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를 위한 기본 체크포인트
정승권 건축가의 모듈러 시리즈 ③
지난 호에서는 주택 토지 구매 전에 체크해야 하는 부분을 살펴봤다. 단순히 저렴한 토지가 당장에는 유리해 보여도 집을 지을 수 있는 토지로 만들기 위한 추가 제반 비용이 들 수 있어서 법적 검토, 건축 인프라에 대한 부분을 필수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토지가 확보된 이후 이제 공간을 계획함에 앞서 과연 어떠한 집을 지을 것인지를 고민할 단계에 이른다. 건축을 준비하는 개개인의 생활방식 또는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공간 계획도 다양한 선택지와 고려 사항이 존재한다. 충분한 고민과 올바른 선택이 이뤄진다면 자신만의 공간을 만끽하는 만족도 높은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긴 하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사진 정승권(플레이서스 대표)
사용자 파악하기
가족사항을 묻는 설문조사가 아니다. 집을 지을 때 사용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한 체크포인트다. 공간을 계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건축 후 공간을 사용하게 될 사용자를 파악해 보는 것이다. 공간을 주로 사용할 사람들이 몇이고, 어떤 특성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인지에 따라 집의 건축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건축 계획의 가장 첫 단계는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다. 모여서 식사를 하는 주방, 담소를 나누는 거실, 개인별 쉼을 위한 침실 등 소요 공간과 필요 면적들이 건축의 전체 규모를 결정하는 기초 자료이다.
개인의 특성이 반영된 내 집 짓기는 추후의 지속 활용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어린 자녀를 위해 4인 가족을 위한 주택으로 계획했지만 자녀가 자라서 출가를 하게 되면 잉여 공간이 생겨난다. 반대로 자녀를 출가시킨 부부가 본인들만의 맞춤 공간으로 계획한 주택은 훗날 자녀들의 방문 시 머물 공간이 부족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패턴은 고정될 수 없고 여러 요인에 따라 변수가 있고 변화한다. 그에 비해 건축은 ‘고정’적인 요소이기에 삶의 모습에 대응할 융통성을 갖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모듈러 건축은 이와 같은 문제에 훌륭한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건물의 단위 공간(거실, 주방, 방, 화장실 등)을 단위 모듈로 갖게 되기 때문에 현장 건축보다 비교적 쉽게 규모의 축소와 확장이 가능하다. 공간 사용자의 특성 및 규모가 달라짐에 따라 공간 규모도 융통성 있게 수정할 수 있다.
공간 용도 파악하기
건축하는 공간의 사용 용도를 분명히 정의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건축 용도에 따라 인허가 등 행정적인 부분과 건축계획 사항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내진구조설계에 대한 부분, 방화설비, 창호 및 단열 등의 스펙 등 용도별 계획 기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계획 초기 단계에 고려돼야 할 부분이며 건축비용과도 관련이 있다.
세부적으로 공간의 사용 용도에 따라 구성하는 가구, 설비 등의 차이도 있다. 가령 주거 용도에 있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메인 주거의 경우와 특정일만 방문하게 되는 세컨드하우스의 경우 상시 수납의 정도가 다를 수 있고, 이를 위한 공간 계획이 필요하다. 주거와 달리 사무실은 주방은 작되 작업을 위한 책상 및 책장 등의 공간 확보가 필요하며, 상업시설의 경우 주방에 절반 이상의 영역을 할애해야 한다. 주거의 경우에는 어메니티 서비스를 위한 파우더룸 등이 비중 있게 준비되는 경우가 있다. 주어진 면적을 합리적인 비율로 공간을 나누는 것은 공간 효율성을 높이고 애매한 공간 활용도 저하를 방지할 수 있다.
용도에 따른 건축 계획이 이뤄진 뒤 이어지게 될 시공 계획도 사전에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가령, 렌탈 주거(스테이 건축)의 경우 기존에 운영하는 공간을 증축하게 되면 공간 확장으로 인해 기존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부분도 중요한 기회비용으로 생각해야 한다.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모듈을 대부분 제작해 현장으로 운송한 뒤 조립·시공하기 때문에 현장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시킴으로써 기존 영업의 운영 중단 일수를 줄이고 공간 확장 시공 일수 또한 단축시켜 운영 수익을 도모할 수 있다.
공간 프로그램 설정
같은 공간이라도 사용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활용 방안으로 계획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주택 규모가 과거와 달리 합리적인 비용과 실질 사용을 고려해 소형화되는 추세라서 용도가 복합적이고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거실의 경우 다이닝 기능, 취미실(독서, 음악, 대화 등) 등으로도 활용되면서 오픈 스튜디오 형태의 패밀리룸으로 계획되기도 한다. 또한 양방향의 개방감 있는 창호 모듈의 설계를 통해 내·외부 공간이 연계되는 활용성뿐만 아니라 아파트 및 밀도 있는 도심지에서 기대하기 어려웠던 외부 공간으로의 개방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모듈러 건축에서 모듈은 수평 방향이 아닌 수직 방향의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층고를 효율적인 방법으로 시공해 내부 공간의 수직적 개방감 또한 기대할 수 있다. <표1>
주방의 경우, 주방 가구 및 설비 계획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주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싱크대, 식탁, 의자 등은 대부분 규격화된 모듈 설계에 의해 제작되기 때문에 공간모듈 설계에 연계성이 높다. 사용자의 규모에 따라 설정한 활용 방안에 따라 단위 주방가구에서부터 시작돼 주방의 형태와 규모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표2>
모듈러 주택의 경우 소위 물을 사용하는 공간을 설비코어 공간으로 집중시켜 구성하는 경우가 있다. 급배수 및 보일러 설비를 한 곳에 집중시키고, 배관의 길이와 레이아웃을 단순화시켜 효율을 높이기 위함인데 설비가 모듈 공간으로 단순화된다는 것은 설비코어를 중심으로 얼마든지 공간이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1>
모듈러 주택은 단위 공간이 1차 구조체가 돼 현장으로 운송된다. 건축 모듈의 인접 연결을 통해 공간을 확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도된 간격으로 이격 배치되면 모듈 사이의 공간은 훌륭한 외부 공간이 될 수 있다. 중정과 같은 공간이 되기도 하고 개폐 선택이 가능한 반외부 데크공간이 되기도 한다. 봉당과 같은 전통 건축의 활용도 높은 다목적 공간도 모듈러 건축을 통해 쉽게 공간 구현이 가능하다. <표3>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높은 내부 층고를 가질 수 있다. 집의 조형적인 지붕 계획에 따라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수납 또는 특색 있는 공간을 위해 다락으로 계획하는 경우도 있다. 평균 내부 천장고가 1.5m(평천장)/1.8m(경사천장)의 경우 연면적에 산정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면적 활용 후 추가로 확보 가능한 면적이기도 하다. 소형 평수의 주택인 경우 수납공간 계획이 중요한데 다락을 이런 수납공간의 대안으로, 독립적인 취미공간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이색공간으로 다양하게 계획할 수 있다. <표4>
이번 호에서는 주택을 구성하는 주요 공간의 고려사항을 살펴봤다. 주택에 어떤 삶의 모습을 담을지 사전에 치열하게 이뤄지는 충분한 고민은 내실 있고 짜임새 있는 공간 계획을 가능토록 하고, 아파트와 달리 다양한 공간의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우리가 기획한 공간을 어떤 구조로 만들지 여러 구조의 특색을 검토하고 구조별 장단점을 살펴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