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장충에서 GS칼텍스를 3-2로 잡아내며 3연승을 달렸다. 스코어만 보면 “접전 끝에 운 좋게 이겼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이 경기는 운보다 선택이 만든 승리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강성형 감독이 승부처에서 던진 ‘모험수’가 판을 바꿨다.

현대건설은 이날 1세트부터 이상했다. 초반엔 범실이 많았고, 7점 차까지 밀렸다. 그런데도 무너지지 않고 끝내 26-24로 뒤집었다. 결정적 장면은 22-24에서 실바의 연타 범실이 나오고, 카리의 백어택으로 듀스를 만든 뒤 김희진의 블로킹으로 마침표를 찍은 대목이다. “세트 포인트를 잡고도 흔들리는 팀”과 “세트 포인트여도 끝까지 붙는 팀”의 차이가 그 순간 갈렸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진짜 강했던 건 ‘흐름을 잡는 힘’이 아니라, 흐름을 잃었을 때 버티는 힘이었다. 2, 3세트를 연달아 내주고 분위기가 GS칼텍스 쪽으로 넘어갔을 때, 보통은 외국인에게 공을 몰아주며 억지로 버틴다. 그런데 현대건설은 반대로 갔다. 카리와 자스티스의 공격이 흔들렸고 성공률이 떨어지는 걸 인정했다. 대신 중앙과 블로킹, 그리고 빠른 패턴으로 승부를 바꾸는 길을 택했다.

이 경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거다. “현대건설은 외국인이 막히자 더 팀다운 배구를 했다.” 카리의 득점은 21점으로 많았지만, 공격 성공률이 낮은 날이었다. 여기서 감독이 흔히 빠지는 함정은 “그래도 외국인이니까”라는 고집이다. 그런데 강성형 감독은 4세트 후반에 카리를 빼는 결정을 내렸고, 5세트는 아예 선발에서 제외하는 초강수를 뒀다. 쉽지 않은 선택인데, 이게 현대건설을 ‘승점 2점짜리 승리’로 데려갔다.

이 결정의 핵심은 단순히 외국인을 뺐다는 데 있지 않다. “상대 블로킹 타이밍이 카리에 너무 맞았다”는 걸 인정하고, 그 타이밍 자체를 깨는 방향으로 전술을 바꿨다는 데 있다. 나현수를 투입해 공의 속도를 바꾸고, 김다인의 토스를 더 빠르게 가져가며, 공격 리듬 자체를 새로 만들었다. 상대가 읽고 있던 교과서를 불태우고, 즉석에서 새 문제를 낸 셈이다. 그래서 4세트부터 현대건설의 공격은 ‘힘’이 아니라 ‘각도와 속도’로 살아났다.

그 변화의 얼굴이 김희진과 나현수였다. 김희진은 블로킹 5개를 포함해 12점을 올리며 승부처를 지켰다. 특히 5세트 같은 긴장 국면에서 블로킹 하나는 단순한 1점이 아니라, 상대의 숨을 끊는 경고장이다. 나현수는 숫자만 보면 9점이지만, 실제 가치는 그 이상이었다. 흔들리는 순간에 공을 처리해주고, 상대의 예측을 흔들어주며, “오늘은 너희가 준비한 대로 안 된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반대로 GS칼텍스는 ‘실바 원맨쇼’가 너무 선명했다. 실바가 41점을 올렸다는 건 대단한데, 이런 경기는 보통 “혼자서도 이길 수 있었다”가 아니라 “혼자여서 못 이겼다”로 끝난다. 레이나가 부진했고, 블로킹 싸움에서 밀렸고, 결정적으로 1세트 24-22에서 세트를 닫지 못했다. 강팀은 24-22를 ‘끝’으로 만들지만, 흔들리는 팀은 24-22를 ‘시작’으로 만든다. 그 차이가 오늘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GS칼텍스가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미들 자원이 빠진 상황에서도 권민지·최가은이 버텼고, 경기 내내 똘똘 뭉친 모습이 있었다는 건 감독의 말처럼 분명한 수확이다. 다만 현대건설처럼 ‘변수를 이기는 방식’을 갖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GS칼텍스는 좋은 흐름을 만들었지만, 현대건설이 전술을 바꿨을 때 그 변화에 끝까지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5세트 듀스에서 마지막 한 점을 가져오는 디테일이 부족했다.

이 승리로 현대건설은 선두 한국도로공사를 승점 2점 차로 압박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현대건설이 단순히 “잘해서”가 아니라 “판을 바꿀 줄 알아서” 선두권 싸움에 더 위협적인 팀이 됐다는 점이다. 외국인 의존도가 높은 팀은 외국인이 막히면 흔들리지만, 오늘 현대건설은 그 반대의 길을 보여줬다. ‘에이스가 막힌 날’에 승점 2점을 따냈다는 건, 우승권 팀이 갖는 가장 무서운 능력이다.

이제 다음 경기가 더 재미있어졌다. 선두 싸움은 결국 1~2점에서 갈리고, 그 1~2점은 화려한 득점이 아니라 결정적인 한 선택에서 나온다. 장충에서 현대건설이 보여준 건 “오늘의 승리”보다 “우승 레이스를 하는 팀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이 계속된다면, 한국도로공사도 더 이상 “딱 기다려”라는 말로 넘길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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