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봄 여행 중 망아지를 발견한다면?

봄이 성큼 다가왔다. 제주도의 들판은 어느덧 파릇 파릇해지고 있다. 제주도 여행을 하다 보면 푸른 들판에 한가로이 서 있는 말을 여기 저기서 보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봄과 여름의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망아지와 엄마가 바짝 붙어서 어미젖을 열심히 먹는 장면이다. 말은 사람과 달리 봄~여름 시즌에만 암말이 임신이 가능한 몸 상태가 된다. 임신기간은 사람보다 약간 긴 340일이며, 단 한마리의 새끼만 품는다. 그러다보니 이듬해 봄부터 제주도에는 모든 망아지가 동시 다발적으로 태어나게 된다. 전국 팔도 중 제주도는 단연 가장 많은 망아지가 태어나는 말 생산의 메카 지역이다.

그래서 제주도는 특히 봄 여행 중에 어미말과 붙어있는 새끼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주 봄 여행중에 이들을 만난다면 관심있게 여겨줬으면 하는 마음에, 망아지와 부모말에 관한 네 가지 알쏭달쏭 OX 퀴즈를 엄선하여 적어보았다.

1. 모든 말은 아빠 없이 자란다?
저기요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정답: O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젖을 뗄 때까지 어미와 새끼가 함께 한다. 말 역시 마찬가지다. 수말은 짝짓기 직후 바로 암말과 분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게 되는 말 가족은 어미말과 망아지의 한 세트이며, 망아지는 아비를 전혀 모르는 채로 자란다. 운동용 말에게 아비의 혈통은 말의 가치를 결정하는 몹시 중요한 요소이지만, 사실상 모든 뒷바라지는 어미말이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말 세계에서 수말과 암말의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 봄이 되면 유명한 씨수말(자손을 번식시킬 목적으로 길러지는 혈통이 좋은 수말)은 본업에 충실하느라 번식철 내내 분주하다. 하지만 가을부터는 번식 시즌이 끝나기 떄문에 이듬해 봄까지 백수가 된다. 씨수말은 넓은 초지를 혼자 차지하며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어먹으며, 이듬해 봄까지 극진한 보호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암말은 쉴 틈이 없다. 봄-여름의 번식 시즌에 암말이 임신을 하면 340일 (약 11개월) 동안 뱃속에 태아를 품는다. 그야말로 남산만한 배가 될 때까지 태아를 품다가, 이듬해 봄에 대부분 출산을 한다. 하지만, 또 그 때가 암말이 임신이 가능한 번식 시즌이기 때문에 출산 후 바로 또 임신을 하게 한다. 그야말로 연년생 대잔치다. 새로운 임신도 해야 하고, 갓 태어난 망아지를 젖 주고 보살피느라 암말은 매 순간 쉴 틈이 없다.

제주 여행을 하다 망아지를 보게 되면 그 귀여움에 시선이 바로 집중된다. 하지만, 그 바로 옆에서 매년 몸고생 하는 어미말에게 고생 많다고 한번 눈길을 준다면, 어쩌면 어미말이 속으로 미소 지을지도 모르겠다.

2. 태아의 사이즈는 아빠를 닮는다?

정답: X

태아의 성장은 어미말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말은 뱃속의 태아부터 성장을 하는데 뱃속에서 태아와 연결된 요막 융모막과 태반 표면의 미세자엽의 밀도 및 복잡성이 크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출처: Equine behavioral medicine, Bonnie beaver). 물론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조합이 되어 털의 색깔, 다리의 생김새, 발굽의 모양 등이 결정이 되겠지만, 대체로는 어미말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또한 초산의 망아지는 다음의 망아지보다 다소 작을 수 있으며, 작은 암말보다는 큰 암말이 망아지의 크기와 체중도 더 크다고 보고되어 있다.

망아지에게 너 누구 닮아 이리 크니? 라고 묻는 다면 '엄마요'라는 답이 우세하겠다. 만약 혈통 좋은 잘생긴 씨수말에 몸 좋은 씨암말이 부모라면, 망아지는 그야말로 '로열패밀리'로서 뱃속부터 농가의 큰 자랑과 기대 속에 자랄 것이다.

난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3. 말은 공동육아를 한다?

정답: X

사람의 경우 한 집에 여러 가족이 같이 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엄마는 엄마끼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신나게 노는, 이를테면 엄마 좋고 아이 좋은 공동 육아의 현장이 될 텐데 말은 어떨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 이놈의 망아지들은 분리불안처럼 제 엄마 반경에서만 맴돈다. 그래서 동물병원에 둘 중 하나가 아파서 내원하는 경우에도, 항상 세트로 붙어서 와야 한다. 그래서 넓은 초지에 여러 쌍을 풀어놓아도, 쌍쌍이 다닐 뿐이다. 어미말은 자기 자식이 아닌 다른 망아지에게도 젖을 내주는 관용을 허용하지도 않고, 망아지 또한 다른 엄마를 따라가지 않는다.

따라서, 출산 직후 불의의 사고로 어미를 잃게 된 망아지의 경우에는, 젖을 대신 줄 수 있는 대리모를 짝지어 주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고아망아지에게 분유병에 분유룰 타서 먹이는 경우, 밤낮으로 먹이는 양과 횟수가 많아서 사람의 노력이 상당히 많이 간다. 공동육아를 하지 못하는 어미말과 망아지는 둘다 건강해야만 모두가 행복하다.

같은 공간이지만 따로 따로 놀아요
4. 망아지는 다 클 때까지 어미랑 계속 붙어 지낸다?

정답: X

망아지는 어미젖을 먹고 크다가 차츰 풀과 사료를 같이 먹는다. 젖은 생후 약 6~9개월에 젖을 떼며, 그 이후에는 풀과 사료만 먹는 이유기로 간다.

이유기가 되면 그보통 어미와 분리를 시키며 망아지끼리만 한 곳에서 함께 키우기 시작한다. 이젠 어미 품이 아닌 어린이집이다. 말은 만 18개월쯤 돼야 다 큰 성장한 말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어미와 막 분리를 시작한 꼬맹이 이유마이 서너 마리씩 끼리 끼리 모여서, 오밀조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내 눈에는 아직도 그 눈매나 발굽 그 모든 것이 영락없는 애기 모습인데, 왠지 일찍부터 단체생활 하는 것 같은 이 녀석들이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아직 엄마랑 떨어지기 싫은데, 벌써 여름이 오는구나.

봄-여름까지의 망아지 출산 시즌이 한바탕 끝나면 초록 초록한 7-8월 한여름이 된다. 여름의 푸르른 들판에 있는 어미말과 망아지가 있는 장면은 편안하고 아름답다. 봄의 한가운데 속에서 치열한 임신과 출산, 신생 망아지 수유의 난리통 속에서 살아남은 승자만의 평화라고나 할까.

건강히 잘 태어나 무사히 성장 중인 3개월령 전후의 한여름 속 망아지들은, 말의 생에서 가장 초롱초롱하고 생생하고 예쁜 하루하루를 거치는 시기로 보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망아지. 어미말에게 너희들은 그저 사랑일 것이다. 머지않아 젖을 떼고 이유하며 홀로 독립하기 전까지의 짧은 몇 개월 동안 만이라도 어미 곁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젖 잘 먹고 쑥쑥 자라나길 바라본다.

* 글쓴이 - 김아람
제주도에서 말을 치료하며 느끼는 수의사의 속마음과 재미있는 말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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