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홍콩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삼수이포로 가보자!

오리지널 홍콩을 만날 수 있는 곳,
삼수이포

“빈티지 레코드숍 바이닐 히어로(Vinyl Hero)의 폴 오(Paul Au)는 삼수이포의 록스타입니다. 이 동네의 정수를 알고 싶다면 그와 약속을 잡아 대화를 나누세요. 가게를 늘 열어두진 않거든요.” 홍콩 사람들에게 “진짜 로컬을 만나고 싶으면 어디를 가야 해?”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동네 이름이 바로 삼수이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동네의 터줏대감 바이닐 히어로와 폴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점심 이후에 언제든 찾아오라는 그의 말을 믿고 배를 먼저 채우기로 했다.

흡족한 기분으로 나와 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자기도 밥을 먹어야겠으니 1시간 후에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쿨한 척 일행에게 일정 변경을 제안했다. “우리 그럼 쇼핑의 메카라는 압리우 거리(Apliu Street)랑 페이호 거리(Pei Ho Street)나 걸어볼까요?”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곳의 풍경은 기대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홍콩 섬유 산업의 본거지, 패션의 성지 같은 수식어에 너무 기댄 걸까? 영국 <타임아웃(Time Out)>지에서 말한 그 ‘쇼핑할 만한 것들’은 우리나라 황학동이나 동묘에서 볼 법한 물건에 가까웠다. 아! ‘패션’은 세탁기에 들어가면 곧장 10년 입은 애착 잠옷이 되는 중국제 옷을 떠올리면 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집채만 한 간판과 장쾌한 한자들, 콩나물 시루 같은 거리, 장르를 종잡을 수 없는 노천 상점의 어지러운 매대와 녹슨 창틀 사이로 휘날리는 허름한 빨래들의 기세에 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눈, 코, 귀를 반만 열고 걸었다. 홍콩 사람들이 왜 이 구역을 ‘오리지널 홍콩’이라고 표현했는지 오감으로 실감하며. 일행에게 “살 게 없다”고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실은 한국에서 바꿔온 현금을 이 동네에서 다 쓰는 기염을 토했다. 무려 1842년에 문 연 우산가게 선응아싱(Sun Nga Shing)에선 3단 접이우산 2개를, 옥·달마시안 재스퍼·아마조나이트 같은 원석 도매점에선 아파타이트 원석 목걸이를 샀다. 그런 걸 주워 담고 있으니 아주 잠깐 홍콩 여인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삼수이포의 이름난 노포, 라우섬키(Lau Sum Kee)는 3대째 이 자리에서 홍콩 서민들의 영혼을 채우고 있는 국숫집. 대나무 장대로 면을 뽑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이 집의 대표 메뉴는 감칠맛 나는 말린 새우알을 수북이 얹어 내는 볶음국수와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인 완탕. 여기에 표고버섯을 통째로 아낌없이 넣은 버섯볶음과 이름을 알 수 없는(광둥어 메뉴판뿐이다) 각종 면, 밥, 채소볶음을 양껏 시켜 원 없이 먹었다.

드디어 폴을 만날 시간.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선 비좁은 공간 안엔 두 사람 이상 들어서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레코드판이 가득했다. 롤링 스톤스, 프랭크 시나트라, 데이비드 보위의 20대 시절 모습이 박힌 앨범들을 넋 놓고 구경하다가(저 뮤지션들의 젊은 얼굴을 모니터 바깥에선 처음 봤다) 먼저 찾은 손님 응대를 마친 폴과 이야기를 나눴다. 베트남 난민 출신, 평생에 걸쳐 약 35만 장의 레코드판을 수집, 그중 3만여 장이 이 공간에 있으며 1960~70년대 미국과 전 세계를 휩쓴 히피 문화와 로큰롤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 홍콩엔 40년 정도 살았고 젊은 시절엔 모터바이크를 즐겨 타던 드러머였다는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듣다 보면 그가 왜 홍콩 언더그라운드 신의 스타가 됐는지 절로 이해된다. 한때는 빈민가였던 삼수이포는 이제 홍콩 디자인 클럽이 ‘2024 홍콩 디자인 핫 스폿’으로 선정할 정도로 격변하고 있다. 청샤완 길(Cheung Sha Wan Road)의 낡은 아파트에서 그 변화를 전부 지켜본 폴에게 왜 그런 것 같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지금 홍콩 사람들은 지나간 것, 오래된 것을 되찾고 싶은 것 같아요. 그 시절을 겪어본 적 없는 젊은이들까지도 옛 홍콩을 그리워하더라고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켄드릭 라마처럼 차려입은 소년이 바이닐 히어로의 비좁은 매장으로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삼수이포에서 오리지날을 발견하는 법

타이난 스트리트 산책

삼수이포에 ‘오래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타이난 스트리트(Tai Nan Street)엔 이 동네의 공기를 확 바꾼 젊은 상점들이 모여 있다. 카페 소살리토(Café Sausalito)는 삼수이포에 일찌감치 자리 잡은 카페로 일대의 창작자, 예술가, 디자이너들의 아지트 같은 공간. 그 주변으로 1958년에 문 연 펜가게 ‘뮤즈 펜스’, 로컬 도예가의 작업 공간 머드헤이통 갤러리(Mudheytong Gallery) 등이 들어서 있어 볼거리가 다채롭다.

근대 건축 탐색

원형을 간직한 건축 랜드마크들을 찾아보자. 1920년대 건축 스타일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청 스트리트의 남청 전당포(Nam Chung Pawn Shop), 중국 전통 약초를 파는 가게 다이캄렁코(Dai Kam Lung Co)가 된 청펑 전당포가 역사 유산으로 등재된 건축물이다.

자키 클럽 크리에이티브 아트 센터 탐방

1977년에 세워진 자키 클럽 크리에이티브 아트 센터(Jockey Club Creative Arts Centre, JCCAC)는 원래 공장으로 쓰였던 공간. 지금은 갤러리, 로컬 예술가들의 작업실, 쇼핑 공간과 식당, 카페를 비롯해 커뮤니티 스페이스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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