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28년 후>, 네가 필멸자임을 잊지 말라.

79ed8374bcf16cf6239bf094449c7018f9c8a11277b0fe2736322e5066c381cbe5608ee1a4b88188a1e2a1a0bed1164774759bcd23
2002년에 등장한 대니 보일의 <28일 후>는 느릿느릿한 로메로 스타일의 좀비 장르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느리게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질주하는 분노의 화신이 된 좀비라는 장르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DV 캠코더의 저열한 디지털 화질로 담아낸 21세기 영국의 우울한 풍경으로 사회적 분노와 고립감, 그리고 인간성 붕괴라는 현실의 테마를 장르적 외피 속에 녹여내면서 좀비 장르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현대적으로 다시 한번 혁신한 것이다.

하지만 <28일 후>의 혁신은 그 정신을 장르적으로 계승하는 다른 좀비 영화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소비되었고, 시간이 꽤 지난 이제는 그 누구도 그것을 더 이상 혁신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28일 후>가 나온지 무려 22년이 지나서 만들게 된 후속작, <28년 후>를 다시 연출하게 된 대니 보일과 각본을 집필한 알렉스 가랜드의 가장 큰 창작적 고민이 무엇이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보일과 가랜드가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장르 혁신을 포기하고, 요즘 세상에 어울리는 새로운 테마로 전작을 계승하면서도 확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28년 후>에는 <28일 후>가 당시 시각적으로, 그리고 장르적으로 주었던 신선한 충격은 없는 장르적으로 아주 익숙한 영화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현 영국의 정치적인 상황과 코로나를 거치면서 다시 한번 뒤바뀐 인류 사회를 대니 보일의 강렬한 연출적 에너지로 탐색하는 후속작이다.
7debf500c6f31ef4239bf0e1439c706fd39f76cdde61dcd87c5f2832ee2b41842f7c62f309047203ac53a324d7e9603e53f353e286
분노 바이러스 사태로부터 28년 후, 영국은 세계에서 완전히 고립된 섬나라가 되었고, 생존자들은 각자의 집단을 만들어서 자급자족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감염자들 역시 지속적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무리를 만들거나 번식을 하면서 생존해왔고, 그 결과 28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뿌리 뽑히기는 커녕 더 강력해져 영국 본토의 생존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어느 외딴 섬의 커뮤니티에 속한 주인공 스파이크가 병든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감염자들이 득실거리는 본토로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28년 후>는 그려내고 있다. 장르적인 혁신을 불러 일으켰던 이 시리즈는 이제 <나는 전설이다>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다른 후배 좀비 장르 미디어에서 다양한 설정을 빌려온 흔적이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28년 후>가 평범하다거나 진부한 인상을 주는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오랜 영화 규칙에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악동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급진적인 디지털 스타일리스트 대니 보일이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28년 후>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시 보일이 <트레인스포팅>이나 <127시간> 같은 영화에서 보여줬던 시청각 언어에 대한 실험이다. 그는 저화질 캠코더로 찍었던 전작의 정신을 계승하여 아이폰을 이 영화의 메인 카메라로 선택했고, 비정형적인 편집술과 180도 불릿 타임을 통해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군화’ 아래 이루어지는 대전기 영상과 로렌스 올리비에의 <헨리 5세> 푸티지의 섬뜩한 몽타주는 영화 전반에 민담적 분위기와 역사적 회상의 중첩을 불러오고, 마치 이 이야기가 먼 훗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후대의 전설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는 보일 특유의 실험성인 동시에 영국 역사가 지닌 식민주의, 고립주의, 폭력성에 대한 은근한 반추이며, 단순히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를 구성하는 핵심 장치다. 공동체의 고립, 기술의 상실, 의료 지식의 붕괴는 <28년 후>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형이 아니라 철학과 영성의 부재가 초래한 인간성의 퇴행을 상징한다.
75ea8575c6826df723ecf7e3339c70690bb1e5bf856ab875e708799e77f223739f324e8b2fd916833b3c59a1b944c8cc4c7a1e8f3c
전작의 캠코더에 비하면 현대 첨단 기술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는 아이폰의 화질은 훨씬 더 깨끗하긴 하지만, 이것으로 구현해낸 <28년 후>의 로-파이(Lo-Fi) 영상은 기술의 진화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시대의 불안정성과 즉흥성을 다시 복원한다. 아이폰으로 찍힌 장면은 스마트폰임을 생각하면 아주 놀라운 수준의 해상도와 색상 대비를 확보했으면서도, 마치 실수로 찍힌 듯한 구도, 과노출된 하이라이트, 잦은 흔들림 등을 의도적으로 포함해 거칠고 임시적인 현실의 감각을 유지한다. 이렇게 거칠게 만들어진 고해상도 영상은 오늘날의 전문적이고 깨끗한 영상과 대비되며, 오히려 감정적으로 더욱 현실적이고 불편한 시청 경험을 만든다. 고해상도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28년 후>의 비주얼은 작품 내에서 영국이 처한 문명 붕괴 상태와 직접 맞닿는다. 28년의 세월 동안 기술은 분명히 진보했지만, 그 기술이 기록하는 세계는 안정된 이미지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는 혼돈이다. 아이폰이라는 우리 모두가 가진 일상적 기기로 죽음과 광기를 포착함으로써 이 영화는 그것을 논픽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바로 옆에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게다가 아이폰 카메라 특성상 인물에 과도하게 근접한 클로즈업, 렌즈의 얕은 심도로 인한 배경 흐림, 급격한 노출 변화 등이 자주 발생하는데, 아이폰의 이러한 불안정한 시각적 특성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바라보는 시선의 불안정함을 드러내는 윤리적 장치로 기능하며 영화의 주제와 직접 맞물린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인간과 괴물,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28년 후>의 이야기에서 카메라 역시 선명한 판단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위치에 자신을 놓는다. 여기서 카메라는 객관적 진실을 담는 기계가 아니라 공포와 연민 사이에서 동요하는 감정의 창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일의 아이폰 활용은 단순한 예산적 결정이라던가 애플의 카메라 기술력을 과시하는 광고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과 타자성에 대한 윤리적 시선을 구현하는 장치이며, 영화 매체가 세계를 기록하는 방식에 대한 메타적 성찰이기도 하다.
0f988575b3846e8223edf0ec419c701bd86d214c0276f539ae455d73f0f2dc0e1f8707295ee4d49090bfdbbe43ff3d9b28d6f28dfe
<28년 후>부터 등장하는 새로운 변종 ‘알파’와 ‘슬로우로우’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했으면서도, 동시에 인간성과 감정의 흔적을 품고 있는 개체이다. 감염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제는 단순한 괴물이 아닌 질병에 걸린 인간, 혹은 윤리적 타자로 전환된 것이다. 알렉스 가랜드의 각본은 이 지점을 섬세하게 확장함으로써 처음에는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좀비의 감정화를 주인공 스파이크의 순수한 시선을 통한 정서적 공감의 토대로 탈바꿈시킨다. 때문에 이 영화 속에서 스파이크의 여정은 단순한 생존 게임이 아니라 죽음을 처음 마주하는 아이의 통과의례처럼 기능한다. 고립된 공동체 안에서 죽음은 ‘외부의 일’로 치부되어 왔지만 스파이크는 그 허위를 깨닫는다. 죽음을 망각한 사회는 생의 의미도 잃어버린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윤리적 공백을 채우려 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파트에서 등장하는 의사 켈슨은 이 철학적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는 존재이다. 캘슨은 감염자들의 시체를 모아 불태우며 살아간다. 이는 마치 정화의 제스처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집착적이며 거의 의례에 가깝다. 그는 과학자라기보다 사제처럼 행동한다. 불 속에서 시체를 태우는 그의 행위는 죽음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 남겨진 이들의 죄의식을 대신 씻어내려는 어떤 종교적 제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의 기억이 부재한 사회가 가진 무의식적 공포를 시각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공간은 병원이 아니라 ‘뼈의 사원’으로 불리며, 이는 곧 죽은 자들의 기억이 잠든 장소, 나아가 인간의 문명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장소로 기능한다. 이곳에서 감염자들은 단순한 괴물이 아닌 공감과 윤리의 대상으로 다시 호출된다. 캘슨은 그들을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그가 감염자에 대해 품는 애매한 연민, 그리고 그 연민에 깃든 두려움은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간성의 정의가 달라진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장치이며, 한때 인류가 만들어낸 질병 앞에서 무기력하게 선 캘슨은 과학과 종교, 이성의 경계를 벗어난 윤리적 모호성의 화신이다.

그러므로 스파이크가 그들과 맞서 싸우며 어머니를 켈슨에게 데리고 가는 여정은 죽음을 타자로서 배제했던 자아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주체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캘슨은 약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치료사가 아니라 스파이크가 어머니의 죽음을 수용하도록 돕는 사제이다. 스파이크는 병든 어머니를 필사적으로 구원하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한 수용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적인 존재론적 전환점이다. 삶은 죽음과 마주할 때 비로소 자신의 형상을 얻는다. 스파이크는 영화의 말미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죽음을 밀어내는 자아에서 죽음을 품고 사는 존재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 성장은 단순히 스파이크 개인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다시 배워야 할 존재론적 감각이다.
759ef502c3f36bf523ebf3e2479c701870721ab56e894d927d765a47768dab51534531ecdf9d467d9af29c64fb2966bb78ecbd3c52
따라서 <28년 후>는 전작과 같은 장르적 혁신은 없지만, 좀비 영화를 철학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또 하나의 장르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시청각적인 화려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하나의 윤리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남긴다. 보일과 가랜드는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기보다 우리 삶의 구조를 회복하는 열쇠로 재구성했으며, 감정과 기술, 영상 언어와 정치적 은유를 모두 총동원해 하나의 영화적 성찰을 이끌어냈다.

죽음을 망각한 공동체는 결국 삶의 가치도 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타자화하고 고통을 외부화하는 한, 기술적으로 아무리 고도화된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성은 여전히 취약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28년 후>는 비명을 지르는 감염자들이 가득한 황폐한 영국을 보여주지만 그 풍경은 어쩌면 코로나를 비롯한 숱한 비극 이후 지금의 우리 세계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망각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 침묵 속에 희생을 감춘 공동체, 그리고 죽음을 타자화한 채 작은 섬에 스스로를 걸어 잠그고는 살아 있다고 믿는 우리들. 이 ‘우리’는 정말 살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