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넣었길래 입에서 피가?

이 영상을 보라. 사극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사약 드링킹 씬이다. 죄인이 사약을 마시자마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데, 정말 사약을 마시면 이렇게 될까? 유튜브 댓글로 “사극에서 사약마시면 피토하며 죽던데 진짜 그런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이런 장면들을 보여드리며 정말 사약을 마시면 피를 토했을 지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최고야 한약자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이제 피를 토하려면은 진짜 극약이 들어가줘야 먹고 바로 피를 토할 수 있는데요. 만약에 그랬다면은 다른 기록들하고 좀 상치가 되죠. 어떤 사람은 사약을 받고 안 죽어가지고 두 사발 세 사발 몇십 사발을 연속으로 먹었는데도 안 죽었다 이런 기록도 있는 거 봐서는 거기에 사람이 먹고 바로 즉각 죽는 그런 극약은 안 들어갔을 걸로 추정하고요”

사약을 하사받고 어떻게 되었는지는 여러 정사와 야사에 나와있는데, 사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았다는 기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학자인 송시열은 무려 82세 때 숙종이 사약을 내렸는데 사약을 한 사발 다 마시고도 죽지 않아, 의금부의 금부도사가 죽어달라고 사정을 해서 입에 상처를 내고 세 사발이나 더 마시고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중기의 문신인 임형수는 사약을 먹어도 먹어도 죽질 않아 무려 16잔이나 마시고 그래도 죽질 않아 결국 목을 매달아 죽였다고 한다.

최고야 한약자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
"화면에서 좀 보기 좋게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사약 먹고 온돌방에 앉아가지고 3시간 동안 버텼다 이렇게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오죽하면 조선시대에는 사약을 먹고도 도통 죽질 않으니 약효가 잘 돌라고 구들장이 탈 정도로 온돌을 뜨끈하게 달궈 죄인을 수감했다는 기록도 있다. 게다가 현대의 혈액 주사처럼 즉효가 날 수도 없고 서서히 몸에 퍼져야 하기 때문에 사극에서처럼 사약을 먹자마자 온몸을 떨며 즉사하는 것도 과장된 연출이라는 거다.

류종훈 경희대 한약학과 교수
"(사극이) 과장된 거죠. 혈액으로까지 가야 되는 시간이 있을 거 아니에요. 먹자마자 바로는 안 됩니다. 그거는 이제 혈관에 바로 주사했을 때는 그렇게 가능하지만 마셔서는 안 됩니다"

이래도 죽지 않을 경우에는 사약을 가지고 간 금부도사가 그냥 활줄을 풀어 목을 졸라 교살형에 처했다고 한다. 사극에서처럼 입에서 피를 토하려면 식도에 심한 자극이 있거나, 위장관 출혈 혹은 식도정맥류 출혈 등이 있어야 한다는데, 당시 쓰인 한약재를 추측해보면 이런 증상을 가져오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럼 당시 사약에는 어떤 재료가 쓰였을까?

최고야 한약자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사실 사약이 이게 기록이 안 남아 있어서 레시피를 알 수는 없는데요. 그게 조선시대 내의원에서 제조를 했는데 아마 부자나 초오, 천남성 이런 종류의 약성이 강력한 약재들이 들어가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바로 죽었을 것이고 몸이 차가운 사람은 오래 버티다가 죽었을 것이고 그렇게 추정하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체질상 좀 몸이 차가운 소음인 같은 그런 체질이 아니었나 그러면은 오히려 혈액순환 잘 되고 좋죠"

사약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정확한 재료를 알 순 없으나 주로 쓰였을 것이라 추정되는 재료는 부자, 초오, 천남성 등 지금도 한의학에서 독성을 제거한 뒤 흔히 쓰는 한약재다. 이 한약재들의 주요 약효는 강심 작용인데, 심장을 두근거리게 해서 혈압을 높이고 열을 내며 혈행을 촉진 시킨다. 이게 과하면 심정지, 고혈압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으나, 원래 몸에 열이 없어 손발이 차고 혈압이 낮은 소음인 체질들이 먹으면 보약까진 아니겠지만 의도치않게 몸을 보호하는 효과를 냈을 수도 있다는 말.

이렇게 죽기도 힘든 사약을 마시고 죽는 사사 형이 그래도 다른 형벌에 비해 인간적이고 명예로운 형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사형 중 다른 형벌은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 목을 베는 참수형 등이었다.

부모가 주신 몸을 소중히 여겨 머리카락조차 자르지 않았던 당시 유교 사상을 생각해보면 신체가 훼손되는 다른 형벌보다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게 이해가는 대목. 그래서인지 보통 사약을 죽을 사(死)에 약 약(藥)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 임금이 내린 약이라는 뜻에서 하사할 사(賜)에 약 약(藥)자를 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