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생이 수학 과외하다 떠올린 뜻밖의 창업 아이디어

수능 수학 대비 문제은행 서비스 ‘모킹버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모킹버드의 백승우 대표. /더비비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대비하는 고3 수능생에게 모의고사 풀이는 필수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새롭고 참신한 ‘응용문제’ 풀이가 중요하다.

문제는 응용문제를 접하는 루트다. 경제 상황에 따라 접근성이 크게 갈린다. 모킹버드의 백승우(24) 대표는 비싼 학원비와 교재비에 대항하기 위해 수학 문제를 직접 개발해 온라인 서비스로 배포했다. 백 대표를 만나 수학 문제 수집가가 된 과정에 대해 들었다.

◇카이스트·서울대·연대 동시 합격

모킹버드의 서비스 화면. 구독 후 수능 문제지와 똑같이 생긴 형태로 수학 문항을 내려 받아 풀어볼 수 있다. /모킹버드

모킹버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구독형 문제은행 웹서비스다. 이용자가 구독료를 내면 수능 수학 문제집 저자, 명문대 출신의 문제 개발자가 직접 개발한 모의고사 형태의 수학 문항과 10개년 치의 교육청· 평가원 모의고사·수능 문제를 풀어볼 수 있다. 모킹버드 웹 사이트에서 문제 꾸러미를 PDF 파일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다.

모든 문항에 출제 단원, 난이도, 유형, 정답률 등이 담긴 바코드를 매겼다. 구독자는 연습이 필요한 범위나 유형, 난이도에 맞춰 문제를 추출할 수 있다. 구독료는 학생 기준 월 1만원대, 강사 기준 월 10만원대로 1회당 3~5만원씩하는 사설 업체의 모의고사보다 훨씬 저렴하다.

(왼쪽부터) 백 대표가 고등학생 시절 공부에 활용했던 교과서와 공부 모습. /백승우 대표 제공

백승우 대표는 1999년생이다.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에 재학 중이다. “학창 시절 내내 소위 ‘원래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수시 전형으로 카이스트, 수능 성적을 기반으로 하는 정시 전형으로는 서울대와 연세대 합격장을 따냈죠.”

대학에 입학한 뒤 용돈벌이 삼아 과외를 했다. “가장 자신 있던 과목인 수학을 주로 가르쳤어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비대면 과외를 주로 했는데요. 이동 시간을 아낀 덕에 수업 자료를 준비할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단원별 개념을 배운 후 이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출 문제를 푸는 식으로 수업 자료를 만들었어요.”

과외보다 문제집을 집필하는 일이 더 흥미로웠다. 직접 만든 수업 자료를 입시 커뮤니티에 올리자 큰 인기를 끌었다. 급기야 출판 제의까지 받았다. “5년째 오르비북스라는 출판사를 통해 ‘기출의 파급효과’라는 수능 기출 분석서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수학 과목으로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탄 덕에 국어·영어·물리·화학 등 총 8과목으로 출판 범위를 넓혔죠. 다른 과목은 각 과목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문제집 집필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문제 개발자, 인강 강사, 프리랜서 문제집 편집자 등 이해관계자만 30명이 넘습니다. 2022년 기준 문제집 판매 부수는 2만부 이상입니다. 매출은 4억원을 넘겼죠.”

◇모든 문항에 바코드 생성해 학생 맞춤형 문제 제공

문제집을 집필하다 사업 아이템을 바꾸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는 백승우 대표. /더비비드

얼떨결에 출판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출판업만 영위하기에는 확장성에 한계가 보였다. “1인 기업이라면 몰라도, 문제집 출간만으로는 벌어들이는 수익이 크지 않습니다. 수능 기출 문제를 활용해 문제집을 집필하는 거라 인세가 크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 업계에선 문제집 출판을 전업으로 하는 이가 드뭅니다. 강사 활동을 하며 부가 수익 창출을 위해 책을 집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문제 개발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은 아예 ‘문제 개발 연구소’를 차려 직접 만든 문항을 대형 학원 콘텐츠 팀에 팔기도 합니다. 문항당 저작권료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이 넘어가기도 해요. 제가 운영하던 팀은 후자에 가까웠고요.”

집필한 책의 인지도를 이용해 문항 개발 기업을 차리면 고수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저 역시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수험생이었습니다. 성적 향상이 절실한데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그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2022년 10월부터 사업 아이템을 확장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대학에서 배운 프로그램 개발 지식을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모의고사 형태로 추출되는 모킹버드의 개발 문항. 해설을 함께 제공한다. /더비비드

‘고3을 위한 온라인 수학 문제은행’을 떠올렸다. “ 경쟁 서비스가 많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시장 조사를 해보니 중등 혹은 내신 대비용 문제은행 서비스가 다수였습니다. ‘수능 대비’용 문제 은행 서비스는 없더군요. 수능 문제집의 경우 수요가 많아 대량 인쇄가 가능하잖아요. 굳이 디지털 형태로 데이터를 전환하려는 시도가 많지 않았던 거죠. 특히 사설 모의고사와 같은 희소성 있는 문항은 유출을 우려해 인쇄해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양질의 문제를 한데 모은 서비스가 없다 보니 필요한 문제를 찾아내는 고통은 오롯이 수험생의 몫이었다. “시중의 사설 모의고사를 모두 구매하는 덴 큰돈이 듭니다.  인쇄된 모의고사를 사도 쉬운 건 풀지 않을 테니 버리는 문제가 절반 이상입니다. 낭비되는 종이도 상당하죠. 불어나는 비용과 종이 낭비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온라인으로 문제를 유통하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모킹버드 창업부터 서비스 출시까지 반년도 안걸렸다. 빠른 실행력으로 사업을 추진한 과정을 설명하는 백 대표. /더비비드

‘모킹버드’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책을 집필하며 개발한 수능 수학 실전 모의고사 30회분과 10개년 치의 평가원·교육청 기출 문제를 보기 쉽게 정리해 올렸다. “1만2000원의 구독료만 지불하면 월 4회의 수능 대비 모의고사를 풀어볼 수 있어요. 모킹버드에서만 볼 수 있는 개발 문항이죠. 기출 문항의 경우 유형·난이도별로 무제한 추출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에 올린 모든 문항에 일일이 코드를 매겼다. 문항별 정보를 압축한 일종의 바코드다.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특정 데이터를 알아보기 쉽게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을 ‘데이터 레이블링’이라고 하는데요. 문항마다 이 데이터 레이블링을 했습니다. 문항의 출제 범위, 유형, 제작 연도, 제작자, 난이도, 오답률 등 모든 정보를 숫자로 표현해 뒀죠.”

모킹버드의 N제 만들기 서비스. 모든 문항에 코드를 매겨 개인별 학업성취도에 맞게 추출할 수 있다. /더비비드

번거로운 과정임에도 데이터 레이블링을 한 속내는 따로 있다. 신규 서비스의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은행 서비스를 시작으로 문항별 영상 해설, 구독자별 오답 노트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코드만 검색해 바로 영상 해설을 보는 식으로요. 서비스에 살을 붙이려면 문항의 코드화는 필수입니다.”

고3 시절 문제를 풀며 느낀 고충에서 착안한 기능도 있다. “이용자 맞춤 문항 추천 알고리즘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수험생활 막바지에는 문제를 무조건 많이 푸는 게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내 취약점을 집중 공략하는게 더 유효하죠. 모킹버드는 구독자가 서비스 내에 문항별 정·오답 정보를 계속 입력하는 구조니, 이 데이터를 이용해 구독자가 자주 틀리는 단원, 문항, 난이도에 따른 맞춤형 모의고사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구독자 데이터를 취합해 연내 출시할 예정입니다.”

◇서비스 과목 늘려 연내 1만명 유료 회원 확보가 목표

백 대표가 지난 6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경진대회에서 사업 모델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디캠프

지난 5월 법인을 설립하고 6월 말에 모킹버드 문제은행 서비스를  출시했다. 빠른 실행력을 인정받아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2023년 6월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의 본선 진출 기업으로 선정됐다.

서비스 구독 후 ‘N제 만들기’ 기능을 사용하면 실제 수능 문제지와 같은 형태로 문제가 추출된다. 문항에 대한 답은 모킹버드 웹사이트에 기입하면 된다. 실제 OMR 답안지처럼 구성된 답안지에 답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채점이 되고, 각 문항에 대한 해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용료로 수익을 낸다. 출시 1개월만에 서비스 가입자 1000명을 돌파했다. “구독자의 구독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콘텐츠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책 집필 시절부터 함께한 모킹버드 자체 문항 개발팀, 외주 문항 개발팀까지 함께 변별력 있는 신규 문항을 개발하고 있어요.”

백 대표는 다양한 과목을 추가해 유료 회원을 늘릴 것이라고 했다. /더비비드

연내 유료 회원 1만명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2024년 3월을 목표로 과학탐구 과목도 추가할 예정입니다. 서비스 과목을 확대해 사용자를 모을 겁니다. 향후에는 GPT 등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제를 개발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온라인 문제은행 서비스로 사교육비를 절감하는 것이 목표다. “어떤 형태로든 객관식 형태의 시험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시험으로 등수를 매기는 한, 사교육도 없어지지 않겠죠. 양질의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배포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준 높은 학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

자신처럼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수험생을 위해 휴학계를 냈다. ‘“창업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온전히 사업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사람만 도전장을 내밀길 바랍니다. 진부하지만 사업은 속도전이 맞더군요. 특히 남들이 도전하지 않은 영역에 먼저 뛰어들 경우 사업 진행 속도가 더 빨라야 합니다. 경쟁 서비스가 생기기 전에 격차를 벌려 둬야 하니까요. 저는 멀티태스킹이 잘 안되는 사람인데요. 창업하고 보니 한 길만 파는 제 성향이 좋아요. 사업 하나만 바라보고 달릴 수 있으니까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