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한경협 회비 조기 의결…이재용 회장단 복귀는 '신중 모드'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가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국경제인연합회) 연회비 납부안을 예년보다 3개월 일찍 의결하고 금액도 3년 연속 늘렸다. 류진 한경협 회장이 4대 그룹 총수의 회장단 복귀를 임기 내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13일 만에 나온 결정이다. 과거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과 거리를 둬온 삼성이 회비 증액과 조기 의결에 나섰다는 점에서 양측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회비 의결 10월서 7월로…납부액도 3년째 증가

삼성전자는 이달 30일 이사회를 열고 한경협 연회비 19억9000만원 납부안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납부 예정 시점은 8월이다.

이번 의결에서 주목받는 것은 시점과 규모다. 삼성전자는 2024년과 2025년 모두 10월 말 이사회에서 회비를 결정하고 11월에 집행했지만 올해는 의결 시점을 7월 말로 3개월가량 앞당겼다. 납부액도 2024년 18억1000만원, 2025년 18억5000만원에서 올해 19억9000만원으로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전년 대비 7.6%, 2년 전보다 9.9% 증가한 규모다.

이번 결정은 류진 한경협 회장이 4대 그룹 총수의 회장단 복귀 의지를 재확인한 시점과 맞물려 이목을 끈다. 류 회장은 이달 17일 열린 제주하계포럼 간담회에서 "주요 현안으로 바쁜 4대 그룹에 당장 한경협 회장단 합류를 요청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임기 내 복귀를 추진할 것"이라는고 밝혔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로부터 13일 뒤 회비 납부안을 의결했다.

삼성전자는 같은 날 분기배당 2조4559억원과 스타트업 투자조합 출자 7920억원 등 대규모 안건도 처리했다. 회비 의결을 정기 이사회 일정에 따른 조정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최근 2년간 같은 시기 실적·배당 이사회를 열고도 한경협 회비는 10월 말 별도로 의결했다. 올해만 시점이 3개월 빨라진 것이다. 납부액도 과거보다 늘었지만 회비 산정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국정농단으로 끊어진 관계…조기 납부에 쏠린 시선

기업의 협회 회비 납부가 의무공시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삼성전자의 결정을 둘러싼 관심을 키운다. SK·현대차·LG 계열사들도 한경협 회비를 납부하지만 매년 납부액과 이사회 의결 사실을 별도로 공시하는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삼성전자가 납부하기로 한 19억9000만원은 같은 날 결정한 분기배당액의 0.08% 수준이다. 재무적 중요성이 크지 않은 협회비를 별도로 공시하는 것은 한경협과의 관계가 일반적인 경제단체 가입 이상의 무게를 지니기 때문이다.

한경협의 전신인 전경련은 과거 청와대 요구로 기업별 출연액을 배분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전달하는 과정에 관여한 이력이 있다. 당시 18개 그룹 53개 계열사가 총 774억원을 출연했으며 이 중 삼성은 가장 많은 금액을 부담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은 모두 전경련을 탈퇴했다.

전경련은 2023년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산하 연구기관이었던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했다. 기존 한경연 회원사였던 4대 그룹 계열사들은 통합 과정에서 한경협 회원 자격을 승계했다. 이후 2024년 현대차그룹을 시작으로 SK·삼성·LG 계열사들이 회비 납부를 재개하면서 회원사 차원의 관계 복원이 이뤄졌다.

한경협이 추진하는 다음 단계는 그룹 총수들의 회장단 합류다. 현재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한경협 회장단에 참여한 인사는 없다. 국내 최대 그룹을 이끄는 이재용 회장이 합류할 경우 다른 그룹 총수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당면한 경영 현안이 산적해 있어 이 회장의 한경협 회장단 합류가 당장 우선순위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회비 의결 시점 변경도 정기 이사회 일정에 따른 실무적 조정일 수 있어 그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국정농단 당시 출연금을 가장 많이 부담했던 삼성이 회비 공시를 유일하게 이어가고 있고, 올해 회비 증액과 조기 의결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은 양측의 관계 변화를 가늠할 하나의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룹별 회비 비슷하지만…계열사별 부담액 제각각

현재 한경협은 4대 그룹을 최상위 회원사군으로 분류해 동일한 수준의 회비를 요청하고 있다. 전경련 시절 특정 기업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높았다는 지적을 반영한 구조다. 과거 삼성그룹이 연간 100억원 안팎을 부담했던 것과 비교하면 회비 규모도 크게 줄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그룹별 연회비를 35억~50억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래픽=최지원 기자

한경협이 각 그룹에 요청한 회비는 회원 계열사들이 나눠서 부담하는 걸로 전해졌다. 삼성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계열사별 분담 기준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그룹 역시 복수의 회원사가 회비를 나눠 부담한다. SK그룹에서는 지난해 SK하이닉스가 20억6800만원, SK텔레콤이 4억5000만원을 각각 납부했다. 나머지 회원사인 SK㈜와 SK네트웍스의 납부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대모비스의 납부액은 5억9800만원이다. 현대차는 한경협을 포함한 '협회 및 비과세 단체'에 총 72억100만원을 지급했지만 한경협 회비만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 LG그룹은 계열사별 한경협 회비 규모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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