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두뇌로 맞선 왜소한 이 영웅처럼… 각자의 방법으로 싸우며 살아간다
글 서패스·그림 김진석 인터뷰

‘약한 영웅’은 딴지를 걸고 싶게 만드는 단어의 조합이다. ‘뜨거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망신당하기 십상인 조합.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이 모순된 단어들이 현실에 나타나기를 상상해 봤을 테다. 모범생 연시은이 명석한 두뇌로 폭력에 대항하는 웹툰 ‘약한영웅’ 역시 한 직장인의 상상에서 시작됐다. 5년간 연재된 웹툰 완결을 맞아, 글 작가 서패스와 그림 작가 김진석을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철강 회사를 오래 다녔다는 서패스는 “차를 타고 출근하던 중, 병원 앞 화단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연시은의 모습이 떠오른 게 이야기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학교 폭력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 연시은이 자신의 무력한 모습에 눈물 흘리는 장면이다. “부당한 폭력에 연약한 혼자만의 힘으로 저항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하나란 의문이 들었어요. 제가 보고 싶은 만화를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었고, 회사 다니며 콘티를 틈틈이 짰습니다.”
‘약한영웅’은 서패스의 웹툰 데뷔작이다. 만화 작업과 회사 생활을 병행하다 2018년 웹툰 연재 초반 전업 작가로 전향했다. 여기에 ‘히어로 주식회사’(2009) 등 2000년대 중반부터 액션 작품을 그려 온 베테랑 김진석의 그림이 더해졌다. 콘텐츠로서 거둔 성공이 크다. 네이버웹툰에 영어·일본어 등 10여 언어로 연재되며 글로벌 조회 수 16억8000만회를 기록했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은 2022년 웨이브에 유료 가입자를 가장 많이 유입시킨 효자 콘텐츠로 주목받았고, ‘약한영웅 Class 2′가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 중에 있다.

학생들 싸우는 이야기에 왜 그렇게 열광하냐는 생각이 든다면, 반만 맞다. 약한 주인공이 영웅적 인물로 거듭나는 쾌감을 좇는 다수 웹툰과 달리 주인공이 끝까지 연약하다. ‘키 160cm 겨우 넘는 왜소한 몸’을 지닌 연시은이 가진 건 전국 수석급 두뇌뿐. 상대를 두꺼운 책·볼펜·커튼과 같은 물건을 사용해 제압한다. 의협심이 아니라, 공부를 방해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김진석 작가는 “웹툰의 스토리를 처음 봤을 때 연시은이 가지는 아이러니가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연시은은 여느 주인공처럼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스스로 나서서 행동하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상관없는 일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그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딱딱한 알을 깨고 나오는 거죠.” 이 독특한 설정이 그림 작업을 고통스럽게 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어느 정도(?) 예쁘장한 연시은의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서, 그릴 때마다 어려웠어요.”
‘애초에 싸움은 동등하게 시작될 수 없어.’ 웹툰 초반 연시은이 도구를 이용해 싸우는 자신을 비난하는 무리에게 이렇게 말하듯, 작품은 공정의 문제보다는 폭력의 속성에 집중한다. 아무리 싸워도 사라지지 않는 폭력. 선과 악을 재단하기보단, 누구나 각자의 폭력에 맞선다는 점에서 ‘폭력 미화’와 같은 논란에서 자유로웠다. 서패스는 “현대인이 피할 수 없는 작은 마찰과 부당함을 학교라는 무대로 축소시켜 보여줬기 때문에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웅이란 주변의 조롱과 멸시 앞에서도 자신의 꿈을 굳게 지키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재단하려는 시선에 맞서 각자의 꿈을 지켜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꿈을 지키는 데엔 대가가 따르는 법.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는 웹툰 결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서패스는 이에 대해 “만족과 후회가 동시에 밀려오며 복잡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완결의 방향에서 ‘모두가 만족할 이야기’라는 안전한 길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위험한 길이 있었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어요. 죽음이란 황망한 결말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기억 속에 오래 살아있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앞으론 독자의 감정을 배려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약한영웅’은 협업이 잘 이뤄진 사례지만, 최근 웹툰계에선 제작 과정이 세분화되며 공장식으로 쏟아지는 작품도 적지 않다. 김진석은 이에 대해 “웹툰이 돈이 된다는 것에 현혹돼 작품 수를 늘리는 것에 치중하다 보면 내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없는 상황에서 작가나 스태프를 늘리게 된다”며 “결과적으로는 양으로만 승부를 보게 돼 독자를 돌아서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약한영웅
왜소한 체격의 고등학생 연시은이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학생들 간 폭력에 맞서는 이야기. 2018년 5월부터 5년 넘게 네이버웹툰에 연재됐고, 1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글로벌 조회수 16억8000만회. 웹툰 원작의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이 2022년 웨이브에서 공개, ‘Class 2′는 넷플릭스가 제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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