통해 간접적인 신경전을 벌여왔다. 21일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의 면담 종료 직후 용산 참모진 만찬에 추 원내대표를 호출해 회동했고, 22일엔 한 대표가 친한계 의원들과 긴급 만찬자리를 가져 '세 과시' 대응에 나섰다는 풀이가 나왔다.
특히 전날 한 대표 측 만찬에는 원외 인사 1인을 포함 친한계 의원들 20명가량이 모여 윤 대통령 면담 당시의 상황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 참석자들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만났을 때의 그 여러가지 상황들을 심각하고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만찬에서 대통령과의 면담과 관련 "결국 본질은 내 3대 제안에 대해 모두 노(no) 하겠다는 것", "민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한계가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을 "심각하고 엄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언급은 향후 정국의 핵심 키워드로 꼽히는 '김건희 특검법'의 재표결 정족수 혹은 새로운 특검법 발의 가능성 등과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앞서 한 대표는 면담에서도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 특검법 처리 때 제가 30명을 설득했다'는 취지로 말하며 향후 특검법 재발의 시 여당 내 이탈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제안한 '김건희 3대 요구'를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 '위헌 법안에 찬성하는 여당 의원이 과연 있겠느냐'는 취지로 사실상 반박했다.
3대 요구와 관련, 한 대표는특히 이른바 '김건희 라인'으로 강훈 전 국정홍보 비서관, 김오진 전 관리비서관, 강기훈 국정 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전관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거론된 인사들의) 구체적인 잘못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친한계는 "김 여사 문제가 거의 블랙홀처럼 다른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김 여사 부분에 대한 정리가 매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2년 반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며 한 대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과도한 대외활동 △한남동 라인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 등 각종 '김건희 리스크'들에 대해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민심이 위반되게 하는 어떤 토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콘텐츠 대표의 각종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 "지금 누구하고 또 어떤 문자를 주고받으시면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튀어나올지 그걸 어찌 알 수가 있겠나", "그러니까 명시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어떤 매듭을 짓는 그런 발언이라든가 그런 선언 같은 게 필요하다"고도 했다. 사실상 김 전 대표 본인이 공천개입 등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해명 또는 사과하라는 셈이다.
김 최고위원은 전날 친한계 만찬이나 이날 확대당직자회의 개최 등이 '한 대표의 세력 과시'라는 세간의 평가엔 "사실과 다르다"면서도, 그에 앞선 윤 대통령과 추 원내대표의 회동에 대해서는 "굉장히 기이한 만찬"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윤·한 면담 당시 한 대표의 '특검법' 언급을 두고 대통령실 측이 '특검을 가지고 대통령을 협박한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은 데 대해서도 "그거는 (협박이 아니라) 진짜로 현실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추경호 "특별감찰관 임명은 원내 사안" … 친한계 응집에 친윤계도 거세게 반발
반면 추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내 친윤계 인사들은 이 같은 한 대표 측 움직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추 원내대표는 '특별감찰관 임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한 대표의 이날 발언에 "원내 관련 사안"이라고 선을 그으며 정면 충돌했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확대당직자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의 특별감찰관 추진 발언을 두고 "대표 말씀 잘 들으셨나"라고 운을 뗀 뒤 "이 부분은 국회 운영과 관련된 사안이고 또 원내 관련 사안"이라며 "우리 관련 위원회의 위원들 그리고 중진 등 많은 의원님들의 의견을 제가 우선 듣고 최종적으론 의총을 통해서 결정할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원내 최고 의사결정 사항은 의원총회다. 거기 의장은 원내대표"라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의원들의 여러 의견을 모으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 사안은 한 대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으로, 특별감찰관 임명이라는 의제에 대한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다고 강조한 셈이다.
한 대표는 이날 발언에서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 혐의 재판 1심 선고일인 11월 15일까지 김건희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추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의원님들 의견을 모으는 데 상당 시간 걸릴 수도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의원총회 시점이나 의견 수렴에 필요한 소요 시간도 특정하지 않았다.
다른 친윤계 인사들도 면담 이틀차인 이날까지 한 대표에 대한 거센 견제구를 쏟아내고 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주최 세미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날 친한계 만찬을 겨냥 "무슨 계파 보스인가. 하는 게 너무 아마추어 같고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이날 강연에서도 지난 윤·한 면담을 두고 "야당 대표도 아니고 여당 대표가 조용히 만나서 세상 이야기도 하고 직언도 해야지 언론에 다 떠들고 난 다음에 만나자는 게 이게 협박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대통령 선거 후보가 돼 출마해볼까 하는 것, 그것 하나밖에 안 보인다"는 등 한 대표를 겨냥했다.
친윤 강명구 의원도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지자들이 대통령 망하라고 한동훈 대표 세운 거 아니다", "지금 민주당이 바라는 일 해서도 안 되고 야당 의도에 휘말려서도 안 된다"는 등 한 대표를 비판했다.
강 의원은 특히 한 대표 요구사항이었던 김 전 대표 활동 중단, 김건희 라인 인적 쇄신 등에 대해 "(김 전 대표가) 국익을 버리고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여사님하고 좀 친하고 안부 전화 좀 한다고 해서 비선인가"라는 등 강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면담과 관련 '의전 홀대론' 등을 제기하며 대통령실을 비판하고 있는 친한계 측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문제가 왜 이렇게 이슈가 되고 형식을 중요시하고 이러는지 도무지 저는 일정과 메시지를 총괄하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언행이 조금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원조 친윤' 권성동 의원도 전날 TV조선 인터뷰에서 "한 대표나 그 측근에서 마치 특검법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려는 듯한 발언을 하고 압박을 가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친윤계의 이같은 동향은 윤 대통령 의중이 간접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회동 이튿날인 전날 부산 범어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며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 측의 쇄신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데 이어 나온 '마이 웨이' 선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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