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몰고 올 한반도 변화, 윤석열 정부는 얼마나 준비돼 있나

김영준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 10.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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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 대선 직전 특정 후보에 유리한 사건 발생한다?
● 2차 중동전쟁 발발하자 2차대전 영웅 아이젠하워 당선
● 트럼프와 네타냐후 사이 암묵적 공감대 이뤄질 가능성
● 한반도 미래 위해 지혜 모아 준비할 시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맞붙은 이번 미 대선에 ‘10월의 서프라이즈’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뉴시스]
미국 대통령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후보들의 면면만으로도 유사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여당 후보는 현직 대통령을 대체한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이고, 야당 후보는 세 번째 선거에 나서는 전직 대통령이다. 이처럼 독특한 구도의 선거에 더해 미국에서는 11월 선거일에 임박해 막바지 선거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사건을 일컫는 '10월의 서프라이즈'가 발생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미국 선거에서 흔히 사용되는 '10월의 서프라이즈'는 원래 정치용어가 아니었다. 20세기 초 미국 백화점 등에서 가을 의류 할인을 알리는 데 썼던 상업용어였다. 지금 통용되는 '10월의 서프라이즈'는 대통령선거일이 가까운 시점에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한 사건의 발생을 뜻한다. 이처럼 뜻이 바뀌게 된 계기는 1980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된 '주(駐)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다.

레이건 승리 이끈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

1981년 1월 20일 주이란 미국대사관에 붙잡혀 있던 미국인 인질들이 사태 발생 444일 만에 풀려났다. [뉴시스]
1980년 대통령선거는 현직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의 지미 카터와 도전자인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간의 대결이었다. 이때 최대 쟁점은 1979년 11월에 발생한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였다. 레이건 측에서는 카터 대통령이 선거 직전에 인질 사태를 해결해 대선 승리를 이끌 '10월의 서프라이즈'를 계획한다고 의심했다. 이런 의심을 제기한 까닭은 카터 행정부가 선거 전에 실제로 인질 사태를 해결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1980년 선거를 6개월여 앞두고 카터 행정부는 '매의 발톱'이라는 이름의 인질 구출 작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인질 구출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미군 헬리콥터가 수송기와 충돌하며 8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또 다수의 헬리콥터를 비롯해 많은 군사 장비를 적에게 넘겨주고 퇴각하는 참사를 빚었다. 이로 인해 카터 행정부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도는 추락했다. 이후 카터 행정부는 참사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려 다각적으로 노력했고, 레이건 측에서는 이를 '10월의 서프라이즈'라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인질 사태의 반전은 선거에서 승리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1981년 1월 20일에 발생했다. 레이건이 제40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지 채 수분이 지나지 않아 이란대사관에 붙잡혀 있던 미국인 인질들이 사태 발생 444일 만에 풀려난 것.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레이건 측에서 이란에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인질을 잡아두라는 요청을 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 같은 주장을 여전히 믿는 것은 인질 사태 당시 이란 외무장관과 대통령을 역임한 아볼하산 바니사드르가 같은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이란의 인질 석방 시점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이집트를 공격하는 제2차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Gettyimage]
‌물론 1980년 이전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사건들이 선거에 임박해 벌어진 사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례만 살펴보면 1956년 선거를 꼽을 수 있다. 당시는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 공화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와 민주당 아들라이 스티븐슨이 경합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일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이집트를 공격하는 제2차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이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를 응징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앞세워 일으킨 전쟁이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중재를 위해 즉각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이집트 사이에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민주당 스티븐슨 측에서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선거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심각한 전쟁 위기에서 미국을 이끌 지도자로 제2차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를 선택했다.

나쁜 '10월의 서프라이즈'

1968년 선거에서도 관건은 전쟁이었다. 이때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주요 쟁점은 당연히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였다. 당시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마무리하던 민주당 린든 존슨이었고, 여당에서는 허버트 험프리가 야당인 공화당 리처드 닉슨을 맞아 대결을 펼쳤다. 닉슨은 전쟁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자신만이 전쟁을 끝낼 적임자라는 점을 호소하는 전략으로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에 존슨 행정부는 10월 31일, "미국은 더는 공산화된 북베트남에 폭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닉슨의 선거 전략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닉슨은 이에 맞서 남베트남 정부에 특사를 보내 "미국 선거가 끝날 때까지 북베트남과 평화 협상을 중단해 달라"고 설득했다. 결국 베트남 평화 협상은 성과를 보지 못했고, 닉슨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베트남전쟁은 닉슨의 재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1972년 선거를 치르던 중에 국가안보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10월 2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평화가 손 안에 있다(peace is at hand)"며 그의 경력에 오점을 남긴 발표를 한다. 그의 발표는 베트남전쟁에 지치고 화난 많은 미국인에게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줬다. 하지만 종전은 요원했으며, 키신저의 주장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민심을 우롱한 나쁜 '10월의 서프라이즈'로 드러났다.

이번까지 세 번째 대통령선거에 나선 트럼프는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역대 어느 후보자보다 많은 '10월의 서프라이즈' 당사자가 됐다. 2016년 선거 과정에서 미국 주요 언론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2005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와 쉬는 시간에 나눈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를 입수해 공개했다. 그는 이 대화에서 비속어를 섞어가며 '자신은 어떤 여성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여성에게 어떻게 하더라도 아무 탈이 없다'는 투의 말을 했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연방 세금을 20년 가까이 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연이은 부정적 언론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2020년 선거에서도 트럼프는 일련의 '10월 서프라이즈'의 도전을 받았다. 엄밀하게는 10월이 아닌 9월 마지막 주에 발생했다. 첫 번째는 세금과 관련한 언론보도였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 첫해에 낸 세금이 미화 750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두 번째는 이민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트럼프는 이민을 제한하는 강력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여파로 불법 이민자들의 미성년 자녀들이 수용소에서 부모와 분리됐고, 이는 미국 내에서 여론의 큰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의 배우자 멜라니아 여사는 자신이 이 문제로 비판받는 것에 불만을 표출했는데, 그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가 유출됐다. 세 번째 서프라이즈는 멜라니아의 테이프 유출 몇 시간 뒤에 벌어졌다. 백악관이 공식적으로 트럼프와 멜라니아의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밝힌 것. 트럼프는 예상보다 일찍 백악관으로 복귀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결국 코로나19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능을 부각하며 재선 도전을 좌절시켰다.

한반도 미래를 결정짓는 주체

2024년 미국 대선 구도를 둘러싼 국내외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 혼미하다. 대외적으로는 두 개의 전쟁이 진행 중이며, 중국과의 갈등도 여전하다. 대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경제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고, 야당 후보는 여러 건의 재판을 치르고 있으며 정치 분열의 정도는 더 심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에 과연 '10월의 서프라이즈'가 있을 것인가. 있다면 어떤 서프라이즈가 예상될까.

이번 선거에서 '10월의 서프라이즈'는 과거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집권당인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에게 중요한 국제 사안이라고 하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꼽을 수 있다. 집권당 후보로서는 두 전쟁을 협상을 통해 평화롭게 종결짓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를 선거에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두 전쟁 모두 쉽사리 종전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도전자 트럼프에게는 기회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실정을 비판하며 러시아의 푸틴과 자신이 우호적 관계이기 때문에 자신만이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또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매우 좋았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 발휘 실패를 비난할 것이다. 트럼프가 자신의 임기 중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도 내심 트럼프의 재선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트럼프와 네타냐후 사이의 암묵적 공감대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1980년의 음모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워싱턴의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10월의 서프라이즈'를 감행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 관련한 '10월의 서프라이즈'가 발생할 가능성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직접 도발이다.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다양한 도발을 할지 모르는데 이는 새로울 것이 없다. 북한은 도발을 통해 이미 외교문제로 고전 중인 집권당 민주당에 또 하나의 골칫거리를 안겨 유리한 입장에서 미국과 대화를 재개할 지렛대로 활용하려 들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트럼프 후보의 북한 문제 활용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김정은과 매우 돈독한 관계이며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고, 김정은이 자신을 존중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신의 외교적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북한을 부각하는 선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마지막으로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 군비 통제 정책이 북핵 협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출범 초기부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러시아와 함께 3자 핵 군비 통제 체계를 구축하자고 요청해 왔다. 그동안은 중국이 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은 낮은 수준에서라도 바이든 행정부와 핵 통제 체계를 마련해 놓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핵문제를 특정하지 않더라도 그간 악화해 온 미·중관계를 복원하는 포괄적 합의를 선거 직전에 발표할 수도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큰 외교 업적일 뿐 아니라 북핵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사안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10월의 서프라이즈' 가능성을 두고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차기 미국 정부와 협력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려면 먼저 바이든 정부와 이룬 협력 관계에 대한 객관적 고찰이 필요하다. 바이든 정부는 한미일 협력 강화 노력을 했으나 중동과 러시아 문제에 휘말리며 한반도 문제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차기 정부도 출범 초기부터 중동과 러시아 문제를 외교안보 우선 과제로 설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차기 정부의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둘째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구축할 우리 정부의 청사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외교안보 가치 위에 세워진 청사진에는 우리 주도의 외교정책 방향을 담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협력국에 역할과 협력 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정부가 차기 미국 정부를 포함해 우리 외교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들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앞으로 한 달은 미국이 차기 지도자를 선택하는 시간이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미래가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과 외교 공간에서 결정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 국민과 우리 정부여야 한다.

김영준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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