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샤머니즘 전문 이스라엘 교수 "한국은 교인도 점 보는 나라"

손영하 2024. 10. 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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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믿음 : 무속 대해부>
리오라 사파티 텔아비브대 교수 인터뷰
'현대 한국 샤머니즘' 쓰고 24년간 연구
심리학자 대신 무당을 비밀 나눌 상대로
"과학적 사고하면서도 무속 즐겨 인상적"
편집자주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다.
리오라 사파티 텔아비브대 교수가 지난 8월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한국에선 모든 종교가 공존할 수 있어요. 심지어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무속'을 즐길 수 있죠."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동아시아학과장 리오라 사파티(53) 교수는 지난 8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무속이 성행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특히 종교에 매우 엄격한 이스라엘과 비교하며 "한국에선 종교인이 무당을 찾아가는 걸 문제 삼지 않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사파티 교수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이 무속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다고도 했다. 과거에는 무속이 '전근대성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무당을 찾아간다고 한국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믿음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의 역할도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 한국 샤머니즘'. 온라인 캡처

사파티 교수는 24년간 한국 무속을 연구했고, 2021년 '현대 한국 샤머니즘: 제례에서 디지털로'(Contemporary Korean Shamanism: from ritual to digital)라는 책을 출간했다. 올해에도 인류학 저널에 한국 무속 관련 글을 기고하는 등 K샤머니즘에 대한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무속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학부에서 선불교와 일본어를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한국 무당의 치유와 공연, 전통에 대한 글을 읽고 굿 영상을 보게 됐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전공을 바꿔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를 공부했다. 한국 샤머니즘이 나를 한국으로 이끈 것이다."

-영화 '파묘' 등이 인기를 끌었는데.

"미디어에서 무당을 다루는 방식이 확실히 변하고 있다. '파묘'에서 무당은 무섭게 묘사되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역할이다. 반면 1977년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에선 무당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섬을 관광지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무당은 '신들이 화를 내고 있다'며 반대한다."

영화 '파묘'에서 배우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캐릭터가 극중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굿을 치르고 있다. 영화 '파묘' 스틸컷

-미디어가 무속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고 보나.

"원인인 동시에 인식 변화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무속에 관심이 없다면 미디어에서 무당을 다루지 않을 거다. 과거에는 금기였지만, 지금은 금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왜 무속이 성행한다고 보나.

"한국은 종교에 있어 다원주의적 특성이 강하고 개방적이다. 이스라엘에선 종교를 '100%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90%만 믿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한국에선 절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한 뒤 곧바로 무당을 찾아가도 괜찮다. 기독교인 중에도 무당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믿음이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 심지어 과학적 사고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무속을 즐길 수 있다. 무당들도 손님이 병원을 건너뛰고 점집에 오길 바라지 않는다."

-경제 성장과 무속이 관련이 있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는 '우리가 무속 같은 전통을 계속 믿으면 나라가 퇴보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때는 전통과 과학, 무당과 병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글로벌 선도국가가 됐다. 무속을 믿는다고 한국이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리오라 사파티 텔아비브대 교수가 지난 8월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사람들이 무당을 왜 찾아가는 것 같나.

"이스라엘과 미국에선 젊은 사람들이 심리학자를 많이 찾아간다. 불안하거나 우울한 사람들이 그들과 대화하며 도움을 받는다. 한국은 아직 그런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 부모나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경쟁이 치열해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당을 찾는 이유다. 어느 무당은 '한국인이 모두 심리학자를 찾아가면, 우리 일거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당을 찾는 것은 '신'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하는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행위에 가깝다."

-다른 나라도 샤머니즘을 많이 믿나.

"시베리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에 샤머니즘이 많이 퍼져 있다.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에도 샤먼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특별하고 독립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곳은 없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굿판을 걷어차다
    1. • 귀신같이 알아맞힌 그 말, 삶을 저당잡는 미끼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190005377)
    2. • 가족들 위해 신내림 받았지만... 두 딸은 차례로 정신병에 걸렸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2410010004985)
    3. • 달나라 가는 AI 시대에 무속이 공존하는 이유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2316280000067)
  2. ② 사람 잡는 무속
    1. • "굿하면 다 낫는다" 고통을 먹잇감 삼아…귀신 대신 사람 잡은 무당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220004372)
    2. • "유튜브 영상 속 무당 점사는 짜고 치는 쇼"… 대역 배우의 폭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2910270005517)
  3. ③ 기도터 가는 이유
    1. • '기도발' '복' 그리고 '쩐'... 무당 70명이 그날 대관령 오른 이유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240005656)
    2. • K샤머니즘 전문 이스라엘 교수 "한국은 교인도 점 보는 나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0213390005760)
  4. ④ 산업화된 점집
    1. • 미아동 떠나 논현동서 수억 수익… 점집도 '강남불패'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300003815)
    2. • 진로·취업·결혼… '초고속 온라인 점술' 호황… 신뢰성은 의문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310002722)
    3. • "30만명 넘는다"는 무당… 정부엔 '없는 사람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280001981)
  5. ⑤ 시대와 공존하려면
    1. • "참된 무당은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판… 신 무서운 줄 알면 나쁜 짓 못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0510160001713)
    2. • 무속인 왜 안 좋게 보냐고? "돈만 좇는 모습에 실망"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0340004537)
    3. • "전 세계 고객에 점 봐줘"... 한국서 신내림받은 '푸른 눈의 무당'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6130005009)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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