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 고추장 마케팅하는 콩고 사원, 비비고 전략 짜는 MIT 인턴…식품사 '외인 구단' 열풍 [New & Good]
샘표식품, 콩고 출신 유학생 뽑아
유럽·중동 등 마케팅 업무 맡겨
베트남 출신 직원은 동남아 영업
오뚜기도 외국인 유학생 3인 채용
삼양·CJ도 첫 외국인 인턴십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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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초, 아프리카 콩고 출신 유학생 스텔라(당시 25세)는 채용 플랫폼 링크드인 유료 결제 페이지에서 망설였다. 취업준비생에게 3만7,000원은 피 같은 돈이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2018년 유학 와 대학 졸업을 앞둔 그였다. 식품을 공부했고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간장·고추장 등 전통 장(醬)류를 만드는 샘표식품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보가 없었다. 링크드인에 박진선 샘표 대표가 보였다. 메시지를 보내려면 프리미엄 회원이 돼야 했다. 스텔라는 눈 딱 감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놀랍게도 2주 뒤 박 대표는 친히 답장을 보내왔다. 곧 공채가 있고 외국인도 지원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스텔라는 입사 지원을 했고 2023년 4월 당당히 샘표 직원이 됐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샘표 또한 글로벌 인재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터였다. 다만 채용 당시 별도 외국인 전형 같은 것은 없었다. 스텔라는 내국인과 똑같이 서류 전형 및 인적성 검사, 면접 등을 거쳐 합격했다. 그에게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마케팅 업무가 주어졌다. 스텔라가 첫 외국인 직원은 아니었다. 영업 파트에는 또 다른 외인 부대가 있었다. 동남아 영업을 맡고 있는 조우람(37) 대리는 베트남 출신 귀화인이었다.
샘표 관계자는 두 사람에 대해 "현지 식문화를 잘 이해하고 글로벌 마인드도 갖춘 인재"라고 칭찬했다. 실제 스텔라는 모국어인 불어는 물론 영어·한국어까지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와인에 소고기를 졸여낸 요리 '비프 부르기뇽'에 고추장을 섞은 퓨전 음식이 인기라며 "샘표 고추장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조 대리는 모국 베트남에서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비빔밥이 유행하고 있다면서도 섣부른 현지화는 독(毒)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맛이 궁금해 고추장을 먹는 거라 현지에 맞게 개량한 고추장은 안 팔린다"고 했다. 조 대리는 샘표 제품의 맛을 이해하기 위해 입사 후 6개월 동안 매일 제육볶음, 된장찌개 등 한식을 요리했을 정도로 노력파다.
국내 식품기업들이 글로벌 인재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류 붐을 타고 아시아는 물론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북미, 유럽 시장에서까지 K푸드가 각광받고 있는 상황. 실제 올해 1~8월 농식품 수출액은 1년 전보다 8.7% 증가한 64억8,400만 달러(약 8조7,000억 원)로 역대 최대치다. 이런 시장 변화에 발맞춰 현지 식문화와 트렌드에 밝은 인재를 채용해 해외 영토를 넓혀가겠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9일 "내수 시장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어 해외 진출은 선택 아닌 필수"라며 "과거엔 해외 현지 법인에서 그 나라 직원을 뽑았다면 요즘에는 본사가 직접 인재 확보에 나서는 모양새"라고 했다.
오뚜기 본사에는 루마니아·중국 직원이 있다
2023년 글로벌사업부를 본부로 격상하고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낸 오뚜기는 올해 상반기 공채에서 루마니아·베트남·중국 출신 외국인 직원 세 명을 뽑았다. 주요 수출처인 미국과 중국, 베트남 등에 현지 법인이 있지만 본사가 직접 인재 확보에 나섰다. 이들은 해외 영업, 구매 업무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오뚜기는 해외 매출 비중이 10%가 채 되지 않아 판로 확대가 절실하다.
불닭볶음면으로 해외서 대박을 터뜨린 삼양라운드스퀘어도 올해 처음 외국인 전용 채용연계형 인턴십 선발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이 2018년 43%에서 올해 2분기 78%까지 커진 만큼 인재 풀(pool)도 다양화하겠다는 취지다. 최종 합격자는 해외 지사가 아닌 한국 본사에서 일한다.
한식 브랜드 비비고(bibigo)를 앞세워 수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CJ제일제당은 최근 해외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채용연계형 인턴십을 실시했다. 지원자 5,000명 중 하버드·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 명문대 출신 18인을 뽑아 한국 본사에서 글로벌 사업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싱가포르 국적의 인턴십 참가자는 "K푸드를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식품 부문의 해외 매출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CJ제일제당은 외국인 임원도 잇달아 영입했다.
직원 채용까진 아니더라도 제품 마케팅에 글로벌 인재를 활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현재 롯데웰푸드는 빼빼로데이(11월 11일)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릴 글로벌 리포터 11인을 모집하고 있다. 구독자 4,24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유튜버 토퍼길드도 리포터로 참여한다.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매출 1조 원이 넘는 메가 브랜드를 육성해야 한다"며 빼빼로를 꼽았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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