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포개진 손가락 10개 사진…누구 손인지 알면 생각에 잠긴다는데
두 사진 병치하는 딥틱, 인물과 내면 의미
조성진과 거대한 바위는 젊은 거장의 단단함
박찬욱 감독 용 형상은 영화 속 에너지 담아
백남준과 반가사유상, 대표작 ‘TV부처’ 떠올라
손등을 위로 하고 꾹 맞잡은 한 사람의 두 손. 짧게 깎은 손톱이 유난히 돋보이는 10개의 손가락. 평범해 보이는 손 사진이지만, 이 손의 주인을 알고나면 사진은 다르게 보인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손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최정상급 예술가라는 안팎의 권위 때문만은 아니다. 저 평범한 피부 안쪽 혈관과 신경에, 무수한 거장의 선율과 수천만 번의 고통이 강물처럼 흘러갔음을 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만하게 정지해 있더라도, 10개의 가는 손가락은 허공의 건반을 건드리며 춤을 추고 있다.
수백 명의 관객이 운집한 지난 22일 사진전 현장에서 김용호 사진가의 셔터가 탐색한 거장의 기록을 조용히 살펴봤다.
사진가 김용호가 누구인가. 그는 ‘상업사진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초극한 크리에이터’로 평가받는다. 일찍이 김남조 시인으로부터 “그는 사진가이기보다 사진사상가인지 모른다”는 평까지 받았다.
한남동 파운드리 서울 지하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박찬욱 감독과 용(龍) 형상의 사진 두 장이 거대한 크기로 관객을 맞는다.
김용호 사진가에 따르면,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딥틱(Diptych)’이다. 딥틱이란 본래 둘러 접을 수 있는 목판 성상화를 뜻하는데, 사진에서는 대조되거나 비슷한 두 사진을 병치시켜 새 의미를 생성하고자 쓰인다. 박 감독 사진과 용 사진이 병치된 이유다.
‘비룡승운(飛龍乘雲)’으로 명명된 이 작품에 대해 김용호 사진가는 “박찬욱 감독의 성격과 대비되는, 그의 영화 속 에너지를 병치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수줍음은 분노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소설가 스티븐 킹을 인용하면서 박 감독의 정서를 이야기한다.
‘빛나는 청춘’으로 이름붙여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딥틱 사진은 놀랍게도 바위다. 우측을 바라보는 조성진의 사진 옆으로 경주 태종무열왕릉 인근의 바위가 함께 걸렸다.
오랜 연습과 훈련으로 다져진 젋은 거장 피아니스트의 손을, 수많은 세월 오랫동안 깎인 바위와 함께 표현한 것. 그 옆으로 조성진 손을 긴 연작으로 남긴 ‘춤추는 손’을 비롯해, 조성진이 자택에서 공연 직전까지의 여정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찍은 김용호의 사진도 눈길을 끈다.
특히 피아노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며 휴식을 취하는 조성진의 뒷모습 사진은 울림을 준다.
김용호 사진가는 “안은미의 화려한 움직임을 가지를 뻗은 대칭의 매화와 함께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두 사진을 포괄하는 제목은 강렬하게도, ‘도망치는 미친년’이다. 안은미 무용가의 감정 표현을 담은 연작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도 관객이 한 걸음씩 이동하며 음미할 만하다.
미술가 김수자의 ‘딥틱’은 김용호 사진가의 작품 ‘피안(彼岸)’이다. 수면 밑 세계에서 바깥 세상의 연잎을 바라보는 구도로, 이는 그 자체로 해탈 이후의 내세가 된다. 연꽃이 아닌, 거대한 연잎 아래에서 참선 중인 느낌을 주는데, 이때 김수자의 감은 눈은 이미 피안에 가닿은 이의 표정처럼 보인다. 두 사진을 포괄하는 제목은 ‘사유(思惟)’다.
사진전에 참석한 관객이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이번 사진전의 백미는 아티스트 고 백남준을 담은 사진들이다. ‘딥틱’ 사진으로는 고 백남준과 국보 반가사유상의 후면을 찍어 나란히 배치한 두 장이 선택됐다. 제목은 ‘백남준을 바라보는 반가사유상’이다.
김용호 사진가는 2005년 소호의 백남준 자택에서 차이나타운 작업실까지의 뉴욕 거리를 ‘휠체어를 탄 백남준의 시선’으로 기록한 바 있다. 당시 그는 ‘휠체어’를 탔는데, 그때 찍은 사진도 함께 걸렸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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