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DX]'자정 점검' 없앤 토스뱅크, 계정계도 쪼갠다
주요 금융사들의 디지털전환(DX) 및 생성형 인공지능(AI) 전략과 이에 활용될 수 있는 IT(정보기술) 기업들의 솔루션을 분석한다.
'지금은 은행 시스템 점검 시간입니다.'
자정 무렵 은행 앱을 실행하면 볼 수 있는 문구다. 은행 업무를 보려면 잠시 기다리거나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자정에는 은행들이 시스템 점검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토스뱅크는 여기에 '왜'라는 의문을 던졌다. '점검시간을 꼭 둬야 하나', '없애면 고객들이 더 편하게 앱을 이용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으로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잠들지 않는 은행'의 시작이었다. 토스뱅크의 기술을 총괄하고 있는 박준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나 점검 시간을 없앤 과정에 대해 들었다. 토스뱅크는 오프라인 영업점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이지만 박 CTO는 디지털전환(DX)에 여전히 목말라 있었다.
'은행은 그러면 안된다' 생각 깼더니 혁신 따라왔다
인터뷰 전에 '토스뱅크는 태생이 디지털인데 디지털전환(DX) 전략을 묻는 것이 맞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박 CTO의 첫 마디를 들은 후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토스뱅크에게 DX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토스뱅크의 탄생 과정과 박 CTO의 이력을 보면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토스뱅크의 시스템 구축 작업은 2020년 중반부터 시작됐다. 주요 IT서비스 기업 중 한 곳이 계정계 구축 작업을 맡았다. 계정계는 은행의 핵심 시스템으로 △계좌 개설 및 폐쇄 △입출금 및 이체 △외환 등의 정보가 담겨있다. 그외 모바일 서비스 영역은 토스뱅크가 개발했다.
박 CTO는 △창신소프트 △네이버 △매드스마트 △파이낸시스 △플레이독소프트 등을 거쳐 2017년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에 합류했다. 2019년에는 토스혁신준비법인 CTO와 토스뱅크 CTO를 함께 맡으며 토스뱅크의 태생부터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다. 비금융권 기업에서 개발을 주로 담당했던 그는 토스뱅크에서 금융 시스템을 개발하며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금융사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고객들의 자산을 지켜야 하므로 무엇보다 시스템의 안정성과 보안을 중요하게 여긴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다른 업종에 비해 신중할 수 밖에 없다. IT 기업에서 주로 근무했던 박 CTO는 오픈소스를 적용하자고 제안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에게 돌아온 말은 '은행 시스템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이걸 시도해서 사고나면 책임 질건가' 등이었다.
박 CTO는 굴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대표적인 것이 자정에 은행 시스템이 멈추는 관행을 바꾼 것이다. 기존 은행들의 시스템은 자정 무렵부터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까지 점검 시간이다. 이 시간동안 고객은 은행 업무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이어진 관행이라 고객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박 CTO는 '네이버·카카오·유튜브 서비스는 시간과 관계없이 이어지는데 은행 시스템은 왜 중간에 끊어져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었다. 기술로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고 고객 편의성을 높이고자 했다.
기존 은행들은 점검시간에 전일자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드는데 이 작업을 하려면 거래를 잠시 멈춰야 했다. DB에 해당 날짜에 일어난 거래 정보를 담아야 하는데 거래가 이어지고 있으면 끊고 DB 작업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 CTO는 거래는 이어지도록 두고 이와 별개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별개 시스템에서 0시0분을 조금 넘겨 발생한 거래들은 지우고 전일자 DB를 완성했다. 박 CTO는 "1분만 점검 시간을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고생하더라도 끊기지 않는 서비스를 구현하자고 동료들과 뜻을 모았다"며 "노력 끝에 일자전환 작업 없이 전일자 DB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토스뱅크 외화통장의 환전 서비스는 24시간 가능하게 됐다.
박 CTO와 동료들은 은행의 핵심 시스템인 계정계를 쪼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일반적인 은행 시스템은 기능이 추가되면 계정계에 붙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계정계 시스템이 비대해진다. 커질대로 커진 계정계 시스템을 갈아엎는 것이 은행들이 몇 년에 한 번씩 하는 차세대 프로젝트다. 토스뱅크는 시스템에 MSA(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를 적용했다. 각각의 서비스들이 계정계 시스템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구동될 수 있도록 따로 떼어내는 작업이다. 박 CTO는 MSA의 장점으로 개발 생산성 향상과 장애 영향 감소를 꼽았다.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 할 때 연관된 기능들이 많으면 영향도를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별도로 구동된다면 영향도를 따지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MSA가 적용된 기능은 계정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원활하게 구동된다. 장애 영향을 덜 받거나 안 받을 수 있다.
토스뱅크 MSA의 대표 사례가 '지금 이자받기' 기능이다. 이 기능은 이자를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매일 받을 수 있도록 한 상품이다. 토스뱅크 통장에 돈을 보관하면 누구라도 매일 한 번씩 원할 때 즉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자를 빠르게 받으려는 고객들은 자정이 지나면 바로 지금 이자받기 기능을 실행한다. 이 때문에 토스뱅크의 트래픽이 가장 높은 시간대가 자정이다. 지금 이자받기 기능에는 MSA가 적용돼 다른 기능의 영향을 덜 받는다.
머신러닝으로 풀 문제 더 많다
금융 업계에도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박 CTO는 생성형 AI에는 거의 인력이나 비용을 투입하지 않고 있다. 기술 자체로 무엇을 시작하기보다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공부하는 것이 맞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생성형 AI보다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더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출심사에서 신분증 진위 확인을 머신러닝으로 해결한 것이다. 서비스 이상 탐지에도 머신러닝이 적용됐다. 토스뱅크는 생성형 AI도 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업무 중심으로 기술검증(PoC)을 하고 있다.
토스뱅크는 금융사이지만 기술 인력의 비중이 높다. 전체 직원 560명 중 약 53%인 300명이 테크 직군이다. 박 CTO는 "시스템의 개선 및 고도화를 계속 해야 하는데 외부 업체를 쓰면 (토스뱅크 시스템을)익히고 개발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며 "내부적으로 개발을 하고 있는데 이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다"고 말했다.
박 CTO는 오는 26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금융사의 생성형AI 활용 및 DX 전략'을 주제로 열리는 '테크 파이낸스 서밋 2024'에 연사로 참여한다. 그는 '잠들지 않는 은행, 토스뱅크의 혁신'를 주제로 발표한다.
테크 파이낸스 서밋에서는 금융 및 IT 전문가들의 발표도 이어진다. 금융사에서는 오순영 전 KB국민은행 금융AI센터장 상무와 이성웅 하나은행 생성형AI가 금융에 미치는 영향과 디지털 금융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발표한다. 금융보안원의 황송이 책임은 금융사들이 생성형AI를 활용할 때 고려해야 할 보안 문제를 설명한다. IT기업들도 서밋을 찾는다. 임정욱 네이버클라우드 파이낸셜솔루션비즈니스 상무, 이화용 한국IBM 상무, 서길주 메가존클라우드 AI&데이터분석센터 그룹장, 최용회 퀘스트소프트웨어 이사 등이 금융사의 DX, 생성형AI 도입에 필요한 기술 요소에 대한 발표를 이어간다. 디지털마케팅 전문기업 어센트코리아의 박세용 대표는 청중에게 검색 데이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금융 소비자들의 성향에 대해 들려줄 계획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블로터 홈페이지 콘퍼런스 탭과 이벤터스·온오프믹스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