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유난히 즐겼다” 충청 백성들이 들에서 뜯어 올렸다는 나물

세종대왕이 유난히 챙겼다고 전해지는 토종 풀나물의 정체는 도라지입니다. 오늘날에는 밭에서 재배하는 뿌리채소로 익숙하지만, 예전에는 산과 들에서 자란 도라지를 캐서 국을 끓이거나 나물로 무쳐 먹었습니다. 쌉싸래하면서도 은근한 단맛이 있고, 양념을 많이 넣지 않아도 씹을수록 향이 살아나 임금의 밥상부터 서민의 소박한 끼니까지 두루 쓰였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라지가 경기와 충청·전라·강원·황해·평안·함길도 등 여러 지역에서 바치는 토산물로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흉년이 들면 백성들이 산과 들에서 캐어 저장해 두었다가 먹는 구황식품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세종은 1436년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도라지가루를 활용한 식사법을 각 지역에 알리도록 했을 만큼 도라지를 유용한 먹거리로 보았습니다.

임금의 별미이자 백성을 살린 나물이었습니다

도라지는 단순히 향긋한 반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는 뿌리를 캐어 말려 두었다가 물에 불려 죽이나 국에 넣었고, 어린순은 데쳐 나물로 무쳐 먹었습니다. 세종 시대에도 흉년과 추위로 산과 들의 나물조차 구하기 어려워지자 경기·충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백성을 적극적으로 구제하라는 명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들나물은 반찬이면서 동시에 목숨을 이어주는 귀중한 식량이었습니다.

도라지나물은 껍질을 벗긴 도라지를 소금물에 주물러 쓴맛을 적당히 뺀 뒤 살짝 볶아 만들면 됩니다. 쓴맛을 완전히 없애기보다 은은하게 남겨야 도라지 특유의 향과 식감이 살아납니다. 들기름과 다진 마늘을 소량 넣고 볶다가 물을 조금 부어 부드럽게 익히면 치아가 약한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고추장과 설탕을 많이 넣은 새콤달콤한 무침보다 담백하게 볶은 나물이 전통적인 밥상과 더 잘 어울립니다.

들에서 캐던 뿌리가 귀한 식재료가 됐습니다

도라지는 어린순부터 뿌리까지 먹을 수 있고, 말리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예부터 활용도가 높았습니다. 조선시대 기록과 문학에는 굵은 도라지를 캐어 국을 끓이거나 나물로 무쳐 먹었다는 내용이 전해집니다. 충청도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토산물로 올릴 만큼 널리 이용됐으며, 평범한 풀뿌리에서 왕실과 백성의 밥상을 잇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세종이 도라지를 중요하게 여긴 까닭은 귀하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구해 저장할 수 있고 백성의 허기를 채우는 데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종이 특정 도라지나물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다거나 충청 백성이 직접 캐서 수라상에 올렸다는 구체적인 일화는 후대의 향토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이 섞여 전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분명한 기록은 세종 시대에 도라지가 여러 지역의 토산물이자 구황식품으로 중시됐고, 백성의 식량으로 적극 활용됐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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