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핍에서 풍요로의 첫 충격
탈북 직후 생활 환경이 가장 극적으로 바뀌는 지점은 식사였다. 북한에서 옥수수쌀을 섞은 밥과 김치 한 접시가 상급 대우였다면, 정착지원시설의 첫 식사는 생선과 나물, 국과 반찬이 갖춰진 백반이었다. 익숙한 절약과 배분의 습관은 사라지고, 충분함과 선택의 감각이 첫날부터 현실이 됐다.

배부름의 불안이라는 역설
연속된 포만감은 곧 불안을 낳았다. 절약이 미덕이던 환경에서 살아온 이에게 ‘두 그릇’은 심리적 경계선을 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사흘 만에 살찔 것 같다”는 말엔 단순한 체중 걱정이 아니라, 익숙했던 세계의 규칙과 상반된 질서로 들어왔다는 낯섦이 담겨 있다.

밥상 너머의 문화 충격
편의점과 마트 선반에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지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24시간 접근 가능한 음식과 간식, 즉석식품과 건강식까지 넘치는 풍요 앞에서 소비의 기준을 새로 세워야 했다. 부족을 관리하던 삶에서 과잉을 관리하는 삶으로의 전환은 배움과 훈련을 요구한다.

먹는 법을 다시 배우는 시간
균형 잡힌 식사, 간식 조절, 수면과 운동의 리듬은 의지보다 습관의 문제에 가깝다. 정착 초기의 포만감은 신체가 결핍을 기억할 때 흔히 나타나는 보상 반응이지만, 며칠 내 안정된 섭취로 수렴된다. 계획된 식단과 규칙적 활동, 충분한 수분 섭취라는 단순한 원칙이 빠르게 일상을 회복시킨다.

감사와 적응이 만나는 지점
풍요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시선은 작은 식탁 위에서도 감사의 감정을 불러온다. 배고픔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 ‘남기지 않아도 되는’ 안심은 삶의 안전망으로 작동한다. 부족과 과잉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은 새로운 사회의 규칙을 익히는 가장 현실적인 입문서가 된다.

풍요 속 절제를 기쁨으로 만들자
처음의 놀라움과 과식의 유혹을 지나, 건강한 선택을 습관으로 바꾸면 풍요는 부담이 아니라 자유가 된다. 먹는 법을 배우는 일은 이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기술이며, 감사의 마음은 그 기술을 지속시키는 힘이 된다. 풍요를 누리되 절제와 배려로 더 넓은 일상을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