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단 하루도 잊은 적 없어"… 학교폭력, 왜 중재하기 힘들까?

허시언 기자 2023. 3. 12. 20: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린 3건 중 1건 미해결
가해자도 학생이기 때문에 처벌이나 지도에 제약 많아
"학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관련 기록 삭제하지 말아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여러분은 ‘블랙보드정글’이란 영화를 아시나요? 1955년에 나온 미국 영화로 개봉한 지 70년 가까이 됐기 때문에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나라한 학교 내 폭력 묘사로 개봉 당시 미국 사회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영화인데요. 블랙보드정글이란 영화 제목, 비유적인데 직관적인 제목인 것 같지 않나요? 블랙보드정글만큼 학교 내 생태계를 잘 표현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동등한 서열과 평등한 입장으로 교실 안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계급과 서열이 존재하죠. 마치 정글 속처럼요. 교실은 영화 제목 그대로 칠판이 있는 정글과 같습니다.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린 3건 중 1건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허시언 기자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로 인해 학교폭력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가해자들의 가혹한 폭력 행위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든 이들의 울분을 샀죠. 한창 학교폭력으로 사회가 들썩일 때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과거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기숙형 자사고를 다니며 같은 방 친구에게 학교폭력을 가했습니다. 아들은 강제 전학을 가게 됐지만 이후 서울대학교에 진학했죠. 피해자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분석보고서.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개발원의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분석보고서’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린 3건 중 1건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금품갈취의 미해결 비율은 33.0%, 성폭력은 32.8%, 스토킹은 32.6%에 달했습니다. 사이버폭력 31.6%, 집단 따돌림 29.4%, 신체 폭력 28.9%, 강요 27.2%의 학생이 피해 경험을 알려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했죠.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에선 언어폭력(36.5%)의 미해결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중학교는 성폭력(31.8%), 고등학교는 금품 갈취(37.2%)의 피해 사실을 알려도 해결되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죠.

학교폭력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학생 중 피해 사실을 알린 학생은 90.8%로 나타났습니다. 초등학교가 89.9%로 가장 낮았고, 중학교 93.0%, 고등학교 95.0% 순으로 높았죠. 그러나 피해 사실을 알린 후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 비율은 고등학교에서 가장 적게 나타났습니다. 피해 사실을 알린 후 도움받은 정도를 5점 만점으로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은 평균 3.57점, 중학교는 3.59점으로 나타났으나 고등학교는 3.35점에 그쳤습니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많은 학생들이 학교폭력으로 고통을 호소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미흡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사안이 특수하다. 국제신문DB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사안이 특수합니다. 법의 접촉을 거의 받지 않고, 아직 보호받아야 할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어른인 교사와 부모 선에서 해결하는 때가 많습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양측의 입장과 목격자 진술을 받아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학교 내 부서로 넘어갑니다. 폭력 수위에 따라 학교 내에서 해결할지,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에서 해결할지를 결정하죠. 만약 학폭위가 열리면 교육청에 보고하고, 피해자 부모의 선처가 있으면 교내에서 해결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폭력 담당 부서 부장, 담임교사 등 어른의 태도와 관심 정도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해자가 학생 신분이라는 것은 처벌이나 지도에 제약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가해자의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뺏지 말아야 하고, 학교폭력 중재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정서적 문제는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하죠. 가해자에 대한 교사의 지도에도 한계가 생깁니다. 자칫하다가 정서 학대 등의 이유로 교사가 소송과 무고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학교폭력을 ‘중재’하려고 하기보다는 ‘원칙대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행정상의 문제는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 담임교사는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피해자의 정서 건강 회복을 돕습니다. 대부분의 행정 절차가 끝나면 피해자의 피해 정도에 따라 Wee 클래스 상담교사와 담임교사가 연계해 피해자를 살핍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죠. 피해 예방책 마련은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절차상 요구되는 바가 없으면 사건 종료 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학교폭력 중재 절차를 철저하게 진행해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문제 발생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이 많고, 다시는 똑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찾아 해결하지 않으니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해자 지도에는 제약이 많고, 피해자 구제는 빈약하니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이 30%가 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학교폭력 처벌 수위가 낮다는 사실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죠. 학교폭력 가해자 처분은 ▶1호 서면 사과 ▶2호 피해 학생 등에 보복 금지 ▶3호 학교 봉사 ▶4호 사회 봉사 ▶5호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 출석 정지 ▶7호 학급 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따라 처벌 수위가 정해집니다. 제일 강력한 처벌이 퇴학인데 이조차도 의무교육과정 중에 있는 중학생은 퇴학이 불가능합니다. 중학교에 재학 중인 가해자는 가장 강력한 처벌을 받아봤자 전학입니다. 1호부터 7호까지의 처벌을 받으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많은 학교 폭력이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교사들이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꼽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정교육의 부족’입니다. 이화여대 교육과학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 ‘교육과학연구’ 최신호에 수록된 학교폭력 정책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6576명 중 71.4%가 학교폭력 발생 주요 원인으로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부족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교사들은 학폭위에 불려온 가해자 부모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때가 많다고 말합니다. 가해자 부모가 학폭위 진행과정에 거부감을 갖고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죠. 가해자의 부모 역시 가해자와 똑같은 인성을 가진 사례가 많아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 교사는 학교폭력의 문제점으로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꼽았습니다. 피해자는 학교폭력의 기억으로 평생 고통받지만 가해자는 약한 처벌만 받은 채 반성을 하지 않고 같은 짓을 저지른다고 말했죠. A 교사는 “현행 학교폭력 처벌 제도는 약한 게 맞다”며 “교사나 피해 학생을 위해서도 개선돼야 할 일”이라고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B 교사는 낮은 처벌 수위가 학교폭력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가해자 교육과 처벌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학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관련 기록은 삭제가 아니라 학교폭력 사건 이후 가해자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면 달라진 변화에 대해 학생부에 추가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해자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은 대학 진학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는 학생부에 기록된 학교폭력은 언젠가는 흔적 없이 삭제되고, 소송을 통해 기재를 연기할 수 있으며, 피해자를 압박해 학생부 기록 자체를 막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엄격한 기록이 필요하고, 삭제는 막아야 합니다. B 교사는 “낙인효과가 우려된다면 달리진 태도가 확인됐을 때 추가 기록하면 될 일”이라고 조언했습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