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승-전-이승만'... 尹 강조한 '외교 독립운동 연구' 시작부터 잡음 [문지방]
'이승만 재조명' 한국정치외교사학회 맡아
"외교 독립운동 재조명 필요" vs "연구 중단해야"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외교 현안 연구사업비마저 끌어다 '이승만 띄우기'에 급급한 외교부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윤석열 정부의 편향적 역사관이 확인됐다. 외교부는 이념적으로 편중된 학회와 그 소속 연구자가 맡긴 이번 독립연구를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입니다. 외교부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 외교독립운동 연구용역' 중간 보고를 받고 21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밝힌 방향에 맞춰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활약한 외교·교육·문화 분야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진행되는 내용을 살펴봤더니 결국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부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외교부는 "이 전 대통령과는 상관없이 외교 독립운동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반박합니다. 어디 한번 들여다볼까요.
'이승만 재조명' 학회, 연구용역 맡아…외교부 "연구 취지 심각하게 오해"
이번 연구는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소속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이끌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워싱턴회의 시기 이승만의 외교활동과 신문스크랩, 1921-1922', '제네바 국제연맹회의 시기 이승만의 외교활동' 등 이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부각하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이에 권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을 앞세워 외교 독립운동으로 포장하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외교부는 "근거 없는 의심"이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연구 취지와 진행상황을 심각하게 오해하는 접근"이라며 "중남미나 유럽권 등에서의 외교적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도 충실하게 다뤄졌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외교적 독립운동은 다자무대에서는 국제연맹, 양자무대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졌기 때문에 특정 인물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부연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외교로서의 독립운동'을 펼친 대표적 인물인 만큼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것이죠.
미국·중남미 지역 독립운동 강조한 연구…1·2차 세계대전 핵심 유럽국 대상 언급 적어
외교부의 설명이 틀린 건 아닙니다. 임시정부가 수립됐을 때 주요 외교대상은 중국과 미국이었습니다. 그리고 1930~1940년대에는 일제와 직접 전쟁을 벌이게 된 미국을 대상으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죠. 그 중심엔 구미위원장·주미위원장을 지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었고요.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도 있습니다. 사업 목적을 살펴봤습니다. 외교부는 "미주·구주·중남미 등 전 세계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외교 독립운동을 전개한 운동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외교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향후 추진이 필요한 연계 사업을 식별"하겠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외교로서 독립운동의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겠죠. 1차 세계대전 후 질서구축을 위해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서부터 1945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등에서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단체들의 전략과 활동을 집중 조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국제질서에서 '미국과 국제연맹'은 일부분이었을 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으니까요. 실제 임시정부는 영국과는 군사적인 면에서 관계를 맺었고, 프랑스와는 미국과 유사한 전문외교를 벌였습니다. 그간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연구 핵심대상이 편중돼 있습니다. 유럽 권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와 단체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중국에선 동제사와 신한청년당이, 미국에선 대한인국민회가 상해 임시정부 출범 전부터 외교 독립운동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1919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질서를 논하기 위해 마련된 파리 강화회의에서 신한청년당은 김규식,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윤해와 고창일, 대한인국민회에서는 이승만·정한경·민찬호를 대표로 내세웠죠. 당시 파견 시도는 외교독립론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대상에 관련 단체들이 모두 포함됐을까요. 미주에서 파견된 이승만, 정한경, 민찬호는 모두 언급이 돼 있습니다. 신한청년당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후 공식 한국대표단이 된 김규식 외무부장(부주석)과 조소앙 선생은 언급돼 있지만, 그들과 함께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대유럽 외교에 힘쓴 황기환 임시정부 주파리위원이나 이관용 주파리위원부위원장은 명단에 없습니다. 극동지방의 윤해와 고창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파리평화회의도, 유럽에서의 유세도 필요 없이 미국에 보통 민심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임시정부에 주장해온 이 전 대통령의 시선으로 외교 독립운동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외교부는 그동안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 중남미·쿠바지역 독립운동가와 단체도 연구대상에 포함시킨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분명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중남미·쿠바지역의 독립운동은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등 재미 한인 독립운동 단체와 긴밀히 연계돼 있습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소식지 '독립신문'이 외교독립론 특집으로 '대중국 외교', '대미 외교', '대유럽 외교' 등 세 가지 큰 틀에서 접근한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전문가들 "외교독립운동 전략 및 거시 체계 속에서 이승만 재평가 이뤄져야"
외교로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중요합니다.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향후 대한민국 외교전략을 짤 때 참고해야 할 과거의 소중한 교훈입니다. 하지만 특정 지역이나 인물의 역할만 강조한 연구결과가 나온다면, 권 의원의 말대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사업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 학계에선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최초로 결의한 '카이로 선언'의 성과를 두고 어느 나라와 어떤 활동이 큰 역할을 했는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화민국중요사료초편: 대일항전시기'와 '루스벨트-장제스 회담록'을 보면 중국 장개석을 접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외무부장 조소앙, 선전부장 김규식 등 대표단의 외교활동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아들 엘리엇의 회고록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청원 외교'가 얼마나 긴요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당시 임시정부를 대표한 이 전 대통령의 '얄타 밀약설'을 두고 어떤 학자들은 "외교분야 최대 성과"라고 평가하지만, '우남 이승만 연구'를 쓴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는 "임시정부를 곤란에 빠뜨렸다"고 비판합니다.연구가 부족한 만큼, 사료를 기반으로 한 객관적 평가보다 역사적 해석이 빈 공간을 채우는 상황입니다.
'한국독립운동과 국제회의' 특별 전시 등 외교영역에서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공을 들여온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은 "얄타·포츠담 회담과 카이로 선언의 연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와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공백들을 채우는 연구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조언했습니다.
지식커뮤니티 '시에라소사이어티'에서 이 전 대통령의 외교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일일 모임을 기획한 별샛별 대표는 "전체적인 외교 독립운동의 맥락 속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심층적인 평가와 토론은 필요하다"면서도 "특정 인물과 그 주변에만 집중해 연구가 이뤄지면 건설적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외교부가 처음으로 도전한 '해외 외교독립운동 연구' 결과는 오는 11월에 나옵니다. 지난달 내부 중간 점검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제 막바지로 접어듭니다. 해외 외교 독립운동의 가치를 되새기고 성찰하기 위해 추진된 이 사업이 본래 취지에 맞는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깔끔한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승만'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을 또다시 자초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외교부가 과연 무엇을 내놓을지 지켜보겠습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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